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서 가장 먼저 들은 한국말? "빨리빨리"

한국인 속도 따라 현지인들도 '빨리빨리'

등록 2007.09.26 21:25수정 2007.09.2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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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루의 리베르다데 동양인 거리 상파울루 리베르다데 동양인 거리에는 일본인들과 한인들이 집중되어 살고 있다. ⓒ 최오균


상파울루에 도착해 호스텔에 짐을 풀고 리베르다데 거리에 있는 한국관을 찾아갔다. 아내가 죽고 싶도록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했던 것. 하기야 남미를 여행하는 몇달 동안 한국음식을 입에 대보지도 못했으니 담백하고 알큰한 한국 음식을 누군들 먹고 싶지 않겠는가?

리베르다데 지하철역에서 역에서 내려 물어물어 찾아간 '한국관'. 리베르다데 지구에는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을 '동양인의 거리'라고 부른다. 거리에는 일본식으로 세워진 가로등과 일본어 된 간판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띠어 일본의 어느 도시에 온 착각을 불러일킬 정도다.


그 거리에서 우리는 2층에 '한국관'이라는 간판을 발견하였다. 간판만 보아도 반갑다. 2층으로 올라가 한국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한국인은 없고 현지인들만 있다.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

내가 메뉴판을 보여주며 "김치찌개 2인분"하며 두 손가락을 들자 여자 종업원은 금방 알아듣는다. 아내는 허기가 진데다 한국 음식을 빨리 먹고 싶어 한다. 하기야 이구아수폭포에서 밤새 버스를 타고 달려왔으니 배가 고플 수밖에.

"빨리빨리 좀 해 주세요".
"오케이. 빨리빨리".


아내가 한국말로 독촉을 하자, 그녀는 '빨리빨리'란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한국말을 좀 할 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그저 씩 웃기만 하면서 다시 건네는 말은,

"빨리빨리".


그뿐이다. 그런데 정말로 빠르게 김치찌개가 나왔다. 그녀는 마치 삼바를 추듯 날렵하게 김치찌개를 들고 왔다.

"정말로 빨리 나왔네!"
"빨리빨리……."


그녀는 이 말만을 되뇌며 다시 씩 웃었다. 김치찌개를 다 먹어갈 무렵 한국인으로 보이는 60대의 중년신사가 나타났다. 여자 종업원은 그가 이 식당의 보스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하도 반가워 내가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더니 그도 반가이 맞이한다.

"두 분이서만 이렇게 멀리 브라질까지 배낭여행을 오시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그저…, 소갈머리가 없는 부부지요."
"별말씀을…, 그래 상파울루 구경은 좀 하셨나요?"
"오늘 아침에 막 도착을 했는걸요. 김치찌개가 참 빨리도 나오고 맛도 있군요."
"아, 그래요. 그것 참 다행이군요."
"종업원들이 다른 한국말은 할 줄 모르는데 '빨리빨리'란 말은 금방 알아듣더군요."
"아하 그거요. 이곳에 한국인 여행자들이 들이닥치자 말자 모두들  빨리빨리 달라고 어찌나 닦달을 하든지 현지인들이 가장 먼저 자연스럽게 배우는 한국말이랍니다. 하하."
"하하, 그렇기도 하겠군요."

가장 빨리 고쳐야 할 한국의 문화병 "빨리빨리"

한국인들이 여행지에 와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빨리빨리'란다. 그러다 보니 그 말을 가장 먼저 배운다는 것. 중국에 갔을 때에도 같은 말을 들었는데 이곳 상파울루에서도 마찬가지다. 계산대로 가서 음식 값을 지불하면서 여자 종업원에게 감사하다고 했더니 그녀는 "빨리빨리"를 농담조로 속삭이면서 눈웃음을 친다. 이거야 정말.

빨리 가 봐야 빨리 죽기만 할 터인데, '빨리빨리병'은 정말 고쳐야 할 한국의 문화병이 아닐까?  물론 빨리빨리 문화가 경제를 급성장하게 하는 원동력도 되었지만, 성수대교를 무너뜨리게 하고, 삼풍백화점의 참사를 불러오지 않았던가?

"8282"란 서비스 번호를 내걸고 급성장을 하던 D기업도 결국 남의 돈으로 문어발식 경영을 하며 너무 빠르게 성장을 하다가 빠리 무너지고 말았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란 우리 속담과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 느려도 착실하게 하면 이긴다)란 서양 속담을 여행 중에도 새삼 다시 되새겨 보게 한다.
#상파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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