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연기자 전성시대, 고집만 센 늙은이 모습 사라져

그저 그런 노인에서 극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요한 역할로 변신

등록 2007.09.12 10:52수정 2007.09.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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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배우 활약의 선봉장에 선 이순재

노배우 활약의 선봉장에 선 이순재 ⓒ IMBC

노배우 활약의 선봉장에 선 이순재 ⓒ IMBC

TV드라마에서 노익장 파워가 점차 커지고 있다. 얼마 전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순재, 나문희가 코믹연기로 안방을 사로잡았고, <고맙습니다>에서 신구가 치매노인으로 분해 안방극장에 눈물을 적시게 만든 바 있다. 드라마 속 노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점차 개성있는 캐릭터가 탄생하고 있다.

 

사실 노배우들은 예전부터 늘 드라마에 출연해왔고 드라마의 중심으로 자리해왔다.

 

하지만 노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 영역은 '누구누구의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로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저 못된 시어머니, 인자한 친정어머니 혹은 완고한 할아버지, 경제력을 자식들에게 물려준 뒷방 늙은이 수준이었다. 이젠 아니다. 드라마 전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역할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노배우 캐릭터 개성있게 변화


그러한 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순재와 나문희는 이번 노익장 파워를 이끈 선봉장이라 할 수 있다. 시트콤 성격에 노배우들이 열연하고, 캐릭터를 개성 있게 만들기에는 힘이 들 법도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일등공신은 바로 이순재와 나문희다. 그들이 보여준 연기는 '야동순재', '밍크문희'라는 별명까지 탄생시키며 젊은층에 큰 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향을 받아서인지 노배우들의 캐릭터가 전과는 사뭇 달라진 느낌이다.

 

이순재는 극중에서 어떤 인물보다 개성적이었다. 한의사 병원장으로 돈을 무척이나 좋아하며, 자식들에게는 엄한 아버지, 아내에게는 무뚝뚝한 남편이지만 한편으로 로맨티스트의 모습을, 며느리에게는 기득권을 빼앗긴 '이빨 빠진 호랑이'의 모습으로 이 시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성있는 노배우 캐릭터는 또 있다. <며느리 전성시대>에서 오향심(김을동)은 카리스마있는 할머니이자 시어머니, 어머니의 모습이다. 꼿꼿하고 완고한 그녀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온 가족을 휘어잡고 현업에서 60년 동안 족발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결정적으로 손자인 이복수(김지훈)와 조미진(이수경)의 결혼을 승낙하며 그들의 결혼을 성사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즉, 드라마 전개에 있어 두 주인공의 결혼을 성사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오향심 캐릭터는 극중 아버지, 어머니보다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한결(공유)의 할머니(김영옥)도 한결의 직업과 사랑에 많은 부분 영향력을 행사한다. 더욱이 동인식품회사를 운영하는 CEO로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오히려 한결의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손자 일에 간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a  경제력이 있는 할머니들이 카리스마를 선보이고 있다.

경제력이 있는 할머니들이 카리스마를 선보이고 있다. ⓒ IMBC

경제력이 있는 할머니들이 카리스마를 선보이고 있다. ⓒ IMBC

 

노익장 파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왕과 나>에서 노내시로 분한 신구는 극에서 잠깐 잠깐 등장하지만 영향력이 상당하다. 그를 양아버지로 섬기는 조치겸(전광렬)에게 조언을 해주고, 그것을 그대로 이행하기 때문이다. 즉 내시 세계의 실권자가 바로 노내시라고 할 수 있다.

 

현실 흐름을 반영한 노인들의 캐릭터


이처럼 노배우들의 파워가 점점 거세지고 있는 이유는 우선 이들의 탁월한 연기력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수년간 여러 캐릭터를 연기했던 그들은 어떠한 역할이 주어지더라도 척척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연기를 기반으로 캐릭터가 보다 다양화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가 개발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면 현실 흐름을 주목한 점 때문이다. 요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기존 가부장적인 가족제도를 유지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우선 경제력을 쥐고 있다. 예전처럼 노년이 되어서 자식들에게 의지하는 노인들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노년이 되어 현역에서 은퇴했다고 해서 자식에게 경제력을 전부 물려주는 이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드라마 속 노인들은 어느 정도 부를 갖추고 현역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실권을 며느리에게 빼앗겼지만 한의원 원장으로서 현역에서 활동하며, 주식을 하면서 자신의 경제력을 높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한결이 할머니도, <며느리 전성시대>에서 오향심도 여전히 현역에서 굳건히 활동하며 경제력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는다. 당연히 자식들에게 기대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러한 현실의 흐름을 반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라마 속 노인들의 모습이 다양화되어가고, 극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령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한결이 할머니가 동인식품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했다면 홍사장(김창완)과 한결이에게 자금 5000만 원을 주고 사업을 해보라고 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은찬(윤은혜)에게도 유학을 권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a  경제력과 지혜와 사리분별을 지닌 노인들의 모습이 드라마 속에서 많아지고 있다.

경제력과 지혜와 사리분별을 지닌 노인들의 모습이 드라마 속에서 많아지고 있다. ⓒ KBS

경제력과 지혜와 사리분별을 지닌 노인들의 모습이 드라마 속에서 많아지고 있다. ⓒ KBS

특히 이들의 모습은 완고한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반갑다. 그전까지는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에서 빚어지는 완고한 고집쟁이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또한 자식의 결혼에 결사반대를 외치는 못된 시어머니로 등장하기 바빴다. 혹은 자식들에게 기대어 그저 호통만 치는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요즘 등장하는 노인들은 경제력과 지혜, 사리 분별을 가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랜 세월 살면서 경험하고 터특한 지혜를 갖고 슬기롭게 극중 주인공들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이순재는 자식들에게 완고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진짜 자신의 자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슴 아파하고, 조언해주며 도움을 주는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한결이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다양한 캐릭터로 변화하며 극중 드라마에서 그야말로 뒷방 늙은이 모습에 탈피한 그들은 반가우면서도 무언가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바로 중년연기자들이 대부분 누구누구의 아버지, 어머니로 여전히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자식들의 결혼에 극구 반대하는데 머물러 다양한 캐릭터가 없는 상황에서 본다면 노배우들의 파워는 되새겨 볼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여러 모로 그들의 변신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앞으로도 노익장 파워를 과시하며 지속적으로 드라마 속의 중심으로서 활약하길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티뷰 2기 기자단 응모 

2007.09.12 10:52ⓒ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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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노인 #노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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