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어렵다고?(5)

통합에 이의 있습니다.

등록 2007.09.03 13:58수정 2007.09.0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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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길 위에서 통합논술이라는 말이 부쩍 늘어난 것을 본다. 말을 볼 수는 없지만 하나의 기호라는 측면으로 보면 못 볼 것도 없다. 드러난 기표는 뭐 이상할 것도 없는데 가만히 그 기의를 생각해보면 자못 그 저의가 궁금해진다.

 

통합이라는 단어를 기획한 입안자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또 그 단어 자체에 딴죽을 걸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애초에 통합이라는 단어를 쓴 그 사람이 의도한 바가 현재 교육현장에서 통합논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그런 형태의 것일까?

 

솔직하게 말해보자. 나는 지금 통합논술은 '진정한 통합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가령 지구과학을 설명하면서 수학적 계산을 요구하는 것이 어째서 통합이란 말인가? 윤리에 나온 내용과 사회에서 나오는 개념과 연결시켜 질문하는 것이 통합인가?

 

말하자면 대통합민주신당(점점 이름이 길어진다. 나중에는 대대적정통민주열린국민통합정당, 뭐 이런 이름이 등장하지 않을까?)과 도로 열린우리당의 관계인 것이다. 정치적 지향점들이 너무도 판이한 세력들끼리 양적 개념으로만 묶어 정치세력화하는 것, 거기에도 통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국내 모(某) 일간지에는 일본인 요리사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이라는 연재기사가 실리고 있다. 여기에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그는 퓨전이라는 말이 함부로 쓰이고 있음을, 한국 역시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자신의 견해를 내비친 다음에 이런 말을 한다.

 

"진짜 퓨전은 A와 B가 만나 그것 이상의 새로운 음식으로 바뀌는 거예요. 중국과 일본의 음식이 만났다, 그건 퓨전이 아니에요. 재료가 비슷하잖아요. 완전히 다른 문화의 다른 재료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야 해요. 두 나라의 모든 걸 이해하고 두 나라의 음식을 꿰뚫고 있어야 해요. 퓨전이라는 말은 그렇게 쉽고 만만한 단어가 아니에요."

 

놀랍지 않은가? 요리라는 행위에도 도(道)가 있는 것이다. 이래서 천 개의 강에 찍히는 달, 월인천강(月印千江)이던가?

 

정리해보자. 경제관으로 보자면 한나라당보다 더 지독한 보수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과 자유주의 경제관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민중, 민족적 가치관을 몸에 익힌 사람들이 반 한나라당이라는 깃발 아래 모여들고 있다.

 

물론 정치적 대안이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분명한 것은 열린우리당이 그랬던 것처럼 신당 역시 그러한 전철을 밟게 되리라는 것. 요나구니의 말대로 이건 퓨전도 아니며 통합도 아니라는 것이다.

 

설사 진정한 통합이 여의치 못하여 정권을 넘겨주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들의 노선을 분명하게 견지하고 변증적으로 토론하고 절충하며 우선 정치인들끼리, 나중에 국민들과 질적인 공감, 연대를 이뤄가는 것. 그것이 지금 보기에는 멀리 돌아가는 것 같지만 오히려 확실한 길이 아닐까?

 

지금 통합논술이라는 이름으로 나도는 문제들은 논술의 지향점이라는 결승점에서 바라본다면 매우 원시적이며 열등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형식끼리, 이름끼리만 엮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통합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인문학은 과학의 넓혀준 지평에 의존하고 자연과학은 인문학의 통제선 안에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결국 과학기술도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고 서로가 동시에 행복해지는 지점(행복이란 매우 중요하다. 창의적 문제해결을 통해, 나름대로 대안으로 찾아가는 최종역이기 때문이다)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인간, 더 나은 세상이라는 교집하는 부분에서 서로 소통해야만 하는 것이다. ('통섭'이라는 개념을 소개한 최 재천 교수의 <통섭/에드워드 윌슨>이라는 책과 이정우 교수의 <탐독>이라는 책에서 사용한 '가로지르기'라는 개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감히 일독을 권하고 싶다.)

 

덧붙여 입시를 앞둔 학생이라면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거의 모든 것들의 역사> 정도의 책을 읽어본다면, "아하, 이정도의 사유라면 통합이라 할 만 하구나"하는 느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고등학생들의 학습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라면, 변별만을 원한다면, 그냥 논술이라고 이름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게 싫으면 이미 헛갈리기 시작한 통합이라는 단어를 버리고 통섭, 혹은 가로지르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가?

2007.09.03 13:58 ⓒ 2007 OhmyNews
#통합논술 #통섭 #최재천 #이정우 #한계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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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아들이며 누구들의 아빠. 학생이면서 가르치는 사람. 걷다가 생각하고 다시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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