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인가, 한미FB(Beef)A인가

[고태진 칼럼] 오만한 미국의 쇠고기 완전 개방요구

등록 2007.10.17 10:17수정 2007.10.1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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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시내 대형마트 수입육 코너에는 진열돼 있는 미국산 쇠고기.
서울 시내 대형마트 수입육 코너에는 진열돼 있는 미국산 쇠고기.오마이뉴스 남소연
서울 시내 대형마트 수입육 코너에는 진열돼 있는 미국산 쇠고기. ⓒ 오마이뉴스 남소연

예전에 이런 동화가 있었다. 기억을 되살려 간단하게 소개하면,

 

밤길에 떡장수 엄마가 고개를 넘어 집으로 오는데 호랑이가 나타나서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해서 엄마가 무서워서 떡 하나 주니, 다음 고개에서 기다리다가 또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해서 또 주고하다 보니 남은 떡을 다 뺏기고, 그 다음부터는
"팔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해서 팔, 다리 하나씩 다 주고는 결국 잡아먹혀버렸다. 그리고 호랑이는 집에 기다리는 남매까지 잡아먹으려고 햐얀 분칠까지 하고는 집에 들어가는데 성공했으나, 남매는 하느님이 내려준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 호랑이도 기도해서 동아줄을 받기는 했으나 그게 썩은 동아줄이어서 중간에 떨어져 죽었다. 그 호랑이의 피가 묻어서 수수깡이 되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문득 이 동화가 떠올랐다.

 

한미FTA 협상 당시 미국 측 대표였던 웬디 커틀러가 16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와 '한미FTA 민간 대책위원회' 공동 주최로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미FTA가 미국 의회에서 비준이 고려되려면 한국의 쇠고기 시장이 전면 개방돼야 한다"며 "FTA 비준과 쇠고기는 연관성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FTA비준을 볼모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허용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다. 

 

쇠고기 완전 개방 안 하면, 한미FTA 비준 안된다는 미국

 

 한미FTA 협상 당시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웬디 커틀러.
한미FTA 협상 당시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웬디 커틀러.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미FTA 협상 당시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웬디 커틀러.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는 한미FTA의 의제가 아니었다. 그동안 한국 정부도 한미FTA와 미국쇠고기 수입은 무관한 사안이라고 밝혀왔다. 그런데도 미국은 한미FTA를 원하면 미국 쇠고기 수입을 완전 개방하라며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미FTA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국가 간 협상에서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미 우리 한국 정부는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FTA 협상을 끝냈었다. 하지만 성공적인 협상이었다는 자화자찬과 재협상은 없다는 수차례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이 재협상을 요구하자 어쩐 일인지 순순히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여 재협상까지 끝냈다.

 

그러고는 한미FTA의 전제조건이라는 그간의 비판에 화답하듯, 소의 연령 제한과 뼈 없는 쇠고기라는 조건을 달아 쇠고기까지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이 아예 대놓고 쇠고기를 완전 개방하라고 요구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이 문제를 결정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제 FTA(Free Trade Agreement)가 아니라 'Free Beef Agreemet', 즉 '한미FBA'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한미FTA는 근 1년에 걸쳐 한국과 미국 정부 간에 수차례의 협상 끝에 산업 전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내용을 담아 타결되었다. 그런데 그런 국가 간에 중요한 협상이 쇠고기 팔아먹으려는 미국 정부의 욕심에 이용된다는 것은 국가의 자존심을 생각할 때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를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미국의 쇠고기 수입 개방 압력은 단순히 물건을 좀 더 팔아보겠다는 것을 넘어, 미국 내에서 조차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광우병 우려가 있는 쇠고기를 우리나라에 떠넘겨보겠다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이지도 못하다. 이런 위험을 우리 국민들에게 확대시킨다면 우리 정부 역시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백번 양보를 해서 정 미국이 우리의 미국 쇠고기 완전 개방을 원한다면, 그리고 완전 개방을 압박하기 위해 한미FTA를 걸고넘어진다면 한미FTA 안건에 쇠고기 수입 안건을 포함시켜 다시 재협상을 하는 것이 순리다. 물론 쇠고기를 수입하는 대가로 우리가 다른 부문에서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것이라는 정부의 협상 능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럴 것이 아니라면 미국의 쇠고기 수입 압력에 우리 정부는 우리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당당하게 대처해야 한다. 협상이라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당사자들 간의 이해 조정 과정이다. 한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에게 자신의 이익만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이미 협상이 아니라 굴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미FTA 협상에 있어 미국의 자세는 협상을 하고자하는 자세가 아닌 것 같다.

 

한미FTA에 목을 매는 우리 정부, 미국이 또 무슨 요구를 할지...

 

한미FTA도 반대하고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 쇠고기 수입도 반대하는 나로서는 인정하기 싫은 상황이지만, 그럼 만약 미국 쇠고기만 완전 개방하면 한미FTA가 해결되는 것인가?

 

지금까지 미국의 태도로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에서 시작해서 집에 있는 남매까지 잡아먹으려 한 호랑이같이 우리 정부가 한미FTA타결에 목을 매는 한 미국이 쇠고기 이외에도 무슨 요구를 또 해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동화 속에서는 비록 엄마가 호랑이에 잡아먹히지만, 남매는 하느님이 내려준 동아줄을 타고 호랑이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무한경쟁의 세계에서 우리나라를 구원해줄 동아줄은 없다. 다만 우리의 경제를 야금야금 지배하려는, 더 나아가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어떡하든 많이 팔려는 힘 센 나라가 있을 뿐이다.

2007.10.17 10:17ⓒ 2007 OhmyNews
#미국 쇠고기 #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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