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탱자'에게서 온 가을편지

[나무와 사람과 시(詩)] 정재규의 <내안의 탱자나무 울타리>를 빌려

등록 2007.09.13 15:39수정 2007.09.1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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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위암, 식도암에 좋데요. 가시가 많은 나무들은 대개 민간요법 항암제로 쓰인다

위암, 식도암에 좋데요. 가시가 많은 나무들은 대개 민간요법 항암제로 쓰인다 ⓒ 송유미

▲ 위암, 식도암에 좋데요. 가시가 많은 나무들은 대개 민간요법 항암제로 쓰인다 ⓒ 송유미
우리 동네 여지껏 지켜준 탱자울타리?
 
뽀죡뾰죡한 가시들이 침을 내민 탱자울타리에 노란 탱자가 열렸다. 아니, 이런 탱자울타리가 동네 한복판에 있었나 ? 오고 가며 몇 백번 이상은 보았을 터인데 이제야 만나는 공터를 지키는 탱자 울타리 안은 파릇파릇 채소밭이다.
 
겨울이 되면 온갖 잡풀더미와 휴지와 비닐조각으로 어지러울 공터, 공터를 지키고 있는 탱자 울타리 사이로 풀벌레 그리고 이름모를 새들이 들어와 지줄댄다.
 
다른 나무들의 넓은 품을 두고 하필 가시가 뽀쬭뽀쬭한 탱자울타리에 둥지를 튼 것일까.
 
가만히 생각하면, 아무도 살지 않는 본가를 지켜주던 울타리도 가시나무였다. 그 옛날 죄수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가시울타리를 쳤던 것이, 그후 일반화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그보다는 농경 사회에서는 먼 들판으로 일을 나간 빈 집을 지켜주기 위해 가시울타리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을까.
 
저 새들이 유독 가시 울타리 속에서 둥지를 틀고 울어대듯이, 높은 나무꼭대기에 새의 둥지를 틀듯이, 사람의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있어야 안전한 새의 둥지를 지켜주듯이, 우리의 빈 농촌의 집을 지켜주던 가시 많은 탱자나무는, 정말 정겨운 이웃마을의 친구 이름처럼 다정한 나무인 것이다. 
 
 
노란색 테니스 공 같아요. 아니 '달의 물방울'같아요.

노란색 테니스 공 같아요. 아니 '달의 물방울'같아요. ⓒ 송유미

▲ 노란색 테니스 공 같아요. 아니 '달의 물방울'같아요. ⓒ 송유미
 
 알레르기 등 항암제로 쓰이는 탱자
 
 언젠가 심한 고등어 알레르기로 인해 얼굴과 온 몸에 붉은 반점이 돋아 괴물처럼 검은 보자기를 덮어쓰고 있었을 때, 어머니는 노란 탱자 삶은 물을 나에게 먹이셨다. 탱자물이 그렇게 쓴 줄은 처음 알았지만, 그 노란 탱자물을 먹고 자고 일어나 보니 말갛게 반점이 사라진 기억이 한번이 아니라 서너번이나 되는 것이다.
 
 그후 탱자는 나에게 특별한 나무 이상이 된 셈이다. 대개 가시가 많은 가시오가피, 엄나무 등은 한약재로 쓰이듯이 탱자 열매의 삶은 물이나 가루는 민간요법의 항암 치료제로 쓰인다고 한다. 
 
 종종 나무에 빗대어 큰 재목이니 큰 인물이라고 빗대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탱자나무는 어떤 이일까. 아마도 어미 고슴고치와 같이 사랑이 많은 '어머니'의 나무가 아닐까. 찔레꽃처럼 한의 가시를 품은 핍진했던 지난날의 어머니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들이 그 시대의 어려움에서 안전하게 지켜졌듯이… 그러나 이제 탱자나무 울타리처럼 우리를 지켜주는 어머니의 상도 많이 변화하고, 시골에서도 탱자울타리 친 집은 찾기 힘들다.
 
 
다슬기나 소라의 속을 빼먹던 탱자가시 어미고슴도치의 사랑처럼 가시 많은 탱자가 빈 집을 지켜준다

다슬기나 소라의 속을 빼먹던 탱자가시 어미고슴도치의 사랑처럼 가시 많은 탱자가 빈 집을 지켜준다 ⓒ 송유미

▲ 다슬기나 소라의 속을 빼먹던 탱자가시 어미고슴도치의 사랑처럼 가시 많은 탱자가 빈 집을 지켜준다 ⓒ 송유미
 
어머니의 품 같은, 나무의 어머니 탱자나무
 
 도심의 공터를 지켜주는 탱자나무 울타리, 본디는 집 한채가 포클레인에 실려나간 자리.사람들도 떠나고 집도 자취 없이 사라졌지만, 집터를 지키고 있는  탱자나무는 사실 이 골목길의 오후 즈음이면 텅 빈 동네의 집들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쓸쓸한 빈터에서 바리케이트를 치면서 할머니들이 갈아 놓은 채마밭을 지키고 있는 울타리. 그 무성한 가시 사이로 하늘은 너울거리고 자유롭게 저희들끼리 탁구를 치는 듯이 작은 공만한 탱자들이 허공을 자유롭게 오간다. 
 
 내 마음도 숱한 사람들의 자리로 가득하나 한 구석이 텅빈 것처럼 이 도시의 집들도 사람 사람들이 가득 찼으나, 오후에는 텅빈 쓸쓸함을, 저 탱자나무가 가시면류관을 머리에 쓴 그 분처럼 지켜 준 것이다. 
 
 많은 사랑 중에 가시 많은 어미 고슴도치의 사랑만큼 끔찍한 사랑이 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 사랑은 달콤하고 평화롭다고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가시밭길의 아픔없이는 가능한 길이 아니라고 길목에 버려져 스스로를 지키며 빈 공터의 외로움을 지키는 탱자는, 나에게 <내 안의 탱자나무 울타리> 시가 적힌 가을 편지를 건네고 있다.
 
그 누구도 근접하지 못하게
촘촘히 가시들 스크럼을 짜고 있다.
나뭇잎 속에 숨겨둔 피뢰침을 모른 채 
병아리는 어미닭 몰래 종종걸음으로 두려움도 모르고
탱자나무 덩굴 밑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사계절, 노란 병아리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가시는 부드러워지고 하얀 탱자꽃을 피우며
달콤한 향기로 들판의 새들을 불러모은다.
태양이 벌겋게 타오를수록
탱글탱글한 탱자를 위해
쉴 새 없이 깊은 뿌리가 뽀쬭한 햇살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 가시 사이마다 노란 열매가 매달려 간다.
나는 유독 가시 많은 가시나에게
쿡 찔린 상처의 열매가
이제사 툭 그리움 저편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돌담보다 더 내 안의 단단한 울타리를 위해
가시들 일제히 날카롭게 발톱을 세운다.
 
-정재규 <내 안의 탱자나무 울타리> 중에서
2007.09.13 15:39ⓒ 2007 OhmyNews
#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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