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책시렁에 숨은 책 (2)

[사라진 책 24] <독서술>, 소화출판사 손바닥책, <평화>

등록 2007.09.29 11:34수정 2007.09.2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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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두뇌 회전을 도와주는" 독서술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요즈음에도 이런 이름으로 책이 나오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읽으려 할까요. ⓒ 최종규

▲ 겉그림 "두뇌 회전을 도와주는" 독서술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요즈음에도 이런 이름으로 책이 나오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읽으려 할까요. ⓒ 최종규

4. 두뇌의 회전을 도우는 독서술

 

- 책이름 : 두뇌의 회전을 도우는 독서술
- 글쓴이 : ?
- 펴낸곳 : 신조사(1972. 8. 15.)


책을 말하는 책이 요즘 들어 퍽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너무 갑작스럽다고 할까나, 어떤 유행이라고 할까나, 그동안 거의 없던 ‘책을 말하는 책’이 나오는 까닭은 좀 얄궂다고, 수상쩍다고 생각합니다.


.. 읽는 책의 선택과 읽지 않는 책의 선택은 표리의 관계가 있다.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위해 책을 읽는다. 그밖의 책을 읽지 않는다고 정하는 것도, 책을 읽지 않는 연구의 첫발이고 기본인 셈입니다 ..  (116쪽)


요즘 쏟아지는 ‘책을 말하는 책’은 ‘우리들이 읽을 만한 책’을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두루’ 이야기한다거나 ‘깊이’ 이야기한다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뜻과 생각과 마음에 맞게 ‘다 다르게 반갑게 맞이할 만한 책나라’를 열어젖히는 이야기까지 나아가지도 못한다고 느낍니다.

 

뭐랄까요, 우리가 읽을 책이 있다면 ‘읽을 수 없는 책’이 있는데, 읽을 수 있는 책과 읽을 수 없는 책을 제대로 나누어 말하지 않거든요. 아니, 못한다고 할까요.

 

‘책을 말하는 책’이 많이 나오는 까닭이라면, 요즘 들어 참으로 수많은 책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책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큰 책방에도 제대로 꽂히지 못합니다. 신문이나 잡지나 인터넷에도 제대로 못 알려진 채 사라지는 책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여태까지 나온 ‘책을 말하는 책’들은 ‘반갑게 나왔으나 빛을 못 보는 책’은 거의 다루지 못합니다. 아니, 아예 안 다룬다고 해야 맞습니다. 굳이 ‘책을 말하는 책’에서까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만한 책, 굳이 이런 책에서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훤히 아는 책밖에 못 다룬다고 하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책을 말하는 책’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루에 새로 나오는 책만 해도 수십 가지가 될 테고, 한 주면 수백 가지에서 천 가지, 한 달이면 만 가지가 넘을 수 있겠지요. 그러면 우리들은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까요. 바지런히 읽어서 날마다 두 권씩 읽는다 해도 한 달 동안 100권 읽기 어렵습니다. 한 해에 1000권 읽기란 참 까마득합니다. 더구나 우리들이 책만 읽고 살아갈 수는 없는 터.

 

그렇다면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책 가운데 ‘저마다 다 달리 살아가는 우리들한테 골고루 알맞는 책’이나 ‘저마다 다 달리 살아가는 우리들한테 따로따로 알맞을 책’은 어떻게 가려야 좋을까요. 어쨌든 우리 스스로 눈길과 눈높이를 추슬러야 하지만, 눈길과 눈높이는 어떻게 추슬러 나가야 좋을까요.

 

‘책을 말하는 책’은 이런 이야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읽으면 좋은 책’과 ‘읽어야 할 책’만 아니라 ‘읽지 않아도 되는 책’과 ‘읽을 까닭이 없는 책’과 ‘읽어서 시간만 버리는 책’을 저마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말하고 이끌 수 있어야 좋아요.


... 옛날 사람뿐 아니라 지금의 독서가라도, 이를테면 아랑은 “되풀이 읽을 수가 없는 소설이라면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다”고 했읍니다. 그는 다시 일보 전진하여 “무릇 책을 읽는데 노으트를 할 필요는 없다. 노으트를 하지 않으면 잊어버릴 만한 일이라면, 잊어버리는 편이 위생적이다. 잊혀지지 않을 만한 일이라면, 일부러 종이에 적을 것까지도 없다”고 까지 말했던 것입니다 … “늦게 읽어라” 하는 것은 “고전을 읽어라” 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고, 또 반대로 “고전을 읽어라” 하는 것은 “늦게(천천히) 읽어라” 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겠지요 ... (53∼55쪽)


<두뇌의 회전을 도우는 독서술>이라는 책이 1972년에 나왔습니다. 얼핏얼핏 ‘일본책을 그대로 베끼지 않았나?’ 싶은 대목이 있지만, 군데군데 ‘한국사람이 썼구나’ 싶은 대목이 있습니다. 글쓴이를 밝히지 않고 ‘편집부’라고만 했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은지, 책을 어떻게 마주하면 좋은지, 책이란 우리 삶에 무엇이며, 책으로 우리 삶을 어떻게 가꿀 수 있는지를 참 단출하고 알뜰히 펼쳐보입니다.

 

그런데 이만한 책이 나온 지 서른다섯 해가 지난 2007년이지만, 아직까지 이만큼 제 눈을 밝혀 주는 ‘책을 말하는 나라안 책’은 눈에 안 뜨입니다. 하지만, 아직 제가 못 알아보았다고 해야 옳고, 못 찾았다고 해야 옳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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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소화 출판사에서 펴낸 "한림신서"는 책무늬가 이렇습니다. 빛깔만 달리해서 수십 권이 나왔습니다. ⓒ 소화

▲ 겉그림 소화 출판사에서 펴낸 "한림신서"는 책무늬가 이렇습니다. 빛깔만 달리해서 수십 권이 나왔습니다. ⓒ 소화

5. 소화출판사 손바닥책(문고판)

 

- 소화출판사 손바닥책 (한림신서)
- 1995∼ (지금도 나옴)


품위가 있는 손바닥책이 있습니다. 교수나 학자들 짤막한 논문을 대충 실어서 엮어내는 손바닥책(요즘 이런 손바닥책이 곧잘 나옵니다)이 아니라, 여느 낱권책하고 똑같은 알맹이를 더 꼼꼼히 살펴서 묶어내는 손바닥책입니다.

 

낱권책이 아닌 손바닥책으로 엮는 까닭은 여럿입니다. 먼저, 누구나 손쉽고 값싸게 사서 읽도록 하려는 생각. 다음으로, 차곡차곡 모아 읽으면서 자기 생각과 머리를 가꾸도록 하려는 뜻. 그리고 책을 펴내는 곳에서는 되도록 적은 돈으로 좀더 많은 책을 펴내고픈 움직임.

 

1990년대에 나온 손바닥책 가운데, 우리 삶과 문화를 살찌우는 손바닥책 묶음을 딱 하나 들라면, 저는 서슴없이 소화출판사 ‘한림신서’를 꼽습니다. ‘일본학총서’라는 이름이 붙기도 한 책으로, 요사이는 새로운 호수가 나오지 않는 듯하지만, 1995년에 첫 호를 낸 뒤 꾸준하게 ‘일본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헤아리고 짚을 수 있는 좋은 책’을 가려뽑아서 펴내고 있습니다.

 

소화출판사 ‘한림신서’는 처음부터 한국에 번역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고 나온 책으로, 일본사람이 일본 사회와 문화를 똑똑히 살피고 깨달아 ‘자기(일본)만 아는 속좁은 사람이 아니라 이웃(아시아든 지구든) 삶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서로를 섬기고 아낄 수 있는 마음, 이리하여 일본사람으로서 일본 사회와 문화를 더 소중히 여기도록 하려는 마음’을 담아서 낸 책들입니다. 이 책들 가운데 한국사람으로서 한국 사회와 문화를 좀더 깊이 헤아리고 살피는 가운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면 좋을 길을 찾아보려는 움직임을 담은 책을 추려서 옮겼어요.

 

어제 잠깐 헌책방에 들렀다가 이 소화출판사 손바닥책이 서른네 권이나 한꺼번에 들어온 모습을 보고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참말 누가 이 소중한 책을 이렇게 알뜰히 모으며 보셨을까. 그분은 어이하여 이 소중한 책을 이렇게 깨끗하게 간수하셨는데도 헌책방에 내놓으셨을까. 마음 같아서는 모두 사들이고 싶었지만, 이 책꾸러미를 내놓아 준 분은, 어느 한 사람이 혼자 차지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골고루 살피고 느끼고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리라 믿으며 딱 두 권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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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버나드 벤슨이 쓴 <평화>는 여러 출판사에서 다 다른 번역으로 나올 만큼 사랑받던 책이었습니다. ⓒ 분도출판사

▲ 겉그림 버나드 벤슨이 쓴 <평화>는 여러 출판사에서 다 다른 번역으로 나올 만큼 사랑받던 책이었습니다. ⓒ 분도출판사

6. 평화

 

- 책이름 : 평화
- 글ㆍ그림 : 버나드 벤슨
- 옮긴이 : 이미림
- 펴낸곳 : 분도출판사(1982. 8. 20.)


아무리 맛난 밥이 앞에 놓여 있어도 우리들이 먹을 수 있는 부피는 한 그릇. 두 그릇이나 세 그릇까지 먹을 수 있다 해도, 한꺼번에 열 그릇이나 서른 그릇을 먹을 수 없습니다. 한 끼니로 한 그릇을 먹으려 하지 않고 열이나 스무 그릇을 먹으려고 하면 탈이 납니다.

 

아무리 훌륭한 책이 가득가득 꽂혀 있는 책방을 찾아가게 되더라도, 우리가 살 수 있는 책은 몇 가지일 뿐. 먼저, 주머니에 돈이 모자라겠지만, 다음으로는 애써 사 둔 책을 읽을 수 없기 때문.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밥 부피가 있듯이, 한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 부피가 있습니다. 돈이 많아서 자전거를 열 대나 백 대를 사들여 놓는다 해도, 정작 우리가 탈 수 있는 자전거는 한 대.

 

넉넉하게 둔다든지, 뒷날을 생각하며 미리 갖추어 둘 수 있겠지요. 또, 앞날을 헤아리며 차근차근 모아 두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쓰지 않고 쌓기만 한다면, 나누지 않고 모으기만 한다면, 남한테 베풀지 않더라도 자기 스스로도 다 쓰거나 즐길 수 없는데 끌어안고만 있다면, 사람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삶을 꾸리는 동안 ‘자기가 모으거나 갖춘 것을 즐기기’보다는 ‘자꾸자꾸 더 모으는 데에만 마음을 쓴다’면, 새로운 목숨으로 태어나 이 땅에서 발을 디디는 보람이란 무엇일까요.

 

있으면 있는 만큼, 없으면 없는 만큼 쓰면 된다고 느낍니다. 있으면 있는 만큼, 없으면 없는 만큼 즐기면 된다고 느낍니다. 꿈을 키우고 뜻을 가꾸어 가는 일은 좋으나, “부자가 될래요”, “대통령이 될래요”, “일류대학교에 갈래요”, “잘생긴 사람을 사귈래요” 하는 목적에만 끄달려, 정작 “부자가 되어서는 무엇”을 하며, “부자가 되기까지는 어떻게”살며, “부자란 자기 삶에서 어떤 값이나 뜻이 있는가”를 찾지 못한다면, 우리 삶은 언제나 평화 아닌 전쟁으로 얼룩지지 싶습니다.

2007.09.29 11:34 ⓒ 2007 OhmyNews
#사라진 책 #절판본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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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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