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임지는 모습을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어서 '다음 총선 불출마'까지 선언했다"고 했는데, 그것이 정치의 세계를 아예 떠나겠다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질 수 있는 작은 십자가는 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그렇다고 정계를 은퇴해버리면 결과적으로 너무 무책임한 것이 돼버린다. 나는 그런 정화의식, 속죄의식을 치르고 다시 제대로 출발해야 한다. 좋은 철학을 가진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과정을 통해 함께 출발해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 문국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택한 것은 새로운 출발의 한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강한 것인가, 아니면 문 후보를 꼭 이번 대선에서 당선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새 출발의 한 과정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이번에 꼭 문국현 후보가 당선됐으면 좋겠다. 내가 문 후보를 지지해야겠다고 생각한 근본 이유가 우리나라의 현 상태가 경제측면에서, 그리고 국민의 생활과 심리상태에서 근본적인 한계상황에 봉착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거시적인 경제가 잘 가고 있다고 하는데도 왜 국민들이 참여정부와 여당을 그렇게 부정하고 경멸하는가. 민생문제다. 좌절감, 박탈감이다.
비정규직 숫자가 현 정부에서만도 200만명 늘어나 50%가 됐다. 정규직조차도 40대만 되면 끊임없이 실업에 시달린다. 직장에서 떨려난 사람들이 할 수 없이 자영업에 진출해 열 명 중 한두 명만 성공하고 나머지는 실패하는 '자영업 폭탄돌리기'가 계속되고 있지 않는가.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세계화라는 대세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해야 하나?"
김영춘 의원은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문국현 후보는 그 대안의 단초를 주고 있다"고 했다.
"악순환을 인정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사회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지 못한다. 선진국으로 못 간다. 세계화는 수용하더라도 신자유주위는 부정하고 극복할 수 있는 그런 주체적 해법이 나와야 한다. 한국사회의 고유한 역사성, 사회문화, 우리 공동체의 특질, 우리 국민의 장점과 단점을 고려한 한국만의 고유한 발전모델, 이런 것을 찾아야하는 시기다. 그리고 그 모델이 이번 대선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국민들 머리 속에 깊이 각인이 돼야 한다. 나는 문국현 후보가 그런 것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김영춘 의원은 '문국현 대안과의 만남'이 자신에게 "개안(開眼)의 경험이었다"고 했다.
"다른 후보들한테는 내가 수년간 집중적으로 고민해본 문제에 대해 어떤 위안도 받지 못했다,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문 후보의 정책들을 보면서, 유한킴벌리 사례 등을 보면서 대안의 구체적인 단서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에게 개안(開眼)의 경험이었다. 내가 추상적으로 거대담론으로 고민해오던 것을 문 후보는 아주 구체적으로 경험적으로 현장에서 제시해온 해법이 있었던 것이다."
"문국현이 오만? 현 정치권이 그를 독자적 길로 강요했다"
- 문국현 후보의 정책, 그의 유한킴벌리에서의 성공을 인정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렇다고 그것이 국가발전모델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효과가 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엇갈리는 의견들이 있는데 김영춘 의원은 국가발전 모델로의 적용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인가.
"왜 그것이 한 기업만의 고유한 해법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문 후보도 자주 이야기하지만 사람중심, 사람이 발전의 동력이 되는 그런 기업과 경제가 핵심이다. 신자유주의에서는 효율과 경쟁만을 지상의 가치로 내세운다. 사람도 기계나 다른 소모적인 부품, 재료들처럼 효율성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버리는 존재로 간주되는 게 경쟁지상주의적인 신자유주의 해법이다.
반면에 문 후보의 해법은 그 반대편에 있다. 가장 높은 효율은 인적자원을 최대한 개발하고 발전시키고 휴식을 취하게 하는 데서 나온다고 본다. 그러면 생산성도 높아지고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도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명박 후보나 다른 후보에 비해 근본적인 철학의 차이다. 바로 그 근본적인 차이를 봤기 때문에, 다시는 탈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탈당을 하면서까지, 불출마선언을 하면서까지 문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영춘 의원은 탈당을 하면서 "자꾸 이 당, 저 당 철새처럼 옮겨다니면서 새로운 시도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음을 잘 알면서도 "근본적 차이", "근본적 대안"을 발견했기에 멀리보고 선택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김영춘 의원은 다른 정치인들이 지적한 '정치인 문국현의 한계'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 범여권의 의원들을 만나보면 문국현 후보는 컨텐츠는 있는 것 같은데, 기존 정치를 너무 무시하거나 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오만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왕자병이라는 말도 한다. 김 의원도 정치인으로서 그런 것을 느꼈을 법도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보다 그것을 덜 느낀 것인가, 아니면 느꼈다하더라도 그것을 초월하는 어떤 가치를 문 후보에게서 발견한 것인가?
"왜 그분이라고 전문정치의 영역을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이번 대선의 특수한 상황이 문 후보로 하여금 독자적인 길을 가도록 강요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열린우리당과 그 후의 대통합민주신당이 문국현 후보가 지향하는 가치를 수용하고, 그런 가치논쟁으로 경선을 할 수 있는, 그게 후보평가의 척도가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나는 문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전에 뛰어들었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상황 아니었나. 조직동원력에 의해 결정되는 선거이지 않았나. 결과적으로 나는 문 후보가 신당의 경선무대에 뛰어들지 않았던 것은 어떤 면에서는 참으로 다행스럽고 잘된 결과라고 본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일부 의원들은 그 점을 섭섭하게 생각하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들이 섭섭해 하는 것은 작은 문제고 기본 구도는 지금 이 선택이 잘 된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 왜 대안 못만들었나? "배지의 포섭력이 워낙 강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게 있었다. 김영춘 의원은 "근본적인 대안",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게 왜 이제야인가? 재선의원으로 국회의원 배지 단지가 10년이 다 돼 가는데, 시대를 고민하는 386의원 중의 한 명인데 왜 이제야 개안(開眼)을 했다고 하나? 그동안 뭘 했기에.
- 물론 정치인 책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반민주, 보수·진보의 기존 구도를 변화하는 사회상황에 맞게 새롭게 만들어보려는 노력은 학계, 시민사회, 언론계에서도 있어왔지만 제대로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정치인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우리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현실정치 속에서 직업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하는 집단이다.
밖에서 볼 때 개혁적 유권자들이 궁금해하고 답답해하는 것은 386의원을 몇십명이나 국회로 보냈는데 이들이 왜 민주화 이후에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까를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못했을까, 왜 이제 와서야 '우리가 준비하지 못했다'고 고백을 할까하는 점이다. 김 의원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보낸 메일들을 보면 전부터 '근본적인 패러다임'에 대해 고민을 해온 흔적들이 있긴 하지만, 도대체 왜 그런 것인가?
"정치의 구심력이 워낙 강하다. 정치 내부 메커니즘이 갖는 제약과 포섭력이 워낙 강하다. 우선 국회의원 배지 달면 너무나 많은 역할을 동시에 해야 된다. 상임위, 중앙당, 지역구 활동 등. 직업정치인으로서 요구되는 것과 당면과제를 제대로 소화하는데도 사실은 급급한 실정이다. 그러면서 우리사회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가고 있고, 뭐가 문제고, 어떻게 해답을 찾아내야 하는가에 대한, 그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과 공부의 시간과 정신적인 여유가 거의 없게 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나는 그게 근본적인 이유라고 본다."
그래서 '포섭된' 정치인은 '지향과 한때의 자부심'만 남게 된다고 했다. "알게 모르게 그냥 정치인의 전형에 포섭돼 가버리는 그런 결과가 '나는 의미있는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지향을 여전히 갖고 있어' 하는 그런 자부심만 남고 대안을 제시하고 국가발전 비전에 대해 이렇게 가야 한다고 자신 있게 제시하는 그런 게 없었다"는 것이다.
김영춘 의원은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워낙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자들과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공부를 해봤는데 딱 이거다 할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국현 후보를 통해 "완벽하지는 않지만 뼈대는 이거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런 거다. 이명박 후보는 국가가 먼저라고 한다. 무조건 성장을 많이 하면 그 떡고물이 나눠지고 국민들은 잘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 열린우리당, 지금의 통합민주신당도 은연중에 그 국가주의의 덫에 걸려버린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발전모델은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갈 때는 가능하지만 그 이상의 모델은 될 수가 없다. 어떤 선진국이 우리와 같은 악성의 분배구조와 고용구조, 불안정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선진국이 된 나라가 있나? 국가가 잘되면 국민도 잘된다는 기존의 우상을 파괴해야 한다고 본다. 그 대안은 국민다수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거꾸로 국가가 잘된다는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50%가 심정적 문국현 지지'
- 이번 김 의원의 선택에 대해 다른 386의원들은 뭐라고 하던가.
"두 가지였다. 같이 죽고 같이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 당에서 같이 싸우고 같이 성공을 도모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또 한편에서는 내 개인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 당신이 그렇게 결정을 하면 정치인으로서는 되돌리기 힘든 타격을 받을 수 있는데 너무 아깝다는 걱정이었다."
- 현 시점에서 그 386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런 이야기 하는 게 좀 고깝게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386정치인들이 좀 정치의 늪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존 정치 메커니즘이 한편에서는 전문성이 활용되어야 하지만 그러다보면 정치의 늪에 빠져서 국민이 원하는 방향과 동떨어지고, 초심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정치의 늪에 빠지지 않고 계속 깨어 있는 것이 필요하다."
- 정동영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로 결정된 이후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는데, 대통합민주신당에 있는 일부 의원들이 문국현 후보쪽으로 합류할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고 보는가?
"대통합민주신당 안에서 문 후보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속내를 다 들여다 보지는 않았지만 신당 의원들 약 50%가 심정적으로 문 후보를 지지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특히 이해찬 후보나 손학규 후보를 지지한 의원 가운데 많다. 그들 중에는 당의 미래에 대해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새로운 목소리를 갖고 있고, 정체성이 확실한 사람이 범여권의 대안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 그런 의원들이 문국현 후보를 실제로 지지하려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인가. 탈당하기도 쉽지 않을텐데.
"조심스럽다. 똑같은 고민을 해본 사람으로서 참 난처하다. 대통합민주신당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돼 또 탈당하기도 그렇고, 그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는 사람을 지지한다고 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우리들도 참 말하기 어려운데 결국 그분들의 자발적인 결단을 기다려볼 수밖에 없지 않겠나? 모양 좋게, 의원들이 전혀 상처입지 않고 문 후보를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 김 의원의 희망은? 문 후보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으로서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데.
"(웃음) 희망사항은 그분들이 나처럼 불출마선언은 하지 말고, 그 의원들이 좀 개인적으로는 상처를 받더라도, 문 후보와 정체성이 비슷한 사람들이 탈당이라도 해서 문 후보를 도와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줬으면 하고 그동안 내 마음속으로 간직만 하고 있었다. 오늘 처음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 그런 희망사항을 가지고 있으면 평소에 함께 논의를 해왔던 386의원들에게라도 먼저 전화해서 그렇게 좀 선택해달라고 해야할 것 아닌가.
"(담배를 꺼내 물며) 때를 기다려보죠 뭐. 우선 우리 문국현 후보 캠프가 자력으로 지지도를 더 상승시키는 과정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
- 때가 언제쯤 되면 판이 문 후보에게 쏠리느냐, 정 후보에 쏠리느냐가 판가름 날 것 같은가.
"11월 중순 정도면 큰 가닥은 잡힐 것으로 본다. 앞으로 한달이 중요하죠, 그런 면에서는."
문학도이고 싶었던 한 386정치인의 선택
- 문국현 후보가 지지도를 더 올리려면 대중성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지금은 자기 스타일이 아닌 것을 억지로 바꾸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대중성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탁월하다. 연설도 웅변으로 잘하고. 그런데 왜 지지도가 확 안올라가느냐,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나라를 어디로 이끌까,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비전을 제시하는가 아닌가에 있다. 문 후보가 아무 기반도 없이 8%대로 여론조사에서 나오는 것은 그분의 메시지가 팍팍한 삶을 사는 다수 국민들의 가슴에 가서 꽂히는 희망의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대중성은 그 다음의 보조적인 수단"이라고 했다.
"문 후보가 지금부터 대중성을 얼마나 더 갖출 수 있게 탈바꿈하겠나. 대중연설은 좀 약하고 그러더라고 오히려 그분 나름대로의 잔잔한 호소와 설득, 또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철학과 신념에 입각한 목소리, 그런 것이 승부의 요처이지 대중성은 아니라고 본다. 또 대중성도 하다 보면 늘지 않겠는가."
김영춘 의원은 "정치인이 안됐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영문과 교수"라고 답했다. 그는 "원래 국문과를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법대를 주장해 타협으로 영문과에 입학했다"고 했다.
김 의원은 "문학을 하고 싶었는데, 80년대 초반이 하도 희한한 세상이어서 나를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만들었고, 그 후 1987년에 정치인 김영삼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하게 됐다"고 했다.
2007년 그는 다시 '희한한 정치판'에 서 있다. 그래서 그의 선택도 희한하다. 그는 원내 제1당을 제 발로 뛰쳐나와 아직 당도 만들어지지 않는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그리고 '사람중심 대안'을 만들어보겠다고 작정하고 있다.
김 의원은 "정치와 문학이 공유하고 있는 기반은 인본주의"라면서 "사람의 향기가 그 사회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옛 친구들이 '너는 참 안 변한다'고 그러는데, 아마도 정치와 문학의 공유지점에 내가 늘 있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공유하기
"신당 의원들 절반이 문국현에 호감 386, '정치의 늪' 빠지지 않았으면..."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