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배추가 금값이라고? 비싸다 마세요"

김장철이 걱정스러운 고랭지 채소밭 풍경과 농부의 마음

등록 2007.10.18 11:37수정 2007.10.1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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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잦은 비에 녹아버리고 겨우 살아남은 배추의 초라한 모습
잦은 비에 녹아버리고 겨우 살아남은 배추의 초라한 모습이승철
잦은 비에 녹아버리고 겨우 살아남은 배추의 초라한 모습 ⓒ 이승철


10월 16일 강원도 정선에 있는 민둥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 중턱에는 발구덕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마을을 지나게 됐다. 그런데 마을에 이르자 주변의 밭 풍경이 썰렁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예년 이맘때 같았으면 밭마다 싱싱하고 탐스럽게 자란 무와 배추가 가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밭마다 잡초만 가득한 것이 아닌가. 자세히 살펴보니 어쩌다 배추가 한 포기씩 있긴 한데 그 몰골이 여간 처참한 것이 아니었다.

 

겉잎이 누렇게 변색한 배추는 어린아이 손으로도 한 줌이 되지 않을 만큼 빈약하여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나마 남아있는 배추는 넓은 밭을 휘둘러보아도 손으로 헤아려볼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

 

거의 대부분의 밭들이 아예 잡초밭으로 변해 버렸거나 그렇게 처참한 모습의 밭을 갈아엎은 모습이 안타깝기 짝이 없는 풍경이었다. 그런 모습의 밭을 바라보며 혹시 일찍 수확이 끝났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안타까운 모습의 배추밭
안타까운 모습의 배추밭이승철
안타까운 모습의 배추밭 ⓒ 이승철

 

 갈아엎은 채소밭
갈아엎은 채소밭이승철
갈아엎은 채소밭 ⓒ 이승철

 

"수확이 다 뭡니까? 지난달 비에 모두 녹았어요"


걸어 내려오다가 갈아엎고 있는 밭 반대편 역시 잡초가 우거진 길가의 밭에서, 시들어버린 배추 한 포기를 뽑아들고 나오는, 60대로 보이는 농부를 만났다.

 

"혹시 수확이 끝난 배추밭인가요?" 하고 묻자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쉰다.


"수확이 다 뭡니까… 이게 어디 수확한 밭처럼 보입니까? 지난달에 날마다 많은 비가 쏟아져서 채소들이 모두 저렇게 녹아버린 겁니다."

 

농부는 손으로 밭을 가리키며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공연스레 내가 죄라도 지은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질 것 아녜요? 올해는 김장하기도 쉽지 않겠네요?"
"김장이요? 서울 사람들이야 어떻게든 김장은 하겠지요. 그러나 값은 아무래도 비쌀 것입니다. 올해는 무 배추 비싸다고 하지 마시고 사 잡수세요. 이렇게 농사 망친 우리네들도 그냥 사는데."

말을 마친 농부는 힘없는 걸음을 떼어놓는다. 바로 앞쪽의 뒤엎어놓은 밭은 처참한 모습을 감춘 불그레한 황토색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더 내려오면서 보니 어떤 곳에는 온통 갈아엎은 황토밭 가운데 쓰러질 듯 쓸쓸하게 서 있는 텅 빈 농가 한 채가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이 지역은 해발 600~700m의 고산지대였다. 김장철에 각광을 받는 고랭지채소를 재배하여 출하하는 곳인 것이다. 그런데 그 고랭지 채소밭들이 너무 처참하게 망가져 버린 것이었다.

 

산 아래로 내려오면서 바라 본 풍경도 하나같이 같은 모습이었다. 싱싱한 채소가 자라고 있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보기 흉한 흉터처럼 잡초가 우거진 채소밭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거나 갈아엎어져 있는 모습은, 어쩌면 조금 전 그 농부처럼 시퍼렇게 멍든 농민들의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갈아엎은 채소밭 가운데의 텅빈 폐농가
갈아엎은 채소밭 가운데의 텅빈 폐농가이승철
갈아엎은 채소밭 가운데의 텅빈 폐농가 ⓒ 이승철

 

"무도 배추도 한 포기 1천원... 이 정도면 싸게 파는 거죠"

산을 내려와 길 건너편에 있는 억새축제 행사장으로 향했다. 평일 낮이어서 특별한 행사는 없었다. 한쪽에서 노래방 기기를 벌여놓고 춤추고 노래하는 일부 관광객들 외에는 대체로 썰렁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 행사장 몇 곳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가가 살펴본 채소들도 역시 초라한 모습이었다. 채소라야 무와 배추를 조금씩 쌓아놓고 팔고 있었는데 작고 초라한 배추 한 포기에 1000원, 그리고 역시 초라한 무도 한 개에 1000원씩에 팔고 있었다.

 

"비싸다고요? 산에서 내려오시는 길 아닙니까? 보셨을 것 아네요? 올해 채소 흉작입니다. 흉작, 지난 달 비에 모두 녹아버렸어요. 이 정도면 싸게 파는 겁니다. 무 배추 비싸다 하지 마시고 사 잡수세요."


등산객으로 보이는 50대 아주머니가 배추를 만져보며 비싸다고 말하자 장사꾼도 농부와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좌판에서는 파랗고 싱싱한 모습의 크고 좋은 배추를 팔고 있었는데 1포기에 3000원, 두 포기엔 5000원씩을 받고 있었다.


"배추 값이 금값이구만."


역시 등산객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장사꾼은 여성등산객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 있게 싱싱한 배추를 자랑하고 있었다.

 

"요즘 이런 배추 못 구합니다. 이렇게 속이 꽉 차고 좋은 배추 어디 있나 찾아보세요, 이건 시설에서 키운 아주 귀한 배추입니다."

 

앞으로 김장철이 되면 채소 값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김장채소 값이 너무 비싸면 도시의 빈민들은 또 얼마나 큰 부담이 될 것인가. 채소농사를 망친 농민들의 멍든 가슴과 올겨울 겨우살이로 없어서는 안 될 김장값으로 힘들어 할 도시 빈민들, 모두가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1개에 1천원씩 하는 무
1개에 1천원씩 하는 무이승철
1개에 1천원씩 하는 무 ⓒ 이승철
 이렇게 작고 못생긴 배추도 1포기에 1천원
이렇게 작고 못생긴 배추도 1포기에 1천원이승철
이렇게 작고 못생긴 배추도 1포기에 1천원 ⓒ 이승철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0.18 11:37ⓒ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승철 #채소밭 #무 #배추 #폐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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