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아! 그곳에 가고 싶다

철썩이는 파도, 하얗게 부서지던 포말에 마음 띄울 걸....

등록 2007.09.12 16:39수정 2007.09.12 18:0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번뇌, 시름, 망상, 탐욕 까지도 모두다 씻어줄 것 같은 그 바닷가, 홍련암엘 다시 또 가보고 싶다. ⓒ 임윤수




가고 싶다. 눈물이 쑥 빠지도록 가고 싶고, '아∼' 하는 신음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를 만큼 그곳에 가고 싶어진다. 가고 싶다는 갈망에 부르르 몸이 떨릴 만큼 가고 싶고, 때 꺼리를 팔아서라도 훌쩍 다녀오고 싶어진다.

낭만파라서가 아니라, 사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곳이기에 가고 싶어진다. 입맛 다실 과자 한 조각 없어도 좋고, 입술 적셔 줄 음료수 한 잔 없어도 좋다. 벼랑 위 바닷가, 울퉁불퉁한 바닷가 바윗돌에 털썩 주저앉아 턱 괴고 바다 바라보며 그냥 그곳에 머물고 싶다.

많이도 아니고, 오래도 아닌 시간, 엄마가 호미질을 하던 짧은 뙈기밭 고랑 길이만큼 이거나, 뚝딱 밥숟가락 놓던 한 식경만큼이라도 그곳에 머물고 싶다. 끼룩거리는 갈매기 소리, 연애감정처럼 붉어진 석양 노을은 보지 못해도 철썩거리며 파도를 일구는 그 바닷가에서 서성거리고 싶다.

a

저만치 있던 파도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오더니 짭짜래한 소금기 풍기며 하얗게 무너져 간다. ⓒ 임윤수


a

바닷가 벼랑 위, 울퉁불퉁한 바닷가 바윗돌에 털썩 주저앉아 턱 괴고 바다 바라보며 그냥 그곳에 머물고 싶다. ⓒ 임윤수



동행이 있으면 더 좋고 혼자여도 좋다. 동행이 있으면 담소를 나누고, 혼자여야 한다면 사색을 할 수 있어 좋기만 할 거다. 기쁜 마음으로 보면 학춤이 보이고, 슬픈 마음으로 보면 어머니의 뒷모습,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조석으로 산발(散髮)을 하고 상청에 앉아 '애고 애고'하며 통곡을 하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그려지는 하얀 파도가 다시 또 보고 싶어진다.


폭풍이 불지 않아도 파고가 3미터 이상은 돼야 내리는 파랑주의보(波浪注意報)는 기상청에서만 내리고 바닷가에만 해당되는 줄 알았더니 마음으로도 내리고 가슴에서도 인다.

바람 없는 바닷가에서 높게 이는 파도는 사람의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바람과 파도는 불가분의 관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다. 바람이 없어도 이렇듯 철썩철썩 높은 파도를 일으키지 않는가.


a

동행이 있으면 담소를 나누고, 혼자여야 한다면 사색을 할 수 있어 좋기만 할 거다. ⓒ 임윤수



철썩거리는 파도에 두 발을 담그면, 여름 내내 묵힌 발꿈치 때, 발가락 사이에 숨어있는 묵은 때조차 시원하게 씻어 줄듯 하지만 바닷물이 짜다는 핑계로 언저리만을 빙빙 맴돈 게 후회가 된다.

저만치 있던 파도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오더니 짭짜래한 소금기 풍기며 하얗게 무너져 간다. 몸뚱이 던지면 몸뚱이 씻어주고, 마음을 던지면 마음마저 깨끗하게 씻어줄 듯하니 다시 또 그곳에 가고 싶다.

그 사람,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지만 간절하게 108배를 올리던 남자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상을 맺는다. 무슨 사연이 있고, 무슨 바람이 있어 그토록 애절한 모습으로 기도하였는지는 몰라도 나그네가 보았으니 파도도 보았을 거다.

a

그곳엘 가지 못하는 마음은 벼랑위에 선 낙락장송의 외로움이다. ⓒ 임윤수



나뭇잎이라도 하나 주워 편지 정도는 띄울 걸 그랬나 보다. 받는 이도 나그네고 띄우는 이도 나그네지만 일엽편주 돛대가 되어 두둥실 마음 띄울 걸 그랬나 보다. 훌쩍 다녀온 곳이기에 금방 잊을 줄 알았는데 부서지던 파도가 꾹꾹 불도장을 찍는다.

번뇌, 시름, 망상, 탐욕 까지도 모두다 씻어줄 것 같은 그 바닷가엘 다시 또 가보고 싶다. 파도소리가 보이고, 포말의 속삭임이 들릴 것 같은 홍련암엘 가지 못하는 마음은 벼랑위에 선 낙락장송의 외로움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8일 오후,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찍은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9월 8일 오후,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찍은 것입니다.
#홍련암 #낙산사 #의상대 #낙락장송 #탐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AD

AD

AD

인기기사

  1. 1 '판도라의 상자' 만지작거리는 교육부... 감당 가능한가
  2. 2 구강성교 처벌하던 나라의 대반전
  3. 3 은퇴 후 돈 걱정 없는 사람, 고작 이 정도입니다
  4. 4 [단독] "문재인 전 대통령과 엮으려는 시도 있었다"
  5. 5 복숭아·포도 풍년 예상되지만 농가는 '기대반, 걱정반' 왜냐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