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2007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향하는 길에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오래 전 1972년에 7·4 공동선언을 통해서도 남북간에 이미 통일의 대원칙에 합의하였다. 만일 그때의 합의정신을 충실하게 실천했더라면 오늘날 한반도 모습은 어떠할까.
또 1992년에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당연한 원칙들이 상호간에 합의되었다. 곧 제1조에서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했으며, 제2조에서는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 그 전문에서는 남북은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서로 다짐'했었다.
이러한 몇 차례의 의미있는 합의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들이 끝내 실효성이 없어진 것은 다른 데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국보법이 우리 사회를 야만과 폭력의 암흑으로 옥죄어왔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한반도 사정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상태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세상의 냉전체제는 오래전 붕괴되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상태에 멈춰서 있다. 지난날 조선왕조는 봉건이데올로기에 얽매여 15세기 낡은 체제를 고집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거부하다가 끝내는 서세동점의 변화에 속수무책으로 붕괴되고 말았다. 그 잘못은 식민지배를 거쳐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의 참극에 이르기까지 일파만파의 후과를 야기하였다.
근년 들어 겨우 세계사 전환기라는 기회를 맞아 그동안 지체되었던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의 업보에서 벗어나고자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행보에 나선 것이다. 남북간의 정상회담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에 반해 기득권세력은 지배력 상실이 두려운 나머지 국가보안법을 전가의 보도로 삼아 진보의 앞길을 결사적으로 막아서고 있다.
민주 사회에서 정상적인 법과 제도의 목적은 헌법정신을 구현하면서 사회를 합리적이고 발전적으로 유지하는 데 장애가 되는 저해요소들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국보법은 그러한 합목적적인 필요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회발전과 진보를 억제하면서 국민들을 제한된 범위 안에 가두어두기 위해 만들어진 족쇄와 같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초헌법적으로 모든 법률 위에 군림하고 있다. 국보법을 통해 우리나라는 반공독재국가로서의 형태를 충실히 갖추게 되었다. 지금의 국보법이 추구하는 것은 냉전시대 반공독재의 부활이며, 노리는 것은 민주세력과 진보세력의 말살이며, 수호하려는 것은 공안세력의 파괴적 특권과 기득권세력의 배타적 독점권이다. 기득권층은 사회가 민주화하고 사회의식과 생활 조건이 아무리 바뀌어도 특권을 향한 욕망에 끝이 없어서 보안법을 포기하려는 마음 또한 추호도 없다.
반공독재로 돌아갈 순 없다어느 사회든 한순간이라도 정체되면 그만큼 역사 흐름에서 뒤처지다가 어느 한계에 다다르면 마침내 낙오하게 된다. 인류 역사는 그렇게 전개돼왔다. 수많은 문명과 국가들이 끊임없이 명멸해 온 것은 변화과정에서 한순간이라도 자칫 뒤처지다가 끝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결과이다. 그런데도 우리사회의 보수세력은 역사변화에 순응함으로써 자신들의 생존을 연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사회진보의 발목을 잡음으로써 자신들의 퇴행적 행태를 호도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일시적 착시현상에 따라 위안을 느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외부 세계까지 붙들어 매둘 수는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까마득한 선두를 시야에서 놓치고 말 것이다. 그들이 역사의 흐름에서 탈락하는 것이야 자초한 것이니까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시대착오로 나라의 운명까지 나락으로 빠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의 흐름에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문제를 지적하고 미진한 점을 들추어 개선책을 강구하면서 진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보법의 폐지는 필수불가결한 과제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이루어진 모처럼의 성과를 통일의 초석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또 무엇보다 정상회담의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서 최우선적 과제로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민교협 소속의 안병욱 교수는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남북정상회담 방북길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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