▲김은주
“그 여편네 의심은 많아 가지고, 내가 동창이라고 하면 동창인 줄 알지. 못 미더운지 우리 동창한데 직접 묻더래, 정말 동창 맞냐고. 내가 저처럼 학교도 안 나온 사람인 줄 아는지.”
어머님이 마을에서 라이벌로 여기는 어떤 아줌마에 대한 얘기를 나에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어머님은 학교를 졸업하고 그 라이벌 아줌마는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자신은 그 아줌마하고 비교가 안 되게 우월하다는 뜻이다.
어머님은 자신의 학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어머님 나이가 쉰아홉인데 그 때는 여고만 나와도 그럴싸한 집 안에 시집 갈 수 있던 때다. 몇몇 사람은 어머님의 학력 자부심이 대단한 걸 보고 ‘고등학교는 졸업했겠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어머님은 초등학교 졸업장을 갖고 있을 뿐이다. 어머님이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초등학교 졸업장이다.
초등학교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깟 초등학교 졸업장을 갖고 유세를 하냐고? 그렇지 않다. 우리 어머님은 유세할만하다. 왜냐하면 그깟 초등학교 졸업장이 우리 어머님이 사는 마을 어르신네들 사이에서는 대학 졸업장 버금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들 중에는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아서 영어가 아니라 한글도 잘 모르는 사람이 반 정도는 된다. 그리고 어머님의 친 언니들 세 명도 초등학교를 안 다녔다. 우리 어머님만 막내라서 막내의 특수를 좀 누린다고 초등학교 문전을 밟았다.
그래서 어머님은 이런 것도 자랑하곤 했다. 자신이 겨울이면 아들네 집인 우리집으로 다니러 오는데, 자신은 글을 아니까 터미널 간판도 읽을 수 있고, 이정표도 볼 줄 알아 어디든 마음대로 다닐 수가 있는데 다른 동네 아줌마는 글을 못 읽으니까 아들네 집에 갈 때도 아들이 차 갖고 와서 데려가야지 아니면 마을 밖을 못 나간다고 했다.
이 정도면 초등학교 졸업장을 갖고 유세할만하지 않은가. 초등학교 졸업장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사이에 이 정도 차이가 있는데 그깟 초등학교 졸업장이라고 무시할 상황이 아니다.
우리 어머님이 사는 마을은 대학 졸업자나 고졸자는 없고, 중졸도 찾아보기 어려운 그런 오지 마을인데 그 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정말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건 대학 졸업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차별하는 우리 사회의 간판에 의한 차별과는 다르다. 즉 사회의 잣대가 아니라 개인의 삶의 질에서 나타나는 차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아들네 가는 버스도 마음대로 갈아타고 어디든 찾아갈 수가 있다. 자유롭게 마을 밖으로 나설 수 있는데 졸업장이 없는 사람은 글을 못 읽기 때문에 길 나설 때 늘 두려움이 앞선다. 버스를 잘못 타면 어쩌나, 이정표를 못 알아보면 어쩌나, 해서 문 밖을 나서는데 주저주저 하는 것이다. 즉 생활공간의 제약이 따른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은 은행 업무를 못 본다. 글자를 못 읽고 못 쓰니까 저금을 할 때도 대출을 받을 때도 누구 똑똑한 사람을 앞세워서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은행뿐만 아니라 군청이니 동사무소니 농협이니 관공서에서 처리하는 각종 일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처럼 초등학교 졸업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아주 큰 강이 흐르고 있다. 마을에서 아마도 반 수 이상은 초등학교를 나오지 못한 오지 마을이라 보니까 어머님은 자신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우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그래서 어머님은 초등학교 졸업장에 대한 강한 우월의식을 갖게 됐다. 이는 졸업장 때문이 아니라 현실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나타난 능력 차이로 발생한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래서 우리 어머님은 학력을 갖고 사람을 차별하는 약간 고약한 버릇도 갖게 됐다.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이렇게 하늘과 땅 차이인데 대학을 나온 사람은 무슨 용빼는 재주라도 갖고 있는 줄 생각한다. 그래서 대학만 나오면 엄청 똑똑하고 뭐든지 다 안다고 생각해서 대학 나온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차별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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