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의 등이 적멸보궁 마당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그럼에도, 입구 계단에 걸린 현수막은 아직 멀었다는 듯 '중대 비로전 목각탱 개금 불사'에 대한 동참을 목놓아 외치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어사 박문수(1691~1756)가 팔도를 암행하던 중 이 적멸보궁에 들렀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선 "스님들이 일도 않고 좋은 기와집에서 남의 공양만 편히 받아먹고 사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라고 촌평했다는 일화가 있다. 내가 보기에 박문수의 말은 일부 타락한 승가에 견주어 마치 전체가 그러는 양 침소봉대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대중들이 '불사'를 좋지 않게 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거룩하려면 얼마간 외로워야 한다. 번잡스럽지 않아야 하고, 의연해야 한다. 비루한 것은 세속의 욕망에 자꾸만 기웃거리기 때문이지, 결코 초라한 전각 때문이 아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더니, 이 적멸보궁에는 사무치도록 도달하고 싶은 적멸이 없다. 욕망과의 단절도, 빗소리를 비롯한 온갖 세상 소리와의 뼈 아픈 단절이 없구나. 쓸쓸한 마음올 부여안고 적멸보궁 계단을 내려온다. 김명리 시인이 왜 오대산 중대에서 적멸보궁을 보지 못했다고 썼는지 이제야 알겠다.
오대산 중대에 이르러서도 보지 못한 적멸보궁을
여기 와서 본다
위도 아래도 훌러덩 벗어 던지고
삐걱대는 맨 뼈다귀에 바람소리나 들이고 있는 저
적멸
생각나면 들러서 성심((誠心)을 다하여 목청껏 진설하는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저 소리의 고요한 일가친척들
세상에 남루만큼 따뜻한 이웃 다시 없어라
몰골이 말이 아닌 두 탑신(塔身)이
낮이나 밤이나 대종천 물소리에 귀를 씻는데
텅 빈 물상좌대 위,
저 가득가득 옮겨앉는
햇빛부처, 바람부처, 빗물부처
오체투지로 기어오르는 갈대잎 덤불
밤 내린 장항리,
폐사지 자욱한 달빛 진신사리여!
- 김명리 시 '적멸의 즐거움' 전문
시인도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적멸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했나 보다.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폐사지에 가서야 비로소 적멸의 즐거움을 맛보았다니 말이다.
적멸보궁에서 내려온 젊은 승려와 나란히 가면서 몇 마디 얘기를 나눴다. 그 스님은 지금 만행 중이라 했다. 영월 법흥사 적멸보궁을 거쳐서 여기에 왔다는 그는 저 오대산 적멸보궁을 참배하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통도사에 있다는 스님과 중대 사자암에서 작별했다. 내게 "통도사도 다녀가세요"라고 인사한다.
그와 헤어지고 나자, 마음속으로 짧은 적막이 기어든다. 도대체 이런 적막을 몇천 번이나 겪어야 적멸에 이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