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베끼기' 악순환, 언제 끊길까?

너무 비슷한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EBS <아시아 테마기행>

등록 2007.10.24 10:18수정 2007.10.2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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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떤 분야건 전혀 새로운 양식과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기존의 것을 약간 변형해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원제작자와의 표절문제가 불거지거나 혹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라 표절문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같은 표절문화는 최근 국내가요와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끊이지 않고 대두되고 있다.


비단 국내 방송 프로그램들의 외국방송 표절에 관한 소식은 어제오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바로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즉 최초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과정에서의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지 못하고 일부의 결단과 제작환경의 용이성을 앞세우고 제작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쉽게 쉽게" 프로그램들이 기획되고 제작되기 때문이다.


보다싸게 보다빨리 보다쉽게

 

a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한장면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한장면 ⓒ KBS

▲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한장면 ⓒ KBS
a EBS 아시아 테마기행 EBS 아시아 테마기행 홈페이지 이미지
http://www.ebs.co.kr/HOMEPAGE/?progcd=0005610

EBS 아시아 테마기행 EBS 아시아 테마기행 홈페이지 이미지 http://www.ebs.co.kr/HOMEPAGE/?progcd=0005610 ⓒ EBS

▲ EBS 아시아 테마기행 EBS 아시아 테마기행 홈페이지 이미지 http://www.ebs.co.kr/HOMEPAGE/?progcd=0005610 ⓒ EBS

즉 이미 남들이 해서 성공한 사례를 참고해 보다 싸고, 보다 빨리 그리고 쉽게 만들어 방송을 하겠다고 하는 안일한 생각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례로 국내 케이블 방송국의 30분짜리 ENG 프로그램 제작비는 평균 300만원에서 500만원 전후에 거래된다. 이 비용은 인건비와 제작비용 등이 포함된 최소한의 비용이 되는데 이 같은 저비용으로라도 프로그램을 제작하겠다는 독립제작사들은 많다. 독립제작사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라도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만이 생존을 위한 수단이기에 눈물을 머금고 보다 싸게 그리고 쉽게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밖에 없다.


이유야 어찌됐든 국내 방송 프로그램의 외주제작 시스템은 결국 전체적으로 제작비용을 낮추게 한 요인이 된 동시에 영상 콘텐츠로써의 경쟁력을 생각 할 수 없는 독립 제작 프로덕션, 소위 공장에서 찍어내는 판박이 프로그램을 양산하는 기계로 전락하는데 일조했음은 분명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새롭고 신선하며 독창적인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은 상상조차 못하고 임시방편으로 해외 프로그램을 차용하거나 변용하거나 혹은 표절하는 사례가 나타나게 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없는 것이다.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vs. EBS <아시아 테마기행>

 

이쯤에서 KBS1 <걸어서 세계 속으로> 와 EBS <아시아 테마기행>이란 해외 여행정보 프로그램을 찬찬히 뜯어 비교해 보고자 한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지난 2005년 11월 5일 첫 방송을 한 이후 2007년 10월 20일 현재 93회에 이르는 장수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방송의 내용은 해외 주요도시의 관광지,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것으로 여행자의 시선에서 시청자들에게 해외 도시를 사실 그대로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에서 볼 때 2007년 9월 4일 시작된  <아시아 테마기행>은 지역을 단지 아시아로만 한정했다는 점만 다를 뿐 그 구성형태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다르지 않다. 즉 KBS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EBS는 아시아 도시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만 다르다. 

 

물론 여행정보를 알려주고 새로운 도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여러 채널을 통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과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EBS <아시아 테마기행>이 차별화되는 것은 바로 카메라의 시선과 내레이터 즉 화자(話者)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나는 여행을 한다”와 같이 프로그램 제작자가 1인칭 시점으로 여행을 경험하고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바로 내레이터가 우리귀에 익은 전문성우가 아닌 일반인 혹은 성우지망준비생 또는 실제 연출자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은 KBS와 EBS의 프로그램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구성형태다.

 

다시 정리해 보면 위 두 프로그램은 구성과 형식, 내용이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차이점이라고는 취재대상 지역이 '전 세계'와 '아시아'라는 것 뿐이다. 해외여행자의 시선으로 그곳의 신기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고 그것들을 취재자의 시선과 입으로 시청자에게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내레이션의 경우도 우리 귀에 익숙한 전문성우가 아닌 실제 연출가 혹은 새로운 목소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더욱 신선함을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까지 똑같다.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경우 초기 10여 편까지는 전문성우와 아나운서 등이 번갈아가며 내레이션을 했으나 2006년 2월 4일자 방송부터는 김중기씨가 전담하고 있다. 2006년 7월 19일 당시 해당 프로그램의 팀장이었던 강성철 팀장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청자에게 친근하게 접근하기 위해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를 찾았다"고 밝혔다.


이렇듯 두 프로그램은 여러 부분에서 매우 닮아있다. 상호간의 차별화된 구성이나 형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쌍둥이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이나 연출자의 새로운 기획력이 아쉽게 느껴진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a NHK 세카이후레아이 마치아루키 NHK 세카이후레아이 마치아루키의 홈페이지 이미지
http://www.nhk.or.jp/sekaimachi/index.html

NHK 세카이후레아이 마치아루키 NHK 세카이후레아이 마치아루키의 홈페이지 이미지 http://www.nhk.or.jp/sekaimachi/index.html ⓒ NHK

▲ NHK 세카이후레아이 마치아루키 NHK 세카이후레아이 마치아루키의 홈페이지 이미지 http://www.nhk.or.jp/sekaimachi/index.html ⓒ NHK

2005년 10월 <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처음 방송 되었을 때 국내 많은 시청자들은 새로운 구성과 내레이션 그리고 접근법 등에서 적지 않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그와 같은 형식의 포맷을 보였던 프로그램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랑받으면서 벌써 100회째를 맞이하고 있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지만 실상은 일본 NHK에서 지난 2005년 3월부터 방송하고 있는 <세카이후레아이 마치아루키 : 세계의 즐거운 마을걷기>라는 프로그램에서 아이디어와 구성형식 그리고 취대대상의 내용을 차용해 왔다.

 

앞서 기술했던 해당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인 ▲대상을 바라보는 취재자의 시선 ▲일인칭 내레이션 ▲시청자에 편안한 주변의 목소리 등 모두를 NHK의 <세카이후레아이 마치아루키>에서 차용했다는 점이다. 즉 전 세계의 주요 도시를 여행자의 시선으로 또 그 여행자의 입으로 시청자에게 소개하는 형식을 그대로 가져다 KBS에서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한 것이다.

 

스테디캠 촬영은 엄두를 내지 못한  KBS

 

그런데 KBS에서 간과했던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스테디캠'촬영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 부분은 제작비용과도 밀접하게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KBS에서 조차 NHK의 그것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엄청난 산과 같은 부분이었을 것이다. KBS는 애초부터 NHK의 좋은 프로그램의 형식을 빌려다 싸고 쉽게 만들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비용이 요구되는 '스테디캠'촬영은 과감하게 없던 일로 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앞서 정의한 3가지 말고도 하나가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흔들림 없는 자연스러운 영상제작을 도와주는 '스테디캠'을 이용한 제작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KBS에서는 이 부분을 처음에는 6mm HDV 카메라에 장착되는 간이 스테디 장비를 이용해 시도했으나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없던 일로 하고 지금의 형태로 단순 촬영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스테디캠 화면이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되는 장면은 역시 카메라 자체가 이동하면서 거리를 보여준다거나 사람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모습, 골목을 빠져나가는 모습 등인데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초창기 방영 내용을 보면 그와 같은 장면들이 자주 등장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간이장비로 스테디캠의 효과를 인위적으로 구현하려다 보니 오히려 어설프게만 보였다.

a 스테디캠 NHK 세카이후레아이 마치아루키의 스테디캠 촬영 모습

스테디캠 NHK 세카이후레아이 마치아루키의 스테디캠 촬영 모습 ⓒ NHK

▲ 스테디캠 NHK 세카이후레아이 마치아루키의 스테디캠 촬영 모습 ⓒ NHK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지만 우리의 방송제작 환경을 보면 너무도 비양심적인 프로그램 표절과 차용에 관한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지적했던 위의 사례에서 보듯 표절은 또 다른 표절을 낳고 결국 시청자들에게 방송내용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기도 한다.

 

KBS는 NHK의 프로그램에서 '스태디캠'만 제외하고 EBS는 KBS의 프로그램에서 취재 지역을 '전세계'에서 '아시아'로 한정하는 이 웃지못할 표절의 연결고리를 보면서 우리나라 방송기획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는 듯해서 못내 씁쓸하기만 하다.

 

이제 우리도 해외 우수 프로그램들이 그랬던 것처럼 항상 고민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하는 제작자들의 마음자세와 함께 제작환경을 보다 체계적이고 현실적으로 운용해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는 방법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야 하겠다. 그럴 때에만 우리의 독창적이고 경쟁력을 가지는 우리의 방송포맷을 하나쯤 보유하게 되는 영광을 누릴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 "기록적인 삶 <다큐>에도 함께 게재 합니다.

2007.10.24 10:18ⓒ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필자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 "기록적인 삶 <다큐>에도 함께 게재 합니다.
#NHK #EBS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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