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 처신 논란' 머릿기사 감인가?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북핵 불능화 합의' 보도와 신문 1면 머릿기사

등록 2007.09.03 11:50수정 2007.09.03 16:15
0
원고료로 응원
a

지난 2005년 7월 26일김계관 북한측 대표와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대표가 1단계회담 개막식에서 밝은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전수영


신문 1면을 보면 그 마음이 보인다.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를 읽어볼 수 있다. 신문 보는 재미 가운데 하나다.

오늘(3일) <조선일보> 1면은 그래도 면치레는 분명하게 했다. 북핵 연내 불능화에 합의했다는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담 소식을 1면 머릿기사로 올렸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각기 밝힌 내용들이다.

북미 관계가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은 그동안 여러 징후를 통해 포착됐다. 그러나 북미 양국 대표들이 '올해 안에 북핵 불능화 합의'를 공식 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며칠 전 부시 미 대통령은 임기 안에 북핵 문제를 끝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예정돼 있는 남북정상회담까지를 염두에 두었을 때 바야흐로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제네바에서 들려온 '올해 안 북핵 불능화 합의'는 보통 큰 뉴스가 아니다.

제대로 대접 못받은 '북핵 불능화 합의' 보도

<조선일보>가 이 소식을 1면 머릿기사로 올린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편집을 보면 마지못해 머리기사로 올린 듯하다. 1면 제목 활자 치고는 너무 작은 활자 크기로 배치됐다. 관련 기사도 없다. 되레 '좌파+민족주의 20년 동거 끝나'라는 '한국민족주의의 대전환' 기사가 더 비중 있게 배치돼 있다.

이 소식을 제대로 대접한 신문은 <세계일보>다. 1면 머리기사로 제대로 대접한 것은 물론 순발력 있게 해설 기사까지 실었다.

<세계일보>는 특히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북핵실험 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친서를 보냈다는 일본 <중앙공론> 8월호의 기사를 1면에 관련 기사로 보도했다.


미국 안보전문가인 리언 시걸 사회과학연구협회(SSRC) 동북아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이 <중앙공론>에 밝힌 내용이다. 시걸 국장은 '부시의 친서'에는 "핵을 폐기하고 평화 조약 등을 체결하자고 제안하는 등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중앙공론>은 또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지난 4월 미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할 것이라는 방침을 사실상 일방적으로 전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겠지만, 북미간의 대화가 속도를 낼 수 있는 배경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중앙공론>이라는 일본 월간지의 '공신력'을 평가할 때 상당히 신뢰할만한 내용이다.

<국민일보>도 일단 1면 머릿기사로 대접은 했다. 하지만 눈길은 오히려 아프간 인질석방과 관련한 김만복 국정원장의 '부적절한 처신' 기사 쪽으로 쏠리게 편집돼 있다.

<경향신문>과 <한국일보> <서울신문>도 이를 비중 있게 1면 중간 머릿기사 등으로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남북 정상회담 연기 배경에는 '미국의 불만'이 작용했다는 기사를 1면 머릿기사로 올렸지만, 북미간 북핵 연내 불능화 합의 소식을 1면에 비중 있게 배치했다.

<한국일보> 역시 '한국관광'에 관한 시리즈 첫 회 기사를 1면 머릿기사 자리에 올렸지만, 연내 북핵 신고·불능화 합의 소식을 사실상 1면 머릿기사 비중으로 배치했다. <서울신문> 역시 1면 중간 머릿기사로 비중 있게 보도했다. <중앙일보>도 1면 중간 머릿기사로 배치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1면에 집어넣기는 했지만 가장 낮은 비중으로 보도했다. 

<한겨레>는 아예 10면 정치면에 상자 기사로 실렸다. 어찌된 일인지 아예 어제 오후의 '연내 핵불능화 합의' 소식 자체가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기사 비중 또한 '10면 상자기사'를 벗어날 수 없었다.

a

김만복 국정원장과 탈레반과 협상을 벌였던 한국측 대표인 일명 '선그라스의 사나이'가 2일 오전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되었다 석방된 19인과 함께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전문수


국정원장 '과잉노출', 1면 뉴스감인가?

오늘 <중앙일보>와 <한겨레>에는 아프간 인질 석방과 관련한 김만복 국정원장의 처신 논란 기사가 1면 머릿기사로 올랐다. 최고정보기관 수장의 처신으로서 과연 적절했는지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만복 국정원장은 이미 신분이 노출된 인사다. 그가 보인 일련의 처신과 그 의도가 문제였을지언정, 그것이 '북핵 연내 불능화 합의' 소식 보다 더 한 뉴스 가치를 갖는 것인지는 의문이다(<한겨레>는 그 같은 합의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점에서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사실 국정원으로서는 이번에 자랑도 할 만하다. 단 국정원이 인질 사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도 김만복 국정원장의 처신에 대한 논란도 논란이지만, 이번 인질 사태에서 과연 국정원이 어떤 역할을 했으며, 또 외교부는 어떤 일을 했는지 이런 점에 대한 정보가 사실 더 궁금하다.

왜 탈레반과의 협상 장소에 외교부 관계자가 아니라 국정원 사람이 분명해진 '선글라스 맨'이 나갔는지도 말이다. 그것은 왜 탈레반과의 협상 초기에 엉뚱하게 낙관적인 전망에 사로잡혔다가 배형규·심성민 두 사람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 비춰보자면 21명의 목숨을 온전히 살린 '국정원'이라면 이 정도의 공치사쯤은 점잖게 한마디 하는 것쯤으로 접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선글라스맨'의 노출 또한 협상장에서의 불가피한 노출이 아니었던가. 이미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그 얼굴이 알려졌는데, 그 다음의 행보를 두고 그리 침소봉대할 일만은 아니다.

김만복 국정원장의 '과잉노출', '과잉홍보'는 분명 최고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본다면 외교부 관계자들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었다면 '선글라스맨'도, 김만복 국정원장도 그 자리에서 그렇게 노출되는 일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사 귀환한 21명보다는 희생당한 2명의 주검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국정원 #김만복 #선글라스맨 #북핵 #북미합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개 눈 은둔자' 표범장지뱀, 사는 곳에서 쫓겨난다
  2. 2 [단독] '김 여사 성형' 왜 삭제? 카자흐 언론사로부터 답이 왔다
  3. 3 카자흐스탄 언론 "김 여사 동안 외모 비결은 성형"
  4. 4 최재영 목사 "난 외국인 맞다, 하지만 권익위 답변은 궤변"
  5. 5 한국의 당뇨병 입원율이 높은 이유...다른 나라와 이게 달랐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