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송가'를 다시 듣다

등록 2007.10.14 10:51수정 2007.10.1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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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약 한 달 후인 11월 9일은 우리와 똑같이 분단의 역사를 경험한 독일인들에게 있어 아주 의미있는 날입니다. 바로 독일을 동서로 나누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1989년 이날 공식적으로 개방된 날, 즉 독일 통일의 역사적 전초가 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동독 사람들은 급속히 서독으로 탈출 행렬을 이루었고, 서독 정부는 서둘러 통일 작업에 들어갑니다. 1990년 기민련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중도우파 연립내각의 콜 총리가 통일 작업을 완수해 나갑니다. 동독은 서독의 5개 주로 합병됩니다. 그러니까 흡수통일입니다.

장벽이 무너지고 처음 맞이하는 성탄절, 서독과 동독 사람 즉 독일 사람들은(우리나라가 통일되면 북한도 남한도 아닌 ‘한국’이라는 명칭이 될까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듣게 됩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20세기 말 가장 뜻 깊은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곡이었습니다. 저는 요즘도 그 합창곡을 듣곤 합니다.  

그건 조금 더 있다 말씀드리고, 우선 다른 곳에서 들은 ‘환희의 송가’를 소개하지요. 바로 11일 개봉한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였습니다.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베토벤 제9번 교향곡 ‘합창’의 4악장이 10분간 동안 영화 중반에 펼쳐집니다. 합창단의 코러스 부분이 나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합창 교향곡’ 초연을 재현한 장면인데, 연주가 끝나고 나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의 ‘몸짓’을 베토벤은 듣게 됩니다. 이미 귀가 먹을 대로 먹은 베토벤이었거든요.

한마디로 <카핑 베토벤>은 화해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 화해가 다양한 곳에서 나타납니다. 카피스트와 베토벤의 갈등과 화해, 난폭한 베토벤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과의 ‘엉성한’ 화해(왜냐하면 여전히 베토벤은 괴팍했고, 사람들은 그 후의 베토벤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토벤 자신과의 화해, 그리고 신과의 화해...

이 영화를 통해 ‘카피스트’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손으로 악보를 옮기던 시대, 관현악단 연주자들에게 전해줄 악보를 정성껏 그리는 일이 바로 카피스트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베토벤 앞에 갑자기 등장한 안나 홀츠라는 여성 카피스트는 베토벤에게 특별한 의미의 존재가 되어줍니다.

창작에 몰두하는 이의 손놀림은 민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고지로 글을 쓰는 작가들의 악필도 빠르게 일어나는 생각을 담아내려 빨라지다 보니 굳어진 습관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베토벤이 처음 음표를 그리며 적어놓은 악보는 악필 수준의 그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악보를 보고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정서해서 악보를 보기 좋게 완성하는 것이 카피스트 안나 홀츠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괴팍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욕을 해대고 무례하게 행동하고 화를 냅니다. 귀가 먹어 상대방의 입을 보면서 대화를 하는 베토벤에게 굳어진 습관입니다. 그의 방도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곳에 천사 같은 음악도 안나 홀츠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안나 홀츠의 재능을 알게 된 베토벤과 같이 작업을 하게 됩니다. 학생 시절 베토벤을 공부했던 안나에게 이 마에스트로와 같이 작업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작곡가 지망생이기도 했던 안나는 자신의 작품을 베토벤에게 평가받고 싶기도 했습니다.
                         
같이 작업해서 완성한 9번 교향곡은 그렇게 해서 초연됩니다. 이 영화의 백미는 여기에서 보입니다. 연주 그 자체보다는, 연주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지휘가 난감해진 베토벤을 돕는 장면이 그것입니다. 안나가 관현악단 한가운데 숨어서, 악보를 보며 박자를 맞춰 베토벤에게 알려주고, 베토벤은 그런 안나를 보면서 대부분은 기억하고 있을 자신의 교향곡을 지휘합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지요.

이제 안나가 자신의 솜씨를 나타낼 차례입니다. 안나는 자신의 작품을 베토벤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그 곡을 놀림감으로 만들어버려 안나로 하여금 좌절감에 빠지게 합니다. 베토벤은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고 안나에게 정중히 사과합니다. 그리고 그의 음악세계에 안나를 초대합니다.


베토벤은 신을 모독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지만, 평정을 되찾은 그의 입에서는 음악이 신의 소리임을 고백하는 말이 나옵니다. 침묵 속에서 그걸 들으라고 안나에게 조언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또다른 백미가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그건 직접 가서 확인하시기를. 

그런 생각도 합니다. 과연 철천지 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화를 빚은 가까운 사람들과 영원히 화해하지 않고 살 수 있나 하는 것입니다. 직접 당사자를 만나 화해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라도 용서하고 또 용서를 비는 그런 과정을 겪으며 사는 것이 사람의 삶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마음 편히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소위 ‘신념’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미움을 유지하고 적대시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옹골차게 손에 쥐고 있으려 하는 고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현대의 유럽 역사를 읽다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유럽 각국의 사람들은 어떻게 두 번이나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을 용서했는지 하는 점이 그것입니다. 히틀러에 의해 침공을 받은 나라 사람들은 독일이라는 나라를 지구상에서 아주 없애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아주 ‘비상식적으로’ 흘러갑니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보불전쟁과 1차,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앙숙이 된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프랑스는 보불전쟁에 져서 지금의 알자스 로렌 지방을 독일의 옛 나라인 프로이센에게 빼앗깁니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은 그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1차 대전 때에는 접전 끝에 승리를 했지만, 너무 잃은 것이 많은 승리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국토 전체가 점령되고 괴뢰 정권(비시 정권)이 들어서는 수모까지 겪습니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비롯한 협공으로 프랑스는 수도 파리를 탈환하고, 독일은 유럽 각지에서 패전을 거듭, 항복하기에 이릅니다.

유럽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독일이 무력으로 일어서는 일이 없도록 무장해제 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감시하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독일이라는 나라를 역사상에서 없애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 감시 하에 들어간 동쪽 독일은 자유진영의 유럽 각국으로서도 관할 밖이었고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족국가 단위에서 벗어나 초국가적 유럽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구상들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구상되었습니다.

프랑스가 적극적이었습니다. 더 이상 민족과 나라라는 이름으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재발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평화적인 감시’라고나 할까요. 장 모네라는 사람이 유럽 통합의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와 독일이 화해를 하고, 전쟁무기의 원료가 되는 석탄과 철강을 공동 관리하는 조직을 만들게 됩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가 그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전쟁이 타산지석이 되어 유럽공동체 설립에 박차를 가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로서는 독일의 재건이 두려웠고, 잿더미가 된 서독으로서는 오역의 역사를 씻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강대국들의 전쟁만 있다 하면 피해를 입는 주변국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역시 파시즘의 더러운 역사를 지닌 이탈리아가 가세합니다. 다들 살 길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유럽연합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그 유럽연합이 갈등과 이해득실 조절과 평화적 노력을 통해 지금은 27개국의 강력한 공동체가 되었고, 내부적 갈등은 있지만 그 세력은 더욱 더 커갈 조짐입니다. 올해 3월 50주년을 맞이해 축제 분위기에 젖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시작하는 FTA의 상대가 바로 이 유럽연합(EU)입니다.

그런데 강력한 세력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럽연합의 조성 과정이 민주적이고 평화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명칭이 바뀌어가면서 커져가는 공동체를 위해 많은 정치가들이 위대한 이상을 꿈꾸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프랑스와 서독(독일)의 정상들은 소속 정당의 이념에 좌우되기도 했지만 유럽 공동체 설립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유럽 연합의 첫 구상자 프랑스의 장 모네를 비롯해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과 서독의 아데나워 대통령, 뒤를 이어 프랑스의 퐁피두 대통령과 서독의 브란트 수상, 이후 지스카르 대통령과 슈미트 수상, 미테랑 대통령과 콜 수상 등등 모두 자기 나라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회담에 나섰지만 결국 그 처음 뜻이 선한 것이어서 그 열매는 무척 크고 풍성했습니다.

유럽연합의 조성 와중에 독일 통일이 있었고, 동유럽의 민주화가 있었습니다. 유럽연합은 소련의 지배 하에 있어 무력해진 나라들,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을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전쟁 방지를 위한 소극적 목적이 있었지만, 지금 유럽연합의 각국 사람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국경을 넘나들고, 다른 나라에서 일자리를 얻고 학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몇 나라를 제외하고 ‘유로’라는 통일 화폐를 2002년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면 중요한 선결과제가 있습니다. 정치적 안정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내전을 겪은 보스니아 같은 나라는 유럽연합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이런 유럽 역사를 꺼내놓은 대수롭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유럽연합의 공식 찬가가 바로 이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중 코러스 부분인 ‘환희의 송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노래가 지금 극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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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객석> 5월호 기사 중 일부. <객석>에는 '회상'이라고 해서 과거 <객석>의 기사를 소개하는 난이 있다. 올해 5월호에는 1989년의 베를린에서 있었던 통일 기념 '베를린 경축음악회'의 소식과 이날 지휘를 맡은 레너드 번스타인에 대한 내용을 소개한 1990년 2월호의 기사를 회상하고 있다. ⓒ <객석>


저는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 아끼고 있고 지금도 가끔 듣는 테이프가 이 ‘환희의 송가’가 녹음되어 있는 테이프입니다. 독일이 통일이 된 지 1주년이 되는 날, 그러니까 1990년 11월 9일에 KBS 제2 FM에서 들려준 이 ‘환희의 송가’를 녹음해 둔 것입니다. 이 날짜를 특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이 음악을 틀어준 신은경 아나운서(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겁니다)의 멘트 “오늘이 독일 통일 1주년이 되는”도 녹음되어 있어 그 날짜를 추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면, 독일 통일조약이 체결된 1990년 10월 3일을 기점으로 한다면 1991년 10월 3일이겠네요.)

위에서 언급한,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로 이루어진 1989년 12월 25일의 실황 녹음이었습니다. 다른 지휘자의 ‘환희의 송가’를 들어봐도 이만한 녹음만큼 감동을 주는 연주는 없습니다. 곡의 원본이 있겠지만, 지휘자에 따라 해석을 달리해서 연주를 하기 때문인데, 피날레 부분의 넉넉함과 느림이 다른 연주와 다르고 그래서 제가 이 연주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그런 연주이니까요. 베를린 바로 그 분단과 통일의 현장에서 말입니다. 그 당시 독일 국민들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몇 달 전 월간 <객석>에서 이 때의 연주를 회상하는 기사의 ‘회상’ 부분을 보았습니다. 제가 가끔 듣는 그 연주의 현장 소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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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전야제 모습. 지난 8월 1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제62주년 광복절 전야제 모습. 베토벤 합창 교향곡 중 4악장의 코러스 부분을 정명훈 지휘자와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필하모닉 오페라 합창단이 같이 연주하고 있다. ⓒ 박태신


정말 우연하게 다른 곳에서도 이 ‘환희의 송가’를 들었습니다. 지난 8월 14일 덕수궁에서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을 관람하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무슨 피아노 소리가 관현악단의 협연으로 연주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행사치고는 큰 규모일 것 같은 커다란 소리였습니다. 바로 시청 앞 광장에서 있었던 광복절 기념 전야제였습니다. 정말 우연히 얻은 선물이었습니다.

피아노 소리는 요즘 주목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연주 소리였고, 관현악단은 지휘자 정명훈 씨가 이끄는 서울시립관현악단이었습니다. 너른 풀밭에 깔아놓은 의자 한 곳에 앉아 음악에 빠져 들었습니다. 대형 화면이 독주자와 지휘자의 모습을 교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낮까지 비가 오락가락하던 차라 행사를 취소할 뻔 했다 합니다. 특히 악기에 무리가 갈 수도 있어서 그렇습니다.

다행히 비는 멈추고 덕분에 저는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 행사의 연주곡 중에 하나가 바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였습니다. 정확히는 9번 교향곡 4악장입니다. 4악장 서두에는 합창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식 연주회장도 아니고, 연습 문제도 있고 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독창자의 독창 부분을 쏙 빼고 합창단의 합창 부분을 연주하는 새로운 버전으로 들었습니다. 물론 실망은 했지만, 처음으로 정명훈 씨의 얼굴을 멀리서나마 보면서 제가 좋아는 곡을 현장에서 들은 것이라 충분히 커버되었습니다. 

10월 초 대통령이 걸어서 ‘보이지 않는 장벽’을 걸어서 북으로 가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북의 정상이 7년 만에 회담을 하고 커다란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번에 반가웠던 것은 종전선언과 평화선언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6자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났고요.

같은 해 1945년에 분단된 독일과 한국. 독일은 20세기가 지나기 전에 통일을 이루어 냈습니다. 동독이 흡수 통일된 배경에는 소련 고르바초프의 개방 선언 이후, 자체 내 그것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방관한 탓도 있습니다. 뒤늦게 개방작업에 착수하지만, 서독으로 망명하는 물결을 막을 길이 없었고 그래서 스스로 무너진 것입니다.

그간 독일 정부와 독일 국민이 지불한 통일 비용은 막대한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인 한 예를 들어, 동독은 그간 중공업 분야에 투자를 많이 했는데 당연히 환경 문제에는 뒷전이었습니다. 통일 후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예상 밖의 지출이 많았을 것입니다. 

한반도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하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남북 대화와 경협에도 적극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평화적인 통일을 원하는 남쪽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는 유럽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믿음 하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이 평화와 전쟁 방지 장치를 만들어나간 것처럼, 남북 정상들도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상호 확인했습니다.

유럽공동체(유럽연합의 전신)가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유럽연합으로 발전하고, 그후 2004년에 민주화되었지만 허약한 동유럽 국가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킨 것에는 상당한 투자를 각오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을 것입니다. 부유한 서유럽 국가가 그렇게 나눈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북 정상의 합의문은 앞으로 남쪽에서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남쪽과 북쪽이 다같이 이득을 보는 그런 투자라는 점입니다. 프랑스도 유럽 공동체를 만들 때 그런 의도도 다분히 지니고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상실된 유럽에서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실용과 이상을 같이 지니고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드골이 대표적인 자국 중심론자였는데, 적절한 시기에 물러나고 새로운 인물(퐁피두)이 나타나 공동체 설립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우리도 그렇게 실용과 이상을 같이 가지고 북한을 대하면 됩니다. 서해안 평화지대는 참 절묘한 대안이었습니다.

누가 그랬습니다. 지금 우리가 북한에 구호물자를 보내고 하는 것 등의 투자는 통일 비용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지금, 정부나 기업은 북한을 변화시키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다음 정부는 이번 결실을 잘 이어서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까 언급한 드골 같은 정치가도 등장해서 자국의 이익 우선을 위해 걸음을 늦추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대처 수상도 강력한 유럽연합의 탄생을 반대했습니다. 마찬가지 이유지요. 그러나 역사는 대체로 평화를 원하는 이들 바람 쪽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유럽연합의 조성 기간인 50년의 세월 동안 유럽연합 회원국 내에서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지요.          

시간 되시는 분은 내용상 지금의 유럽연합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화해의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 <카핑 베토벤>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 환희의 송가를 들어보십시오. 그 노래가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중반에 울리고,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는 뒷부분에도 집중해서 보십시오.

더 이상 없을 놀라운 역사적 사건도 흘러갑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시간, 일들이 놓여 있습니다. 할 일은 늘 있기 마련입니다. 완성은 우리 더욱이 지금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아까 소개한 광복절 전야제의 피날레 곡 (앙코르 곡)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안익태 선생의 ‘코리아 환타지’였습니다. 남북의 장벽인 비무장 지대가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평화의 지대가 되는 날에는 아무래도 이 곡이 연주되지 않을까요?
#환희의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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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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