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노굿이 잘 일어야 풍년이 든다는데...

[북한강 이야기 256] 빗물로 가을이 열리고

등록 2007.09.02 14:26수정 2007.09.02 14:5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여주 <여주>는 원예식물입니다. 가을 비를 맞으며 '팍' 9월을 열고 있습니다.

여주 <여주>는 원예식물입니다. 가을 비를 맞으며 '팍' 9월을 열고 있습니다. ⓒ 윤희경




가을비를 시작으로 계절이 바뀌고 있다. 비가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는 사이 선득선득한 가을 기운이 이불속으로 파고들어와 몸을 비벼 댄다. 어느새 일어났는지 온갖 풀벌레 들이 새벽잠을 깨운다. 산속 새벽은 산뜻하고 쾌적하다. 잠을 더 청할까하다 밖으로 나선다. 풀잎마다 하얀 빗물이 구슬처럼 반짝거린다.

밤새 촉촉이 내린 빗물과 이슬을 털어내며 텃밭으로 아침인사를 떠난다. 밭둑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콩·팥·부추·호박·오이 등이다.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면 반가워 대답을 못한다. 그저 입만 벙긋거릴 뿐이다. 작은 몸짓하나만으로도 우리들은 서로 교감을 나눌 수 있다. 긴 여름동안 아침저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눠왔기 때문이다.

a 팥꽃 팥 꽃도 '팍, 팍팍' 터지며 초가을을 열고 있습니다.

팥꽃 팥 꽃도 '팍, 팍팍' 터지며 초가을을 열고 있습니다. ⓒ 윤희경


해마다 콩, 팥, 녹두 등을 즐겨심는다. 이들은 가장 민중적이면서 토종냄새를 풍기고 있어서이다. 콩과 팥은 아무데나 심어도 끈덕지게 살아남는다. 그래서 이들은 늘 다른 곡식을 심고 남은 자투리 땅 신세를 지게 마련이다. 8월 중순부터 아주 작은 꽃을 피우기 시작해 구월 초에 꽃 마무리를 하고 서둘러 콩알을 채우기 시작한다.

a 팥꽃 팥꽃이 노랗게 피어납니다. 마치 노랑나비가 하늘을 날아오르듯 신비스럽습니다.

팥꽃 팥꽃이 노랗게 피어납니다. 마치 노랑나비가 하늘을 날아오르듯 신비스럽습니다. ⓒ 윤희경


예부터 콩노굿(콩의 꽃)이 잘 일어야 풍년이 든다 했다. 8월 한 달은 하도 비가 질금거리고 햇볕이 모자라 키만 훌쩍하니 커 버렸다. 키만 크면 콩과 팥잎이 웃자라 섶이 무성해진다. 섶이 우거지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거나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 순을 나누어 쳐 줘야한다. 새순을 치려면 아까운 마음에 그만 머뭇거리게 된다. 그러나 나눌 것은 나눠야 한다.

나눠야 세포도 숨을 쉬고 생명체도 성장을 한다. 나누어야 콩도 살고 땅도 노래를 부른다.
올해도 벌써 두 번이나 섶을 잘라냈다. 이제야 겨우 콩 꽃이 일기 시작한다. 콩 꽃은 섶에 비해 작은 몸짓으로 보일 듯 말 듯 피어나기 때문에 몸을 낮추고 잎을 들춰가며 살펴야 모습을 드러낸다. 보라색 꽃물이 귀엽다 못해 앙증맞기 그지없다.


a 반미콩 반미콩은 콩 주의 콩으로 비타민 덩어리다. 꽃은 잎 속에 파묻혀 낮게 허리를 굽히는 사람에게만 보일듯 말듯 모습을 드러낸다.

반미콩 반미콩은 콩 주의 콩으로 비타민 덩어리다. 꽃은 잎 속에 파묻혀 낮게 허리를 굽히는 사람에게만 보일듯 말듯 모습을 드러낸다. ⓒ 윤희경


팥도 밭 가장자리나 척박한 땅에 덤으로 심는다. 불평 한마디 없이 잘도 자라나 지금 한창 노란 꽃을 피워낸다. 꽃모양은 노랑나비가 춤을 추며 하늘을 나는 모습이다. 콩 꽃은 자주색이나 보라색인 데 팥꽃은 노랑색이다.

여우 팥도 있다. 하필이면 왜 여우일까. 하도 궁금해 동네 어른들한테 여쭤봤다. 옛날 여우의 거시기를 닮았다 했다. 여우가 사람을 만나면 할금할금 뒤를 돌아보며 오줌을 잘금거리는 버릇이 있는 데 그 모습과 비슷하다 했다. 하여간 이 놈의 꽃은 볼 때마다 묘한 분위를 자아낸다. 어찌 보면 꼬리를 활짝 편 공작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a 여우팥 여우팥은 여우의 거시기를 닮은 듯, 볼 때마다 묘한 분위기.

여우팥 여우팥은 여우의 거시기를 닮은 듯, 볼 때마다 묘한 분위기. ⓒ 윤희경


그러나 정작 내가 콩을 즐겨 심은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농사를 짓다 열매가 부실하게 달리고 잎이 붉어지면 땅의 질소분이 모자라 영양이 부족하다는 신호이다. 이 때는 다른 곡식보다는 질소 질이 풍부한 콩과 식물을 심어야 밭이 걸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콩과 식물들은 흙의 체질을 개선하는 질소공장이다.

a 여우팥 또 다른 여우팥 모습.

여우팥 또 다른 여우팥 모습. ⓒ 윤희경


많은 비로 가을이 열리니 부추가 우산을 준비하려나 보다. 부추도 가을꽃을 피워낸다. 부추 꽃은 가을 빗물을 닮아 우산처럼 동그랗게 피어난다. 부추는 인삼, 녹용보다 더 좋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뛰어난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부추는 일년 내내 기를 수 있으나 이른 봄부터 여름에 걸쳐 나오는 것이 연하고 맛이 좋다.

a 부추꽃 부추꽃도 시리게 가을을 열고 있다.

부추꽃 부추꽃도 시리게 가을을 열고 있다. ⓒ 윤희경


부추는 다섯 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다. 꽃과 줄기는 흰색, 싹은 노란색, 잎은 파란색, 뿌리는 붉은색, 씨앗은 검정색이다. 하얀 부추 꽃이 가을 하늘을 닮아가고 있다. 가을 이슬, 가을 하늘 그대로의 모습이다.

a 부추꽃

부추꽃 ⓒ 윤희경


8월 한 달 동안 북한강 상류에 많은 비 내려 곡식들이 몸살을 앓았다. 그래서일까. 폭우와 열대야를 겪어낸 꽃과 작물들이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오늘도 많은 비가 오겠다는 예보이다. 그러나 가을이 성큼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서고 있다. 이 비 그치면 넉넉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을걷이 준비를 해야겠다.

a 부추꽃 초가을 비가 내리니 부추꽃도 우산처럼 피어난다.

부추꽃 초가을 비가 내리니 부추꽃도 우산처럼 피어난다. ⓒ 윤희경


#팥 #여우팥 #반미콩 #부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3. 3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4. 4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5. 5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