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고교 평준화 정책은 실패하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의 교육공약은 근거 없는 억측에 불과

등록 2007.10.10 10:21수정 2007.10.1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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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9일 여의도 당사에서 교육분야 공약 발표식을 갖고 "연간 30조원에 달하는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며 '사교육비 절반 5대 실천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9일 여의도 당사에서 교육분야 공약 발표식을 갖고 "연간 30조원에 달하는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며 '사교육비 절반 5대 실천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오마이뉴스> 10월 9일자 보도를 보니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연간 30조원에 달하는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고 합니다. 그는 또 "현재의 사교육비 중 절반 정도가 영어 교육비로 들어가고 있는데, 초·중·고에서 사교육 없이도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교육을 시행하면 현재의 사교육비가 절반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합니다. 

 

아울러 한나라당 제5정책조정위원장 이주호 의원은 "매년 3000억~4000억원의 비용만으로도 사교육비 30조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합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추산 내역을 밝히지는 못했다 합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아무리 주먹구구식으로 공약을 만들었기로서니 수백 명 교수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이명박 캠프가 기초통계부터 완전무시하고 그냥 “감”으로 수치를 조작하며 국민들에게 요란하게 나팔을 불어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올바른 교육은 학생들이 합리적 이성과 균형적 시각, 그리고 따뜻하고 풍부한 감성을 갖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교육은 억측과 억지가 아니라 충분한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인 토론과 주장을 존중하지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명박 후보의 교육공약은 전혀 근거없는 억측에 불과합니다.

 

하나하나 살펴 보지요.

 

이명박 후보는 사교육비 총액이 30조라 하는데, 최소한 국가를 경영하고자 대선에 도전하는 사람은 “술꾼들의 주사”와 유사한 통계 부풀리기를 해서는 곤란합니다. 통계청의 실사자료에 의하면 2006년 가계부담 총교육비는 36조8935억이고 그 중 대학 납입금이 7조9997억원, 유·초·중·고 납입금이 4조7004억원, 학원 및 개인교습비는 19조7592억원 정도됩니다. 기타 교재비 등이 4조 정도이구요.

 

영어 사교육비의 규모는 6조 정도로 추산

 

그런데 20조 정도의 학원 및 개인교습비도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입시 및 보습학원비가 10조3675억원, 피아노-미술-태권도-전산-기타 학원이 3조9450억원, 개인교습비가 5조 4468억원 정도입니다.

 

자 이 중에서 영어 사교육비가 어느 정도일까요? 이명박 후보 말대로 영어 사교육비가 15조나 되는 걸까요? 개인교습비의 50%, 입시 및 보습학원비의 30%정도를 영어 사교육비라 쳐도 그 규모는 6조 정도 될 것입니다.

 

좋습니다. 공교육 질을 높여 사교육 줄이자는 주장까지 우리가 비판할 수는 없지요. 문국현 후보도 초중고생의 영어교육에 관심이 아주 많은 것 같더군요. 그렇다면 예산은 어느 정도 필요할까요.?

 

2006년 초중고 전체학급 수는 24만522개이며 교원수는 38만8497명입니다. 영어교육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원어민을 채용하거나 원어민에 준하는 영어교사를 별도로 채용하는 것인데 초중고생 원어민 영어교육을 1주일에 평균 3.5시간 정도 실시한다면 교원 38만8497명이 하던 한 학급의 일주일 수업 27.5시간(일평균 5.5시간)외에 3.5시간을 별도로 하는 셈이므로 별도로 필요한 원어민 영어 교사 수는 38만8497명x(3.5/27.5)=4만9445명이 되겠군요.

 

5만명의 교사들 평균 연봉을 3000만원으로 잡으면 필요 예산은 1조5000억원 정도가 됩니다만 연금 분담·4대 보험 분담 등등 고용주인 국가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 갑니다. 즉 연봉 3000만원의 공무원 유지에 들어가는 국가 인건비는 4000만원을 쉽게 넘어 갑니다. 따라서 국가가 5만명 교사 추가 채용에  필요한 예산은 2조 정도 되겠군요.

 

사실 사교육비가 30조라는 황당한 소리, 3000~4000억 예산으로 가능하다는 황당한 소리만 빼면 영어교육 강화공약을 100% 전부 다 거부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십수 조의 감세를 추진하자고 하는 한나라당이 어느 곳에서 재정을 확보할지 그게 문제이지요.

 

더구나 재정낭비의 주요부분은 건설분야인데 건설경기부양으로 국운융성하자는 사람이 재정낭비를 줄여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하니 앞뒤가 안맞는 것이지요.

 

특성화 고교 300개를 신설하고 납입금은 장학금으로 지원한다는데...

 

또 <오마이뉴스>에 의하면 이명박 후보는 기숙형 공립고교 150개, 자율형 사립고 100개, 전문인 육성을 위한 '마이스터 고교' 50개 등 300개의 특성화 고교를 신설하고 학생들의 납입금과 기숙사비 등은 장학금으로 지원하겠다고 하고, 한나라당 제5정책조정위원장인  이주호 의원은 "선호 학교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300개의 좋은 학교들이 생기면 학생들의 경쟁이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를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경우라 하지요. 이주호 의원 스스로 특목고 때문에 입시경쟁과 사교육 열풍이 과해진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선호 학교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는 측면이 있다”는 발언이 바로 그런 고백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사교육비 과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특목고 등을 강화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특목고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수월성 교육은 일반고교 내에서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것이지요.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어서 입시과열이 거의 없는 유럽 선진국들도 특목고를 거의 안 두는데 우리나라는 국내 대학들을 보다 더 강하게 서열화시키고 더불어 초중고도 강하게 서열화시켜 현대판 카스트제도를 만들려고 난리들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과거 인도 경제성장의 최대의 적은 카스트제도였습니다. 그리고 최근 인도경제 급성장의 여러 요인들 중 가장 핵심적인 것 하나가 국가에 의해 집중적으로 IT교육을 받은 하층 서민들이 부유층으로 급상승하면서 카스트제도가 일거에 해체되어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쟁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구요.? 서열화가 경쟁심을 부추긴다구요? 교육도 그래야 한다구요? 그러면 인도의 카스트제도라도 도입하시지요. 교육과 경제가 가장 빠르게 망하는 길입니다.     

 

고교평준화 정책이 실패했다고?        

 

그리고 또 이명박 후보와 보수언론들이 정말 황당한 주장을 하는데 정말 우리나라 고교평준화 정책이 실패했나요?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지요? 그러면 “한국 학생들의 초중고 학업성취도가 평준화 덕으로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OECD 보고서는 한국을 죽이려는 국제적인 음모인가요?

 

우리나라의 보수언론들은 우리나라의 평준화 교육 때문에 초중고생 학력수준이 단군이래 최대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OECD가 2000년부터 3년마다 비OECD 국가 포함 총41개국의 만 15세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국제학생평가(PISA)를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아주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41개국 조사대상 중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2000년에는 읽기 성취도에서 6위, 수학 성취도에서 3위, 과학 성취도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03년에는 읽기 성취도에서 2위, 수학 성취도에서 3위, 과학 성취도에서 4위, 새로 생긴 문제해결력 성취도에서는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런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한국의 학생들이 평준화 교육 때문에 단군이래 최대의 학력저하를 기록하고 있다니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요.

 

OECD이외에 IEA(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도 1995년부터 4년마다 총 46개국 만 13세 학생과 만 9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과 과학 성취도를 조사하고 있는데, 이 조사에서도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성취도에서 1995년 3위,1999년 2위, 2003년 2위를 차지했고, 과학 성취도에서는 1995년 4위, 1999년 5위, 2003년에는 3위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수언론들과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원 등은 평준화 교육 때문에 우리나라 초중고생 학력이 심각하게 저하되어 국가경쟁력 강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황당한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원 입장에서는 아주 곤혹스럽게도 IMD는 2004년 한국의 대학경쟁력을 60개국 중에서 59위, 2005년에는 52위라고 발표 한 바 있습니다. 도대체 누구의 학력(學力)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을 심각하게 갉아 먹고 있는 것입니까.

 

평준화교육을 받고 있는 초중고 학생들의 학력이 문제입니까. 아니면 엘리트주의에 찌들어 있으면서도 교육경쟁력은 최하수준인 대학교육을 받고 있는 대학생들의 학력이 문제입니까.

 

국제화 시대에 영어교육을 강화하자는 취지에는 동의하나 평준화 교육 때문에 한국의 초중등교육이 망했다는 황당한 소리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국가경쟁력의 근간인 대학교육을 스스로 망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학업성취도를 보이는 초중고 교육을 국가경쟁력 약화의 주범으로 모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마녀사냥입니다.

 

어떻게 60개국 중에서 50위권의 실력을 가진 한국의 대학이 40개국 중에서 학업성취도 최상위권을 달리는 초중고 교육을 질타할 수 있나요. 정말 한국의 대학 총장들과 교수들의 두뇌 구조들은 어떤 구조일까요? 그리고 이런 황당한 논리를 받아들여 공약이라고 발표하는 이명박 후보의 두뇌구조는 또 어떨까요? 제발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교육공약 #이명박 #사교육비 #P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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