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속에 갇힌 꽃을 보셨나요?

[리뷰] 양평 닥터박갤러리에서 홍주영 얼음꽃전 10월14일까지

등록 2007.10.13 12:16수정 2007.10.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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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영전 현수막이 붙은 닥터박갤러리 입구와 전시장2층 내부 ⓒ 김형순


양평의 남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닥터박갤러리, 사진작가 홍주영(59)의 두번째 개인전에서 '얼음꽃(Frozen Flowers)' 연작 30여점을 10월 14일까지 선보인다.

그는 특이한 이력의 작가. 외국어대에서 포르투갈어를 전공, 포스코 본사와 브라질, 멕시코 등 중남미 포스코지사에서 20년 이상 사무소장으로 일했다. 2000년 귀국, 몇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 활동을 주변에 알렸고 올 2월엔 중앙대대학원 영상예술학과를 수석 졸업했다.


그는 이미 남미문화권에 있을 때 아마존 열대우림의 희귀 동식물에 미쳐 있었고, 고대 잉카문명에 매료되어 사진에 담는 일에 빠져 있었다. 그는 늦게 데뷔했을 뿐 준비된 사진작가라 할 수 있다. 다음 달에는 화랑미술제에도 나간다.

그는 작년 첫 개인전 이후 '얼음꽃' 작가로 닉네임이 붙으면서 인기작가로 급부상, 데뷔한지 얼마 안 돼 작품이 1천만 원대로 팔리고 여러 갤러리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렇게 그는 50대 후반기에 사진작가로 인생의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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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하이신스' C-프린트 디아섹방식(saitec 투명 아크릴판에 사진을 압착, 유리를 끼웠을 때처럼 어른거리지 않아 이미지가 선명하게 보임) 120×180cm 2007. 초접사렌즈로 촬영한 것임. ⓒ 홍주영


전시장에 들어서 처음 '얼음꽃-하이신스' 보았을 때 차갑도록 정열적인 색감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런 사진이 주는 에너지가 주변에 그득 넘친다. 전혀 새롭고 낯선 사진 이미지. 꽃 사진은 진부하기 쉬운데 홍주영 작가는 그만의 방식으로 꽃과 얼음을 융합하여 자연의 꽃이 아닌 누구도 시도해 보지 못한 꽃 사진을 창출했다.

얼음꽃 사진이라고 해서 얼음처럼 차가울 줄 알지만 따뜻하다. 아니 오히려 뜨겁다. 색채 또한 밝고 화려하고 대담하고 열정적이다. 거기다 관능미까지 느껴진다.

꽃을 얼음에 가둬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는지 어떻게 그런 발상은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작가의 말로는 처음엔 야생화를 찍는 둥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마케팅 전문가답게 차별화전략으로 자신의 감정이 담긴 사진작업을 시도, 브랜드화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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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박갤러리 2층전시장 내부. 왼쪽에 '보라색 리시언서스, 80×120cm 2006'가 보인다. 리시언서스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북미산 야생화이다. ⓒ 김형순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작가, 그는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정지시키고 오래 남길 수 있는 뭔가를 건져내려는 욕망이 강했을 것이다. 또한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는 작품을 남기고 싶었을 터, 이때 태어난 것이 바로 얼음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중앙대 사진학과 류경선 교수는 홍주영의 사진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런 인간의 욕망 뒤에 숨은 또 다른 이면을 역설적 어법으로 지적하고 있다.


"홍주영의 꽃은 아름답거나 싱싱한 것이 아니라, 곧 시들어 버리고 소멸되어 버릴 꽃의 순수를 정지시켜 찍은 것이다."

작가 내면의 희로애락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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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서양란(2)' C-프린트 디아섹방식(saitec) 51×76cm 2007 ⓒ 홍주영


그의 얼음꽃 연작이 주는 시각적 효과는 눈부시도록 생생하다. 위 '얼음꽃-서양란'에서도 보듯 사이다 거품 같이 생긴 하얀 기포는 똑 쏘는 맛을 내며 환상적이고 몽롱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엷은 자줏빛 꽃잎과 작은 우주 같이 신비하고 놀라운 꽃술의 매력이 이런 사진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고 꽃이 만발한 순간의 절정을 맛보게 한다. 사진 찍을 때 작가가 맛보는 희열도 클 것이다. 이는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을 하는 작가가 받을 수 있는 작은 보상이리라.

작가는 이런 여러 단계의 작업을 통해 작가 내면에 품고 있는 희로애락을 그렸다고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냉각 중 변형에 의해 생성되는 꽃의 형태와 얼음속의 기포, 유채색과 무채색의 대비와 조화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촬영기법을 통해 나의 내면에 내재한 희망과 사랑, 경이로움 그리고 환희와 고통 등의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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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국화' C-프린트 디아섹방식(saitec) 100×150cm 2006. 물이 얼면서 꽃잎을 살얼음처럼 덮는 과정에서 생긴 수포가 환상적이다 ⓒ 홍주영


꽃이 얼음에 뒤엉킨 '얼음꽃-국화' 사진을 봤을 때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난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감각이 마비될 정도다. 그만큼 시원하고 신선하고 산뜻하다는 뜻이다. 요즘 유행어인 '쿨'이란 이런 것인가. 꽃이지만 남성적 힘도 조금은 느껴진다.

또한 이런 독특한 색감은 유럽이나 미국과도 다르고 또 한국적이기엔 역시 작가가 오래 살았던 남미문화의 향기가 난다. 잉카나 아스텍의 원색적 전통의상이나 브라질의 삼바축제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사람의 감정이 훤히 노출된 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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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장미(1)' C-프린트 디아섹방식(saitec) 100×150cm 2006 ⓒ 홍주영


'얼음꽃-장미'는 '얼음꽃-국화'와 다르게 여성적이다. 장미꽃의 붉은 빛은 처녀의 수줍은 뺨을 연상시키고 여성의 섬세한 손길과 향취와 색정까지 느끼게 한다. 또 어떻게 보면 장미를 초현실적이고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그린 그림 같기도 하다.

꽃은 이를 감싸는 물이 중요한데 물이 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기포현상이나 물보다 더 강렬한 힘을 발휘하는 얼음이니 이런 이미지가 관객에게 주는 효과는 걷잡을 수 없는 것이고 그 독특함에 관객은 매료당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체와 신비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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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국화(2)' C-프린트 디아섹방식(saitec) 51×76cm 2007 ⓒ 홍주영


위 '얼음꽃-국화'에서 보듯 작가가 의도한 건, 얼음 속에서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을 형상화한 것인지 모른다. 작가는 삭막한 생활 속에서도 인간이 꽃처럼 아름다워지기 위해 생명체와의 신비한 교감을 통해 사랑과 희망을 누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감상법은 없단다.

홍주영의 얼음꽃은 이제 그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그의 사진도 쉽게 시들지 않고 생명력이 긴 사진작품이 될 것 같다. 그는 삶의 연륜이나 경험이 풍부하고, 젊은 작가 못지 않은 기발한 발상과 빼어난 감각으로 앞으로 큰 기대가 된다. 

사진작가 홍주영은 누구인가?
홍주영은 1948년 충북 청주 생. 20년 이상 포스코사에서 일했고 주로 브라질과 멕시코에서 사무소장 역임. 2000년 포스코를 떠나 중앙대 예술대학원에 사진 전공, 2007년 2월에 수석졸업. 학부 시절엔 사진기자를 함. 상파울루에서 2회 사진전 개최. 작년 대학원 졸업전에서 '얼음꽃전'을 선보여 사진계에 충격을 줌. 현재 'Y스튜디오'를 운영. 한국사진학 회원과 한·중남미협회 회원으로 활약. 한국에서  닥터박 갤러리(양평 2007), 2006년 갤러리 룩스(서울 2006)에서 개인전 개최. 세아제강(서울), 세아베스틸(군산), 태평양자원무역(서울), 중앙대예술대학원 아트센터(서울), 주한 브라질대사관(서울),  상파울로 국립대학교미술관(상파울로)에 그의 작품이 소장됨.

덧붙이는 글 | 홍주영 전 양평 닥터박갤러리 제2전시실
화-일 오전 11:00~오후 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교통편 홈페이지 참고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전수리 19-1 전화 031)775 5600-3. www.drparkart.com


덧붙이는 글 홍주영 전 양평 닥터박갤러리 제2전시실
화-일 오전 11:00~오후 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교통편 홈페이지 참고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전수리 19-1 전화 031)775 5600-3. www.drparkart.com
#얼음꽃 #홍주영 #닥터박갤러리 #양평 #디아섹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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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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