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 발행 고등학교 <국사> 79쪽에 있는 세계지도.
국사편찬위원회
이 지도를 보면, 명나라와 여진을 별도로 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명나라와 여진족을 모두 오렌지색으로 표기함으로써 명나라가 여진족 지역까지도 통치한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고등학교 <국사>의 79쪽 외에 88쪽에서도 동종의 지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명나라 지도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그것은 바로 명나라의 동쪽 영토가 실제보다 훨씬 더 넓게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만주(요동) 땅이 온통 명나라 영토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지도2>에 따르면 임진왜란 10년 전인 1582년까지도 만주(요동)가 명나라의 영토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명나라는 만주 전체에 대해 통치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당시에는 여진족 정권들이 만주의 대부분 지역에서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중국정부가 발행하는 명나라 지도는 엄연히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도1>에 보면, 만주지역에 노아간도사(奴兒干都司)라는 행정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이 노아간도사는 명나라의 행정기구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만주는 명나라 땅”이었다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이 노아간도사의 존재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노아간도사는 그냥 설치되는 데에 그쳤다는 점이다. 설치만 되었을 뿐 실제로 기능을 발휘하지는 못한 것이다.
만주의 일선 지역에 명나라 지방관들이 파견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조세 징수나 요역·군역 징발 등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방관도 파견하지 못하고 세금도 못 거두고 요역·군역도 징발하지 못했는데, 과연 명나라가 만주 전체를 지배했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이 지역에서 이러한 권한을 행사한 주체는 여진족 정권들이었다. 노아간도사는 그냥 설치되었을 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북 5도청을 설치한 것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을 자국 영토로 표기하는 것이나,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 문제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명나라 사람들은 실제로 만주를 지배한 게 아니라 단지 관념적으로만 그렇게 했을 뿐이다.
만약 노아간도사가 명나라 영토였다면, 1479~1481년에 노아간도사와 명나라 사이에 세워진 요동 변장(邊墻, 요동에 세운 긴 담)의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 변장은 당시 명나라가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것이 국경선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이해해야 할까?
이에 대해 중국의 리젠차이 같은 학자는 “명나라의 요동 변장은 한족지구와 형제민족 간의 분계선일 뿐”이라면서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고 하지만, 그저 궁색한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 세상에 자국 영토 안에 국경선 비슷한 것을 세우는 나라가 있을까? 이는 명나라가 노아간도사에 대해 통치의지도 통치능력도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만주의 여진족은 여진족 정권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여진족 정권들과 명나라의 관계는 조선 대 명나라의 관계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조선이 명나라의 책봉을 받았듯이, 당시 여진족 정권들도 명나라 혹은 조선의 책봉을 받았다.
한편, 조선과 명나라 사이에서는 전쟁이 없었지만, 여진족 정권들과 명나라 사이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여진족 정권들은 때로는 명나라와 전쟁을 하고 때로는 명나라로부터 책봉을 받으면서 독립적인 세력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책봉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여진족의 만주지역이 명나라 영토라고 주장한다면, 당시 명나라의 책봉을 받던 조선 역시 명나라 영토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게 치면 <지도1>과 <지도2>에서 조선 영토 역시 오렌지색으로 표기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중국정부가 조선은 별개의 나라로 인정하면서 여진족은 명나라의 일부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선의 경우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후손들이 있지만, 여진족의 경우에는 그만한 후손들이 없기 때문에 마음대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여진족의 후예들이 오늘날 강력한 국가를 이루고 있다면, 중국의 역사지도집에서 명나라 때의 만주지역이 다른 색으로 표기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복잡한 논의를 하지 않더라도, 여진족의 만주가 명나라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점은 일반적인 역사 상식으로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만약 만주지역이 명나라 땅이었다면, 당시 조선 군대가 명나라 군대와 연합하여 여진족 세력을 압박한 결과로 영토 확장에 성공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여진족 지역이 명나라 땅이었다면, 조선이 여진족과 싸워 4군 6진을 개척할 수 있었을까? 조선이 명나라 군대와 연합하여 명나라 영토를 빼앗는다는 게 과연 있을 법한 일일까?
둘째, <지도2>와 같이 만약 임진왜란 직전까지도 만주지역이 명나라 땅이었다면, 임진왜란을 계기로 여진족이 급격히 흥기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전에 자기 땅이 전혀 없었다면 여진족이 임진왜란 이후에 동아시아 최강세력으로 급격히 부상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최소한의 바탕도 없이 세계 최강으로 떠오르는 나라를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누르하치는 여진족을 통일하면서 강성해진 것이지 명나라로부터 독립하면서 강성해진 것이 결코 아니다. 만약 여진족이 명나라의 지배하에 있었다면, 누르하치는 통일의 영웅이 아니라 해방의 영웅으로 알려졌을 것이다. 통일이라는 과제를 추구하려면, 최소한 남으로부터 독립된 상태에 있어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이 명나라 때의 만주지역은 엄연히 여진족의 땅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수많은 여진족 정권들이 할거하고 있었다. 누르하치 등장 이전까지 통일국가를 수립하지는 못했지만, 이 여진족 정권들은 때로는 조선과 명나라를 위협하고 때로는 그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방법으로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자기들만의 땅이 있었기에 그들은 임진왜란을 계기로 급격히 세력을 팽창하여 세계 최강의 국가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이 엄연한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중국정부가 여진족의 만주지역을 명나라 영토에 편입시키는 것은 중대한 역사왜곡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국사편찬위원회가 중국정부의 태도를 본받아 만주를 명나라의 영토로 표기하는 것 역시 옳지 않은 일일 것이다.
만약 명나라 다음 왕조인 청나라 때에 어느 한족 관리가 위의 <지도1>이나 <지도2>와 같은 지도를 만들었다면, 그 관리는 당장에 파면되었을 것이다. 이는 청나라의 지배층이자 여진족의 후예인 만주족을 능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마음 놓고 왜곡할 수 있는 것은 만주족(여진족)이 오늘날 힘없는 세력으로 전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만주족이 남북한 같은 후손들을 남겼다면, 중국사회과학원이 명백히 잘못된 역사지도를 편찬하는 일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토가 실제 이상으로 크게 부풀려진 명나라 지도. 거품을 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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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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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지도, 영토가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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