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도둑이 도둑이 아닌 까닭

[헌책방 나들이 125]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

등록 2007.10.22 10:49수정 2007.10.2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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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가 헌책방 서울 홍제동에 자리한 <대양서점> 1매장은, 유진상가 건너편, 고가도로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큰길가에 있는 헌책방이지만, 고가도로에 가리기 때문인지 제대로 못 알아보는 분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고가도로를 버스로 오가는 분들 가운데에는 고가도로에 차가 많이 밀려서 막힐 때면,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이 헌책방을 알아보고는 즐겁게 찾아오는 분도 꾸준히 있습니다. ⓒ 최종규

▲ 큰길가 헌책방 서울 홍제동에 자리한 <대양서점> 1매장은, 유진상가 건너편, 고가도로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큰길가에 있는 헌책방이지만, 고가도로에 가리기 때문인지 제대로 못 알아보는 분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고가도로를 버스로 오가는 분들 가운데에는 고가도로에 차가 많이 밀려서 막힐 때면,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이 헌책방을 알아보고는 즐겁게 찾아오는 분도 꾸준히 있습니다. ⓒ 최종규


〈1〉 나들이하며 읽는 책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책 두어 권 들고 갑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든 전철을 타고 가든.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잠깐 쉬면서 책을 꺼내어 읽는 일이란 드뭅니다. 두 다리로 걸어가다가 잠깐 쉬면서 책을 꺼내어 읽는 일은 흔합니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느긋함이 갈릴까 싶다가도, 조금 더 빨리 갈 수 있는 탈거리에 있는 동안에는 오히려 느긋함이 사라지는가 싶어 움찔하게 됩니다. 조금 더 빨리 가는 탈거리로는 옆으로 스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스치는 모습’인 풍경입니다. 조금 더 천천히 가는 탈거리, 또는 두 다리로는 옆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살갗으로 느껴지는’ 우리들 삶입니다.

 

자가용 모는 이들은 단추 하나 눌러 창문을 지이잉 내린 다음 쓰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휙 버리고 나서, 다시 단추를 눌러 지이잉 하고 창문을 닫습니다. 자가용 모는 사람들한테는 ‘자기가 버린 쓰레기’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다리로 길을 걷는 사람한테는, ‘모든 버려진 쓰레기’가 눈으로 보이고 코로 느껴집니다.

 

다 읽어내지 못하더라도 책 몇 권 들고 전철을 탑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새로운 책을 펼치고픈 마음에 헌책방엘 들러 책 두어 권 살핍니다. 전철에서 읽을 책을. 뭐, 마음에 와닿는 책이 없다면, 집에서 가지고 나온 책을 읽어도 좋고, 마음에 와닿는 책이 있다면, 집에서 가지고 나온 책을 펼치지 못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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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서점> 1매장 아저씨 손 <대양서점> 1매장 아저씨는 책을 사고판 뒤에는 꼭 수첩에 적어 넣습니다. 오랜 세월, 헌책을 만지면서 차곡차곡 살림을 모아 온 바탕이 되었고, 옆지기처럼 있어 준 수첩입니다. ⓒ 최종규

▲ <대양서점> 1매장 아저씨 손 <대양서점> 1매장 아저씨는 책을 사고판 뒤에는 꼭 수첩에 적어 넣습니다. 오랜 세월, 헌책을 만지면서 차곡차곡 살림을 모아 온 바탕이 되었고, 옆지기처럼 있어 준 수첩입니다. ⓒ 최종규


〈2〉 학문됨과 사람됨


서울 홍제동에 자리한 헌책방 〈대양서점〉을 찾아갑니다. 1매장을 둘러보고 2매장을 둘러봅니다.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꾸리는 다른 헌책방 두 군데. 성격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른 두 곳. 빵집에 들어가면 값싼 빵이라도 하나 들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빵집 구경도 제대로 못하는 저로서는, 책방에 들어가면 값싼 손바닥책 하나라도 쥐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이런 생각 때문만은 아니지만, 옷집 구경은 꿈도 안 꾸고, 백화점이나 큰 할인매장으로는 발길을 돌리지 않습니다.

 

볼 책이 없으면 안 보면 되는데 왜 미안한 마음이 들까요. 제가 돈이 넘쳐나서 책을 아무렇게나 사들이는 사람도 아닌데 왜 머뭇거리게 될까요. 글쎄, 다른 무엇보다도, 이렇게나 많은 책을 갖추고 있는 책쉼터에 와서, ‘내 마음을 건드려 주는 책 하나’ 찾아내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못 찾는 일보다 이곳에 깃든 책 가운데 어느 하나도 알아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일이란 대단히 창피한 노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모르겠어요.

 

다행스럽게도, 마음을 건드리는 책이 일찌감치 눈에 뜨입니다. <이우정 엮음-깨어라, 여성>(학민사,1988)이라는 얇은 책.


.. 이제껏 성서는 초대교회의 교부들에 의해, 그리고 후에는 가톨릭과 신교의 성직자들이나 학자들에 의해서 해석되어 왔다. 이들은 모두 교회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남성 엘리트들이다 ..  〈머리말〉


책이름 <깨어라, 여성>을 한참 들여다봅니다. ‘깨어라, 남성’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 책이름을 짓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 깨어날 사람은 여성만이 아니고 남성만도 아니라는 생각. 사람이라면 깨어나야 한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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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히 쌓인 책 어떤 분은 대충 쌓인 책으로 느낄 테지만, 누군가는 얌전히 쌓인 책으로 느낍니다. 생각해 보면, 어떻게 쌓여 있든 하나도 안 중요합니다. 이렇게 쌓인 책 가운데 자기한테 반갑게 다가오는 책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 최종규

▲ 얌전히 쌓인 책 어떤 분은 대충 쌓인 책으로 느낄 테지만, 누군가는 얌전히 쌓인 책으로 느낍니다. 생각해 보면, 어떻게 쌓여 있든 하나도 안 중요합니다. 이렇게 쌓인 책 가운데 자기한테 반갑게 다가오는 책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 최종규


.. 가난하기 때문에 품을 파는 사람을 억울하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 너희 나라, 너희 성문 안에 사는 사람이면 같은 동족이나 외국인이나 구별없이 날을 넘기지 않고 해지기 전에 품삯을 주어야 한다. 그는 가난한 자라 품삯을 목마르게 바라고 있는 것이다. 너희를 원망하며 외치는 소리가 야훼께 들려 너희에게 죄가 돌아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  〈17쪽〉


예수님 말씀에 참으로 옳고 좋은 이야기가 담겼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겠지 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은 예수교를 따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저대로 제 삶과 믿음과 사랑을 키우면서, 예수님 말씀 가운데 제 자신을 일깨우거나 이끌어 주는 대목을 차근차근 곱씹고 싶습니다. 예수님 말씀 모두를 섬기기보다는, 예수님 말씀 가운데 제가 받아들여서 펼쳐 보일 수 있는 말씀만 가려서 되새기고 싶습니다.

 

부처님 말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책 하나 읽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좋은 책 하나에 담긴 모든 좋은 생각과 줄거리를 제 안에 담아낸다면야 더없이 반가워요. 하지만, 참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어느 것 하나 남김이 없이, 속속들이, 빈틈없이, 모자람없이 챙겨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때에 따라서는 더할 나위 없이 즐겁게 받아들이며 제 삶을 북돋울 수 있다고 느낍니다. 다만, 욕심부릴 생각이 없어요. 다 받아들이면 다 받아들이는 대로 좋고, 한 가지만 받아들일 깜냥이라면, 한 가지만 받아들이려 합니다. 지금 제 주제대로, 지금 제 주머니대로, 지금 제 마음넓이대로.

 

<A.슈바이처/지명관 옮김-현대의 세계평화문제, 기독교와 세계종교>(아카데미문고,1959)라는 작은 책이 보이는군요. 100쪽을 살짝 넘기는 작은 책. 글은 딱 두 꼭지 싣습니다. “현대의 세계평화문제”와 “기독교와 세계종교”. 노래하는 사람들로서는 ‘싱글음반’이라고 할까요. 서양사람들은 ‘팜플렛’이라고 가리키는 책이랄까요. 그러고 보니, 손바닥책이라는 문화는, 어느 한 사람이 펼치는 온갖 생각과 이야기를 담아내기보다는, 이 가운데 가장 손쉬우며 널리 나누고픈 글 한두 꼭지만 추려서 뽑아낸 ‘싱글음반’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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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매장 책꽂이 <대양서점> 2매장 아저씨는 책꽂이를 천장까지 올리지 않습니다. 천장까지 책꽂이를 올리면 더 많은 책을 꽂아 놓을 수 있으니 좋은 대목이 있지만, 그만큼 책방이 꽉 차서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 최종규

▲ 2매장 책꽂이 <대양서점> 2매장 아저씨는 책꽂이를 천장까지 올리지 않습니다. 천장까지 책꽂이를 올리면 더 많은 책을 꽂아 놓을 수 있으니 좋은 대목이 있지만, 그만큼 책방이 꽉 차서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 최종규

 

<(사)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 엮음-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삼인,2006)라는 책을 봅니다. 오, 이 책이 이렇게 나왔구나. 저는 이 책,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를, 시민모임 ‘살림’에서 비매품으로 펴낸 책으로 읽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사읽고 느낄 수 있도록 새 판짜임으로 나왔네요.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클라우스 타슈버,베네딕트 푀거/안인희 옮김-콘라트 로렌츠>(사이언스북스,2006)라는 책도 보입니다. 새책으로 나왔을 때 살까 말까 한참 망설이다가 안 산 책인데. 이번에도 망설입니다. 헌책방에 나온 이때, 이 책을 사 두면 좋을까 그냥 못 본 척 지나치면 좋을까.


.. 물론 로렌츠가 나치 독일과의 통합에 남달리 크고도 구체적인 직업상의 희망을 걸고 있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종교적이고 권위주의적으로 통치되던 국가가 끝나면서 그는 적어도 좀더 편하게 연구하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 … 구체적인 동기에 대해서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우선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그는 좀더 좋은 지위를 얻기 원했다. 그리고 로렌츠 자신이 원래부터 국가사회주의자였다. 그는 윗도리 옷깃에 당의 휘장을 자주 달고 다녔다. 이것은 특히 눈에 띄었다. 왜냐하면 그의 가족은 정당 가입에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노동자들이나 하는 일이고 자기들 같은 계층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게 집안 사람들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  〈112쪽〉


콘라트 로렌츠라는 분은 틀림없이 대단한 연구를 일궈낸 학자이고 많은 이들한테 우러름을 받는 분입니다. 하지만 이분 책을 읽으면서 늘 거리껴지는 대목이 있어요. 학문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사람 삶도 뛰어나겠는가 하는 대목 때문에.

 

대단한 학문과 학문하는 이 몸가짐은 따로 놀 수 있을까요. 시인 서정주가 군사독재정권 부역을 ‘죽는 날까지 버젓이’ 하면서 온갖 특권과 권력을 누리면서 빚어낸 시 작품을 대단하다고 여겨야 할까요. 그런 특권과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던 흔한’ 작품은 아니었을까요. 콘라트 로렌츠가 남긴 학문 열매 또한, ‘그렇게 특권과 권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루어낼 만한 열매는 아니었을까요.

 

대단한 학문은 대단한 학문이겠지만, 대단한 학문이기 앞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로렌츠 님 학문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훌륭하다’거나 ‘멋지다’고는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시인 서정주 작품은 ‘그럴싸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훌륭하다’거나 ‘눈물겹다’거나 ‘아릿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슷한 보기로, 사진을 하는 ‘에드워드 김’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 때 어마어마한 사진권력을 누리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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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 있는 동네 안쪽 길 <대양서점> 2매장은 큰길가 눈에 잘 뜨이는 자리에 있지 않아도, 꾸준하게 책손이 드나듭니다. 헌책방이나 새책방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목좋은 자리에 책방을 얻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게 돌아볼 대목이 있다면, 그 헌책방이나 새책방에 찾아가서 볼 만한 책이 있느냐, 내 마음을 건드리는 책을 만날 수 있느냐입니다. ⓒ 최종규

▲ 책방이 있는 동네 안쪽 길 <대양서점> 2매장은 큰길가 눈에 잘 뜨이는 자리에 있지 않아도, 꾸준하게 책손이 드나듭니다. 헌책방이나 새책방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목좋은 자리에 책방을 얻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게 돌아볼 대목이 있다면, 그 헌책방이나 새책방에 찾아가서 볼 만한 책이 있느냐, 내 마음을 건드리는 책을 만날 수 있느냐입니다. ⓒ 최종규

 

<센다 가꼬오-증언, 여자정신대 8만 명의 고발>(다물,1992)이라는 책이 보입니다. 예전에도 한 번 사 두었지 싶으나, 집구석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시 한 권 사서 읽기로 합니다. 우리 삶과 역사를 밝히는 좋은 책이라면 두 권을 갖고 있어도 괜찮으니까요.


.. 그렇지만 여기서 안 것은, 이 나라에서 위안부를 지낸 여자를 ‘정신대’로 부르며, 그 체험자들은 모두가 바위처럼 입이 무겁다는 것이었다. 몇 명을 간신히 찾아내었지만 좀체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그 몇 명을 다 만나고 나서야 그녀들이 입을 다물고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 것은 그 치욕감 때문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았다. 치욕, 말 그대로였다. 누가 위안부로 끌려갔던 과거의 상처를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  〈115쪽〉


〈3〉 차마


두 군데 헌책방(대양서점 1매장과 2매장)을 함께 둘러보니 가방이 미어터질까 싶을 만큼 여러 가지 책을 구경하게 되는군요. 음, 그만 볼까, 어떻게 할까. 또다시 망설여집니다. 구경하던 책을 덮고 골마루를 천천히 거닐면서 생각합니다. 어찌하면 좋을꼬. 살 땐 사고 구경할 땐 구경할까. 나중에 왔을 때에도 오늘처럼 여러 가지 책을 잔뜩 살피지는 않을 테니까, 오늘은 오늘대로 이 책 저 책 들출까.

 

그러는 사이, 잡지 <현존> 100호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지난날 학생운동을 하던 이들이 펴낸 자료모음 가운데 하나일 <다시는 빼앗기지 않을 봄을 위하여>(서울대학교 총학생회)가 손에 집힙니다. 학습교재로 썼구나 싶은 책이군요.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반도”, “10.26에서 12.12까지”, “광주민중항쟁(그 비극의 10일 간)”, “80년 5월 이후의 반제 투쟁”, “한국 내의 米 CIA”, 이렇게 다섯 가지 글을 오려붙였습니다. <조동일-한국시가의 전통과 율격>(한길사,1982)도 보입니다. 허허. 〈월간 낚시〉(조선일보사) 1997년 12월호 별책 만화 부록 <맹렬 조사 이부장>(신문수)도 손에 집힙니다. 이것 참. 사진책 <星野小-鼓童>(日本藝術出版社,1984)도 눈에 들어오고, <Deutchesland in 111 Flugaufnahmen>(Die Blauen Bucher,1953)도 눈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독일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책. 한갓지게 떠가는 비행선마냥 한갓지게 독일땅을 내려다본 모습을 담는데, 차마 다시 꽂아 놓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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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찾는 손 어떤 책을 찾는 손길이든 좋습니다. 베스트셀러를 찾으시든지, 찾는 이는 드물어도 우리 삶을 밝히는 책을 찾으시든지 좋습니다. 당신이 손에 쥐어든 그 책에 담긴 깊은 우주를 느끼고 너른 하느님 마음을 받아안을 수 있으면 좋습니다. ⓒ 최종규

▲ 책을 찾는 손 어떤 책을 찾는 손길이든 좋습니다. 베스트셀러를 찾으시든지, 찾는 이는 드물어도 우리 삶을 밝히는 책을 찾으시든지 좋습니다. 당신이 손에 쥐어든 그 책에 담긴 깊은 우주를 느끼고 너른 하느님 마음을 받아안을 수 있으면 좋습니다. ⓒ 최종규

 

좋은 책을 보았다고 해서, 그 책을 꼭 돈을 치르고 사들여야 하지 않습니다. 좋은 책을 보았다고 해서, 꼭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와서 책꽂이에 얌전하게 꽂아 두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 하는 옛말은, 내가 좋다고 느낀 책 하나를 엮어낸 사람들은 당신 온삶을 바쳐서 일구어 낸 열매가 바로 그 책 하나이기 때문에, 내가 읽으며 좋다고 느꼈다 한다면, 나로서는 겨우 몇 시간만 들이고도 어느 한 분이 온삶을 들인 세월을 읽어내고 느낄 수 있는 셈이기 때문에, ‘물건을 훔친 책이 아니라 마음을 훔친 책’이 되어서,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 같은 말이 나왔다고 느낍니다. 그래, 나는 오늘 책 도둑이 되어, 좋은 줄거리만 냠냠짭짭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슬그머니 뒤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속으로 내키지 않습니다. 단물만 쪽쪽 빨아들이고 돌아서기 어렵습니다. 어느 한 분이 서른 해나 마흔 해에 걸쳐 흘린 땀방울을, 기껏 한두 시간 읽으면서 맛보거나 흐뭇해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분은 그 서른 해나 마흔 해 동안 얼마나 배를 곯으면서 당신 한길을 걸어가려고 힘이 들었을까요. 그 서른 해나 마흔 해 애쓰는 동안 옆에서는 ‘돈도 못 버는 주제에 무슨 연구나 한답시고!’ 하는 소리를 얼마나 많이 했을까요. ‘무능력자’라느니 ‘생활능력 없는 년놈’ 소리를 얼마나 자주 들어야 했을까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봐 주지 않아서 얼마나 외롭고 고달팠을까요. 그래도 자기 한길을 꺾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갔기에, 지금 우리들은 ‘우리 마음을 살가이 건드리며 따사롭게 보듬으며 아름답게 돌보아 주는 책’ 하나를 고맙게 받아쥘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고마움을 눈으로만 훔쳐가기보다는, 내 땀방울을 들여서 번 돈 몇 푼을 바쳐서 내 책꽂이에 데리고 와서 늘 가까이에 두면서 내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다독이는 거울로 삼는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먹을거리 장만할 돈이 거의 없지만, 집으로 돌아갈 찻삯만 겨우 남긴 채 책값으로 돈을 다 씁니다. 가방이 무거워집니다. 가방이 무거운 만큼 걸음새는 뒤뚱뒤뚱입니다. 그렇지만 헌책방 아저씨한테, “오늘도 좋은 책 구경하게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구경하러 올게요.” 하는 인사를 웃는 얼굴로 하면서 책방 문을 나섭니다.

 

<대양서점〉 2매장 계단을 터덕터덕 밟고 올라와 햇볕 밝은 땅위로 나옵니다. 크크, 이제 어쩐담? 책을 사기는 샀는데, 오늘도 곯아야 하는 내 밥통은 어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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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아저씨 손님이 뜸한 때, <대양서점> 아저씨들은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살피기도 하지만, 라디오도 듣고 노래도 듣습니다. 책을 읽기도 하고 잠깐 눈을 붙이기도 합니다. 자전거를 끌고 나와 홍제천을 달리기도 하고, 바람 쐬러 마실도 다니고, 낮밥을 먹으러 가게를 비우고 나오기도 합니다. 때로는 컵라면을 하나 끓여먹으며 참을 삼고. ⓒ 최종규

▲ 책읽는 아저씨 손님이 뜸한 때, <대양서점> 아저씨들은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살피기도 하지만, 라디오도 듣고 노래도 듣습니다. 책을 읽기도 하고 잠깐 눈을 붙이기도 합니다. 자전거를 끌고 나와 홍제천을 달리기도 하고, 바람 쐬러 마실도 다니고, 낮밥을 먹으러 가게를 비우고 나오기도 합니다. 때로는 컵라면을 하나 끓여먹으며 참을 삼고.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 / 02) 394-2511 
 019-437-8901 (1매장) / 011-9993-7901 (2매장)
 http://daeyang_book.hihome.com/
#헌책방 #대양서점 #서울 #홍제동 #책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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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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