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과 에피게니아'페터 파울 루벤스, 1617년경,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비엔나 미술사박물관
화면상 이 정도 크기로밖에 보여 드리지 못해서 아쉽네요. 실제 작품은 세로가 2m, 가로가 3m 가까이 되는 대작이거든요.
위 그림은 루벤스가 문학작품에서 모티프를 찾아낸 작품입니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입니다. '데카메론'은 10일간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세 청년과 일곱 숙녀가 페스트 병을 피해 교외 별장에 있으면서 10일에 걸쳐 순번대로 이야기한 100개의 화제를 수록했습니다. 위 그림은 그 이야기 중 하나의 한 장면입니다.
귀족출신이나 방탕하여 시골 농가에 쫓겨 가 살고 있던 시몬이, 아리따운 에피게니아의 잠든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하는 장면입니다. 후에 시몬은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해서 에피게니아와의 결혼에 성공합니다.
문학작품에서 소재를 땄지만 신화 속 장면 같습니다. 루벤스의 일차적 관심은 불그스레한 볼과 하얀 피부를 가진 육감적인 신체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주변에 그려진 여러 동물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의미를 상징합니다. 그림 밑의 긴꼬리원숭이는 어리석음을, 발 밑의 개는 믿음을 나타내는 식입니다. 또 당시의 미인의 기준을 엿볼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를 소개하면서, 17세기 북부 유럽의 또 다른 화가 루벤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렘브란트와 루벤스는 동시대 사람이면서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았기에 자주 비교됩니다. 한마디로 루벤스는 부귀와 명예, 가정의 행복을 동시에 누린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게다가 루벤스는 미술의 모든 분야를 넘나들면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17세기의 바로크 회화는 둘로 나뉠 수 있습니다. 가톨릭적이고 귀족적인 화풍과 프로테스탄트적이고 시민계급적인 경향으로 나뉠 수 있는데, 렘브란트는 후자에 루벤스는 전자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렘브란트가 태어난 북부 네덜란드는 프로테스탄트가 지배했고, 그 남부지역 그리니까 한때 네덜란드 영토이기도 했던 지금의 벨기에 지역(플랑드르 지역)은 스페인 지배 하에 있었고 그래서 가톨릭의 영향 하에 있었습니다. 비교적 서로 가까운 지역에서 자랐지만 다른 교육 환경을 지닌 셈입니다.
루벤스는 렘브란트와 달리 라틴학교를 다니면서 고전 미술과 라틴어를 배워서 나중에 큰 도움을 받습니다.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선배 화가들의 예술을 배웁니다. 그는 온 세계를 자기 고향으로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궁정화가가 되고, 공방도 운영해서 돈도 많이 법니다.
위의 그림을 보면 다음의 설명이 수긍이 갑니다.
"플랑드르 출신의 루벤스는 17세기 유럽 바로크 회화의 역동적인 힘과 충일한 생명감을 가장 선명히 드러내 보인 거장이다. 그의 형태는 용트림하는 듯 격정적이고 색채는 감각적이며 화사하다. 당시 플랑드르 지방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화풍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고전적인 전통을 잘 융합해 매우 개성적이면서도 인상적인 화풍을 창안했다." - <화가와 모델> 중에서루벤스는 외교관으로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1630년 영국과 스페인 간의 평화조약 체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그 한 예입니다. 오랜 기간 이른바 평화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그의 그림에는 종교적 주제와 신화적 주제가 마음껏 인용됩니다. 당시에는 여성의 나체를 그리는 것이 금기시되었으나, 신화에 있어서 만큼은 용인되었습니다. 지난 번 기사에서 처럼 신화 속 인물은 나신으로 등장하기 일쑤고, 더욱이 여신일 경우에는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데 있어 화가들이 주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최상의 미인을 신화 속 여신을 통해서 구현해 나갔습니다.
“(루벤스의 작품에서는) 종교적 감성과 함께 관능적 기쁨까지도 수용하는 일종의 가톨릭적 휴머니즘이 들어 있으며, 에너지로 충만한 낙관적인 정신성이 엿보인다… 루벤스의 작품이 지닌 매력은 바로 활력에 있다. 즉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즐겁고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 <웬디 베켓 수녀의 명화이야기> 중에서무척 낙관적인 루벤스의 면모를 위의 인용 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렘브란트도 그랬지만, 신화 속 여신의 얼굴에 자기 부인의 얼굴을 그려넣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나신의 모습이고요. 특히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후 만난 두 번째 부인 엘렌에게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자리를 줍니다.
렘브란트와 조금은 다르게 루벤스는 사실성을 중시했고 누구보다 그걸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해냈습니다. 초상화 그릴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에게 어울리는 참 멋진 표현이 있습니다.
“실제로 루벤스에게 있어 온 세상은 잘 차려진 잔칫상과 같은 것이었는데, 오직 그만이 완전히 소화해낼 수 있었다.” - <조토에서 세잔까지> 중에서두 거장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현장에서 진품을 봐야 그 섬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러고 나서 관련 자료를 조금이라도 접할 수 있다면 시야도 넓어지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가슴도 넓어질 것입니다. 전시회장은 현재의 다른 모습의 세상으로 통하는, 또 과거의 무대 속으로 들어가는 타임머신의 장소입니다.
덧붙이는 글 |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 덕수궁 내 덕수궁미술관, 9월 30일까지, 02-368-1414, 월요일 휴관, 저녁 8시 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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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번역은 지금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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