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유연성, 과도하게 평가해선 안 된다

[주장] 남북정상회담, 북한 속뜻 알아야

등록 2007.10.07 17:48수정 2007.10.0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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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있은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납북자문제, 국군포로문제, 이산가족문제, 그리고 남북경협문제 등 어느 것도 속 시원히 해결된 것은 없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합의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합의사항을 이행하려면 수십조원의 돈이 들 것이라든가, 북한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든가, 심지어 종전선언에서 3자 또는 4자로 한 것은 남한을 배제하겠다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은 성공적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이 된 데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치밀한 사전 준비와 지혜로운 대처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결국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유연한 자세를 취한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서해북방한계선(NLL)을 고집하지 않은 것,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지 않은 것, 한반도 비핵화를 공동선언에 넣는 데 동의한 것, 해주경제특구의 설치에 합의해준 것, 북경올림픽 때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철도를 이용하도록 한 것 등은 김 위원장이 크게 양보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김 위원장은 위에 열거한 사항들을 결코 양보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유연했던 이유


그러면 김정일 위원장은 왜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여러 문제에서 많은 양보를 했을까? 혹 남한의 노무현 대통령이 '압박'을 가하니까 어쩔 수 없이 양보한 것일까? 그렇게 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면 김 위원장은 왜 많은 양보를 할 만큼 유연해졌을까? 그것은 미국과의 수교를 위한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자 한 때문일 것이다. 북한의 김 위원장은 미국과 수교하기를 바라고, 또 이 수교를 위해서는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북미정상회담이 열려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관계가 좋아야 하고 심지어 남한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본 것 같다.

김정일 위원장은 북미수교와 이를 위한 북미정상회담을 대단히 바라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공동선언에서 김 위원장의 요구로 종전선언을 위해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의 정상들이 한반도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자'는 항목이 들어갔다는데, 이것은 종전선언을 계기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북미관계를 개선할 것을 권유했다는데, 이것은 거꾸로 노 대통령이 북미관계의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시사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6자회담의 북한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북핵 불능화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최대한 빨리빨리, 성의껏 하겠다.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했다는데, 이것도 북한의 최대 목표가 북미관계의 정상화 곧 북미수교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핵무기 보유의 기정사실화를 위한 북미수교


그러면 북한은 왜 북미수교와 이를 위한 북미정상회담을 바랄까? 그 최대의 목적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데 있다.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북한이 볼 때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테지만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중국에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지만 미국에는 별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반대하는 중국과는 관계를 단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할 수 있는 미국과는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미국의 대중국포위전략에 동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과 관련하여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종전선언의 당사자로 '3자 또는 4자로 하자'고 제안해서 중국을 배제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은 종전선언에서만 중국을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 자체를 단절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신에 미국과는 관계를 돈독히 하겠다는 것이다.

 

요컨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이나 북핵문제 등 까다로운 문제는 슬쩍 넘기고 경협문제 등에서 상당한 양보를 한 것은 위와 같은 북한 나름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북한의 최대 과제는 정권과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고, 북한의 정권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보유해야 하겠으며, 핵무기 보유를 위해서는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고, 미국의 도움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중국포위전략에 참여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핵무기 보유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정권과 체제의 유지에 가장 위협이 덜 되는 방향에서 경제를 회생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고 볼 것이다.

 

따라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유연한 자세를 보인 것은 위와 같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겠기에 김 위원장의 유연한 자세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김 위원장은 여전히 남북관계가 긴밀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특히 남북경협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번 회담에서도 이 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노 대통령이 남북경협의 확대를 제안했을 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 이를 입증한다. 노 대통령을 포함해서 남한 사람들은 대체로 남북경협을 확대하는 것이 북한경제의 회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니 북한은 당연히 이를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것은 착각이다.

 

물론 남북경협은 북한경제의 회생에 대단히 큰, 가히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북한인민의 민주화 의지와 북한사회의 자유화 물결을 불러일으켜 북한의 정권과 체제를 유지하는데 대단히 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반대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압박은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남북경협의 확대를 설득하려고 한 것이나 남한의 보수세력이 남북경협에 드는 비용을 문제삼아 이를 '북한퍼주기'라고 하면서 반대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 데서 나온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노 대통령이 말한 '역지사지'는 김정일 위원장과 대화해보거나 김정일 위원장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지 않고도 고려했어야 한다.

 

더욱이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를 위한 국무회의에서 "2007 남북정상선언은 남북경제공동체로 나아가는 전단계로서 전면적인 경제관계를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이것은 대단히 성급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입장에서는 결코 '남북경제공동체' 내지 '전면적인 경제관계'로 나아갈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북한이 원하지 않는 일을 과도하게 추진하면 남북관계가 또 악화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래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상당히 유연한 자세를 취한 것을 두고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압박한 때문으로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노 대통령의 압박과 지혜로움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유연한 자세를 취한 것은 노 대통령의 압박 때문이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의 본질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서 남한 입장에서 자화자찬이나 하게 되면 그것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데 도움을 주어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역행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 남한에서 엉뚱한 해석들을 하게 되면 그것을 북한이 보고 기고만장해 해서 남북관계의 개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간파해야 하겠다.

덧붙이는 글 |  장기표 기자는 신문명새정치연대 대표이며 17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입니다. 이 글은 장기표시사논평(www.weldom.or.kr)에 올린 글입니다

2007.10.07 17:48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장기표 기자는 신문명새정치연대 대표이며 17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입니다. 이 글은 장기표시사논평(www.weldom.or.kr)에 올린 글입니다
#김정일 #남북정상회담 #핵무기 #북미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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