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기상 되살린 야간군사훈련

212년 전 정조가 직접 지휘했던 화성 야간군사훈련 재연과 무예 24기

등록 2007.10.15 12:00수정 2007.10.1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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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년전 정조의 기상이 되살아나다 정조가 직접 지휘했던 화성 야간군사훈련 재연과 무예 24기 시범 ⓒ 유태웅

▲ 212년전 정조의 기상이 되살아나다 정조가 직접 지휘했던 화성 야간군사훈련 재연과 무예 24기 시범 ⓒ 유태웅
 
 

정조의 기상이 살아있는 수원 화성. 제44회 수원화성문화제를 맞아 지난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화성을 중심으로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와 시민 퍼레이드, 1795년 정조가 화성에서 직접 지휘했던 야간군사훈련 재연과 무예 24기 시범 행사 등이 열렸다.

 

특히 13일(토) 저녁에 재연된 212년 전 화성 야간군사훈련은 많은 수원시민들이 참여해 뜻깊은 의미를 남겼다. 이번 재연 행사는 당시 군사훈련장이 있던 화성의 동쪽 관문인 창룡문 연무대 현장에서 진행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12년 전인 1795년, 정조는 화성(현 수원)에서 5위(장안위, 신풍위, 팔달위, 창룡위, 화서위) 장용영 군사들의 야간군사훈련을 직접 지휘했다. 당시 1만6000여명의 정예군사들이 주둔해 있던 화성은 정조가 만든 조선 최초의 신도시이자, 군사요새였다.

 

화성은 1790년 민가 700여호와 행궁, 관아 등이 먼저 완공되고, 1794년 장안문과 팔달문을 비롯한 주요 성곽들이 완성되었다. 당시 화성은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개혁군주 정조의 이상과 꿈이 서린 도시였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경기도 화성 현륭원 참배를 목적으로 이곳을 찾아 며칠씩 묵었으며, 특히 1795년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현경왕후)의 회갑연을 화성에서 열었다. 그리고 사도세자가 만들고 정리, 정조가 완성한 무예 24기로 훈련된 장용영 병사들을 직접 지휘해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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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환도 베기 허리에 고리를 걸어 차는 환도를 이용한 환도 베기 시범이다. 질풍처럼 달려 들어가 적진을 교란시켜 보병의 대오를 무너뜨리는 것이 기병의 핵심전략이었다. 이렇게 적의 보병 대오가 무너지면 아군의 보병이 적진을 쉽게 돌파할 수 있다. ⓒ 최형국

▲ 마상환도 베기 허리에 고리를 걸어 차는 환도를 이용한 환도 베기 시범이다. 질풍처럼 달려 들어가 적진을 교란시켜 보병의 대오를 무너뜨리는 것이 기병의 핵심전략이었다. 이렇게 적의 보병 대오가 무너지면 아군의 보병이 적진을 쉽게 돌파할 수 있다. ⓒ 최형국

1795년 화성에서 정조가 직접 지휘한 첫 야간군사훈련(야조)이 벌어질 때는 성안의 백성들도 함께 참여했다고 한다. 원래는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진행되었다. 군사훈련이 시작되면 팔달문, 장안문, 창룡문 등 성문을 모두 닫고, 화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을 중심으로 횃불점화와 모의전투훈련 등이 벌어졌다.

 

이날 약 3시간 동안 진행된 무예 24기 마상 및 지상무예 시범과 야간군사훈련 재연 장면, 무예 24기 보존회 단장을 역임하고 현재 보존회에서 교련을 맡고 있는 최형국 교련관의 인터뷰 등을 동영상에 담았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10분 KBS 1TV를 통해 방송되고 있는, '인물을 통해 알아보는 역사' 다큐멘터리 <한국사 傳>은 오는 10월 20일(토), 조선후기 개혁군주인 정조와 조선 무예 24기를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왜 정조가 무예에 강했는가 하는 이유와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만들고 정리한 것을 정조가 완성한 '무예 24기'에 대한 내용이 방송된다.

 

 

2007.10.15 12:00 ⓒ 2007 OhmyNews
#정조 #화성 #무예 24기 #화성 야간군사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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