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진이 돌아왔다.
90년대 중반 그는 최고의 MC이자 개그맨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동생은 토요일 밤이면 늘 당시 최고 인기였던 <테마게임>을 기다렸고, 국진이 빵을 먹으며 그의 캐릭터가 그려진 스티커를 모았다.
생각해 보면 김국진은 지금의 유재석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특히 재미있으면서도 겸손한 모습 때문에 '안티'도 없었다. 그가 혀짧은 소리로 이야기하던 '어라?', '여… 여보세요?', '사랑해요~', '밤새지 마~란 말이야'는 당대 최고의 유행어였다.
하지만 국진이빵 스티커가 포켓몬스터로 또 유희왕으로 바뀌는 동안, 김국진은 우리의 눈앞에서 그리고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갔다.
물론 간간히 TV를 통해서 골프하는 모습이라든가 사업·결혼과 관련된 좋지 않은 소식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돌아올 줄 알았던 김국진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김국진이 지난 9월 5일 MBC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를 통해 돌아왔다. 그는 힘들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인생 폭락의 40빵을 맞은 기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는 막말방송의 대표주자, 개그프로 속 '동물의 왕국'이라 불리는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 슈퍼주니어의 '신동' 대신 투입되었다.
사실 나는 살짝 걱정이 됐다. 김국진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90년대, 그는 신동엽이나 김용만처럼 재치 있게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강호동이나 이경규처럼 힘 있는 모습으로 프로그램을 주도해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래서 김국진을 더욱 더 좋아했다. 치와와를 닮은 외모에 혀짧은 소리로 구사하던 독특한 말투. 그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친근하고 부담 없는 캐릭터였고 우리는 그에게서 이웃집 오빠나 형에게서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았다.
그랬던 김국진이 오랜 공백을 깨고 컴백한 2007년 현재 방송계에서는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내서 공격하고 뜻대로 안 되면 호통을 치는 토크방식이 '대세'다. MBC <무한도전>에서 이런 개그 스타일이 전 국민적인 사랑을 얻은 후부터 다른 프로그램들에서도 너도 나도 '유행' 따르기 시작했는데 '라디오 스타' 역시 그러한 프로그램 중 하나다.
'라디오 스타'에서는 한 사람이 작은 말실수라도 하면 다른 사람들은 마치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무섭게 그 허점을 파고 들어가 공격한다. 클래지콰이와 크라운제이가 나온 10월3일 방송을 보면 윤종신이 질문을 하다 실수를 하자 DJ와 게스트 모두 일제히 "아니죠"라며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김구라는 삿대질을 하며 "너무 안 보고 나왔네, 좀 보고 나와"라며 짜증을 낸다.
이러한 막말과 말싸움 그로 인한 '산만함'은 이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분위기인데, 때문에 게스트를 초대해 놓고서도 DJ들끼리 입씨름만 하다 끝나기 일쑤다.
착하고 겸손하던 김국진이 '멱살잡이'를?
이 날은 영문도 모른 채 DJ들에게 외면당했던 이전의 게스트들과는 달리, '라디오 스타'의 패턴을 이미 파악하고 나온 클래지콰이·크라운제이와 같은 '준비된 게스트'들이 DJ들의 말장난에 가세해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없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처럼 조금의 약점이라도 보일라치면 바로 공격의 대상이 되는 '라디오 스타'에서 달변가도, 강한 캐릭터도 아닌 김국진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데 저기, 호통을 치며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집어 던지는가 하면 심지어 게스트의 멱살까지 잡는 사람이 있다. 바로 김국진이다.
'라디오 스타'에서 김국진의 역할은 김구라·신정환·윤종신의 말장난 때문에 산으로 가는 배를 바로잡는 일이다. 그런데 그 방식이 "야야야야야!" 소리를 치며 책상을 두드리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강도가 더해지면 멱살을 잡기도 하는 식이다.
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은 좋고, 싫고가 명확히 갈린다. 지난 주 방송에서 김구라·신정환·윤종신은 "김국진이 90년대식 구시대적 개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공격했고, 크라운 제이는 "김국진씨가 새로 오셨다고 해서 봤는데 별로였어요…, 오래 쉬셨다고 하는데 그게 눈에 보여요"라고 했으며, 클래지콰이의 알렉스는 "본인이 오셔서 프로그램이 우아해졌다고 하셨는데, 본인(김국진)이 가장 질 떨어지는 진행을 하고 계세요"라고 했다.
시청자들의 의견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물론 김국진이 와서 프로그램이 보다 더 재미있어졌다고 하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산만한 프로그램에서 김국진의 호통이 맥을 잡아주는 것 같다(김승준 외)"는 의견도 있었고 "오히려 김구라·윤종신·신정환같이 말장난치는 DJ들과의 불협화음과 어색함이 재밌다(김승희 외)"는 의견도 있었다.
불편함만 주는 김국진의 '예의없는' 개그
하지만, 분명 김국진은 '라디오 스타'에 어울리는 진행자는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가 김국진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도 그는 가끔씩 호통을 치고 막말을 하긴 했었지만 그것이 그의 평소 예의바르고 겸손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진 않았다. 그것이 '장난'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 '라디오 스타'에서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뭔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다. '라디오 스타'와 같은 말장난 프로에서는 상대방의 허점이 보였을 때 속도감있게 멘트를 치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이 공격했을 때 거기에 다시 공격을 가하거나 아니면 정형돈식으로 '이러고 있다'며 자학하면서 박명수가 말하는 '상황극'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는 90년대 김국진이 보여줬던 개그스타일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는 90년대에도 말 잘하는 개그맨도, 남을 비하하는 개그를 하는 개그맨도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지금의 개그에 익숙한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그가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시청자 게시판의 이희정)처럼 있다가 말로 안 되니까 몸개그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방식이 '예의없는' 방식이다 보니 재미는 주지 못하고 오히려 불편함만 주는 것이다.
김국진, 그의 '행복한 개그'가 보고 싶다
물론, 그가 맹활약했던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개그환경이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의 개그가 올바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많은 시청자들과 평론가들에 의해서 지적되었듯이 남을 헐뜯고 비아냥거리는 식의 개그방식은 매우 소모적이다. 몇몇 사람들은 '안 보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미디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볼 때 '동물의 왕국'식의 개그스타일은 시청자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현재의 개그 흐름을 빠르게 적응해가지 못하고 있는 김국진에게도 문제가 있겠지만, '내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라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판을 치고 있는 지금의 개그계와 '라디오 스타' 역시 똑바로 가고 있지는 않다.
시청자 게시판 전송이씨의 말처럼 "김국진은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 개그"를 하던 사람이었다. 남을 깎아내리거나 깔아뭉개지 않고서도 웃길 수 있는 개그맨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그가 멱살을 잡게 만든 것일까? 90년대 그의 개그를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서 지금도 그의 '행복한 개그'를 보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김국진이 '라디오 스타' 속에서 나아가 방송계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찾고 개그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홍현진 기자는 티뷰기자단입니다.
2007.10.10 13:21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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