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학교는 여전히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이고, 갈등을 매듭지을 수 있는 이사회는 언제 열릴지 알지도 못한다. 학생을 비롯한 구성원들은 이제 기다리는데 지쳐간다. 학생들은 답답한 마음에 설문조사도, 항의 서한도, 이사회 앞에서 시위도 벌여보았다. 하지만, 결국 ICU 문제는 끝을 내지 못하고 구성원들의 상처만 깊어가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 ‘글로벌 IT 인재’를 양성하자며 대덕연구단지에 문을 연 한국정보통신대학교, ICU(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University)의 모습이다.
대전에 있는, 한 학년이 150명도 되지 않는 이 조그만 학교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ICU는 개교 이래(학부 개설 2002년) 여러 가지 신드롬을 일으키며 단숨에 KAIST, 포항공대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이공계 대학으로 자리 잡았다.
ICU는 1년 3학기라는 압축적인 학사 운영한다. 또한 모든 전공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며, 입학생 모두에게 장학혜택을 주고, 연구실적을 평가하는 잣대인 SCI급 논문 발표 수도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국내 대학 최초로 외국 대학과 복수학위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외국인 재학생 비율도 최고를 자랑한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1998년, 교육부가 정부 부처의 국립대학설립에 반대하자, 정보통신부는 법적으로 사립대학이되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하는 ‘이상한 모양’의 대학을 만들었다. 그 결과, ICU의 학교법인(한국정보통신학원) 이사장은 정통부 장관이며, 정통부의 정책 본부장이 당연직 이사에 포함되었다.
사실, ICU를 둘러싼 문제는 딱히 작년부터 벌어진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감사원의 지적이 시작된 것은 2004년. 위에 언급한 ‘이상한 모양’이 감사원에 눈에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한 해 100억 원에 달하는 지원금도 다른 사립대학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당사자인 정보통신부는 이를 ‘시정’하지 않았다. 해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관이 이사장을 사퇴하고 지원금을 중단하면, 학교는 더 이상 운영되기 힘들다.
그래서 작년 12월경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KAIST와의 통합방안이다. 마침 KAIST역시 몸집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와중이었고, 일부 교직원 간에 구체적인 플랜 역시 나온 상태다. 그런데 KAIST와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다. 운영을 잘 못했다면 모를까, 제도나 절차의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학교를 없앨 필요까지 있겠냐는 것이다.
감사원 지적대로, 그동안의 ICU에 대한 정부의 지원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에 대하여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빨리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사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보통신부는, 책임을 지기 보다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거나 시간 끌기에 연연하고 있다. 학교를 세울 때의 소신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 없다.
IT 특화 대학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합법적인 정부의 지원책을 마련해 더 육성해야 한다. 만약 그 때 결정이 잘못됐다고 판단된다면 정통부는 솔직히 정책실패를 시인하고 ICU와 KAIST의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정통부가 우왕좌왕 하는 사이 ICU의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내분으로 혼란스러워 하고, 자식을 학교에 보낸 부모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2006년 12월 이사회에서 결론을 2007년 초로 유보한 이후, 학교경영진 및 교수진은 자체적으로 통합TFT와 자립화TFT를 만들어 이사회에 제출할 발전방향을 논의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열린 6월 이사회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사회는 이후 아직까지도 차일피일 미루며 열리지 않고 있다. 결국 혼란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을 비롯한 구성원들이다.
벌써 2008년도 신입생 모집이 시작되었고, ICU로의 진학을 생각했던 많은 학생들이 고민을 하고 있다. 연달아 터지는 루머에, 학부모, 학생, 총장을 비롯한 교직원, 교수들까지 의견이 팽팽히 나뉜 상태이다. 자구책으로 설문조사도, 투표도, 시위도 해 보았지만 외부의 반응은 미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의 책임은 이들에게 있는 것이 아닌데, 결과적인 고통은 이들이 떠 안고 있다. 이들의 고민은 이제 올해 안으로 이 고통이 끝날 수 있을 것인가 이다.
올해는 다름 아닌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해다. ICU의 문제를 논의해 왔던 국회의원들 조차 대선으로 인하여 관심을 돌린 듯 하다. 해법의 열쇠는 다름아닌 정보통신부, 그리고 이사회에 있다. 학생들이 아무리 요구를 한다 해도, 쉽게 될 사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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