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항사터 석조 비로자나불갈항사터 쇠창살안에 모셔진 석조 비로자나불
문일식
석조 석가여래좌상이 전각 안에 숨겨지다시피 모셔져 있다면 사시사계를 온 몸으로 느끼며 바깥세상을 맘껏 만끽하고 있는 석조 비로자나불도 있다. 이 불상은 목 아래쪽은 옛 그대로 인듯 한데 머리는 근래의 것으로 얹혀져 있다. 더구나 감옥같은 쇠창살이 사방을 가로막고 있어 동물원 우리 안의 동물처럼 안스러운 느낌이 먼저 든다. 그래도 좋단다. 저 전각 안에 있는 답답한 석조여래보다는 자기가 낫다는 듯 한껏 표정이 밝다. 흉물스런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표정 하나는 일품이다.
폐사지를 대표하는 고달사지나 법천사지,거둔사지,보원사지는 사찰에 대한 윤곽이 또렷하고, 역사를 가늠할 만한 유물들이 남아있어 전체적으로 옛 영화로웠던 시절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지만, 이곳 갈항사지는 그 흔적이 참 묘연하다. 과수원으로 바뀐 갈항사 터의 역사는 세월에 묻히고 과수원이 만들어지면서 땅속으로 또 한번 묻혔다. 그나마 남아있던 흔적마저도 저 먼 서울로 가 있으니 그래서 '사지'라는 표현보다는 '터'라는 표현이 맞는가도 싶다.
대찰의 면모 간직한 직지사김천시내를 가로질러 직지사로 향했다. 갈항사가 죽어서 묻힌 절이라면, 직지사는 그야말로 영화로움을 그대로 간직한 사찰이다. 직지사는 대찰의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모든 것이 반듯반듯하고, 대찰에 어울리게 큼직큼직하다. 직지사 입구까지 시원스레 길이 뚫려 있고, 수많은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직지사 가는 가운데를 떡 하니 버티고 있으며, 주눅들만큼 오래되지 않은 건물들이 큼직큼직하다. 직지사의 역사를 보자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 듯도 하지만, 왠지 큰 사찰들에 대한 삐딱한 시선만큼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가시설을 지나 직지사로 이르는 길까지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오롯한 길과 차들이 다니는 길이 분리되어 있고, 상가로부터 벗어나면 그 소란스러움을 어느정도 정화시키는 공원시설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속세에서 불가의 세계로 들어가기 앞서 속세의 먼지를 조금이나마 떨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직지사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표소와 겸하고 있는 '동국제일가람황악산문'이라는 큰 문을 들어서야 하지만 마침 다리의 보수공사로 한참을 우회해 들어가야 했다. 산문에서 공사중인 다리에 이르기까지도 제법 신선한 길이었던 듯 한데 그 길을 버리고 바로 경내에 이르니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