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여양리 무덤에서는 '태인'이라고 새겨져 있는 도장이 나왔다.
경남대 박물관
태인(泰仁).
경남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폐광에서 출토된 도장에 새겨진 이름이다. 성씨가 없다. 경남대 박물관 조사단은 이 도장의 주인을 ‘태인 아저씨’라 부른다.
2002년 9월 4일 태풍 ‘루사’로 인해 산태골 숯막에 매장되어 있던 유해 일부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마산시로부터 의뢰를 받은 경남대 박물관이 2004년 4월부터 6월까지 폐광 내부와 4개의 돌무지를 발굴했다. 이곳에서는 148구의 유골이 나왔는데, 이들은 진주지역 보도연맹원과 진주교도소 수감자들이라는 증언도 있다.
허리띠와 단추, 비닐팩, 동전, 고무줄, 반지, 숟가락, 양복상의, 구두주걱 등이 이곳에서 나왔다. 이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끈 유류품이 바로 ‘태인’이라고 새겨진 도장이었다.
이 도장은 폐광 바닥에서 나왔는데, ‘태인 아저씨’ 위에 2구의 유해가 포개어진 상태였다. 엎드린 상태로 있었으며, 오른쪽 팔은 쭉 편 상태이고 왼쪽 팔은 몸에 붙인 상태로 출토되었다. ‘태인 아저씨’는 상의만 입었다. 그 옷 속에서 도장과 함께 젓가락, 구두주걱이 나왔다. 도장 재질은 나무이며 길이는 6cm 정도.
조사단은 ‘태인 아저씨’의 유골을 수습해 신체적 특징을 밝혀냈다. 그는 남자로, 25세 전후(23~27세)로 키는 165cm 정도로 추정되었다. 두개골은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었고, 치아는 양호한 편이었다.
한때 ‘태인 아저씨’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연극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은 적이 있었다. <진주연극사>에 ‘송태인’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는 1936년 진주 제2공립보통학교(현 봉래초교)에 입학해 ‘고려예술연구회’라는 극단을 조직해 활동한 인물로 알려졌던 것.
1년간 추적 뒤 2005년 이상길 교수팀은 송태인씨 유족들을 찾아 DNA조사를 벌였다. 그런데 그것이 일치하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두 사람이었던 점과 DNA 분석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점 등의 이유로 ‘태인 아저씨’가 ‘송태인’으로 단정 짓기에는 부족했다.
최근 이상길 교수팀은 ‘태인 아저씨’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찾아냈다. 이 교수는 “여러 추적 작업 끝에 ‘태인 아저씨’의 여동생으로 보이는 사람을 찾아냈다. 그는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 아직 DNA검사는 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어 설득 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도장의 주인을 찾기 위해 다방면으로 추적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쉽지 않다. DNA검사 등에는 많은 비용도 들어간다”면서 “피학살자의 유족들이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고령으로 시간의 여유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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