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은 조영래 '변호사'가 되려 한 일이 없다

"'전태일'이 '조영래'가 될 수 있는 로스쿨" 등을 읽고서

등록 2007.10.25 08:53수정 2007.10.2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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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르게 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세상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제도와 문화를 정착시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의 의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얼마 전 ‘한겨레’에 실린 “‘전태일’이 ‘조영래’가 되는 로스쿨”(필자 정정훈 변호사)이란 글과 뒤 이어 실린 “노동자가 변호사가 될 수 없는 나라”(필자 김형태 변호사)라는 글이 이런 점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글의 내용이 복잡하고 무엇을 주장하려는지 알기 어려우나 글의 제목만 놓고 본다면 전태일과 같은 노동자가 변호사가 될 수 있는 로스쿨제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태일’이 ‘조영래’가 되는 로스쿨”이 되어야 한다는 말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 말은 ‘전태일이 조영래가 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는 의식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런 의식은 대단히 잘못된 의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런 잘못된 의식을 지적해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싶었는데, 오늘 아침 또 이를 그대로 반복하는 글이 실려 그 잘못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이들은 한마디로 노동자도 변호사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에는 다분히 변호사가 노동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과연 변호사가 노동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까?

변호사는 변호사대로의 삶이 있는 것이고, 노동자는 노동자대로의 삶이 있는 것이다. 변호사가 노동자가 되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노동자가 변호사가 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특히 전태일의 경우 변호사가 되어야 할 이유가 더욱더 없다. 전태일은 그 어떤 변호사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살았거니와, 만약 전태일이 변호사였다면 오히려 그런 훌륭한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기에 더욱더 그렇다.

전태일이 변호사였다면 그가 노동자로 있으면서 이룬 만큼의 일을 결코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굳이 전태일과 조영래를 비교한다면 조영래가 전태일이 되었어야 하는 것이지 전태일이 조영래가 될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김 변호사가 이 글에서 말한 ‘돈과 명예, 권력이 동시에 보장되는 판·검사, 변호사 자리’를 전태일은 결코 원하지 않았으리라는 점에서 전태일은 ‘변호사’로서의 조영래가 되려고 했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전태일이 그런 변호사가 되려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태일을 모독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근본적으로 변호사가 ‘특권적 지위’를 가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특권적 지위를 갖는 변호사를 그대로 두고서 노동자도 그런 특권적 지위를 갖는 변호사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특히 김 변호사는 “돈과 명예, 권력이 동시에 보장되는 판검사, 변호사 자리는 널리 같이 나누는 게 맞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그런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변호사도 돈과 명예, 권력을 동시에 보장받지 못하게 해야지 노동자도 변호사가 되어 돈과 명예, 권력을 동시에 보장받게 하려 해서는 안 된다. 변호사는 변호사 일을 하면서 그 나름의 보람과 기쁨을 누리고, 노동자는 노동자 일을 하면서 그 나름의 보람과 기쁨을 누리는 사회가 되면 그것이 인간다운 사회이다. 변호사가 되어야 돈과 명예, 권력을 동시에 보장받는 사회여서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없다.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전태일이 학교를 많이 다니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안타까워하는 것 이상으로 알아야 할 일은 ‘학교를 많이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전태일은 그 누구도 깨닫지 못한 민중의 한과 그 극복의 길을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전태일은 오히려 ‘학교를 많이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그 어떤 철학자도 도달하기 어려운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높은 꿈과 사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전태일과 조영래를 상당 정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굳이 말한다면 조영래는 전태일과 같은 노동운동가가 되고 싶어 한 일이 있지만 전태일이 조영래와 같은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한 일은 없었다,

요즘도 학생운동권에서는 사법시험을 보려는 사람에 대해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조영래와 더불어 우리가 학생운동을 하던 때에도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이 사법시험을 보는 것을 대단히 좋지 않게 보았다.

사실 조영래도 재학중에는 사법시험을 본 일이 없거니와 졸업 후 사법시험을 보려했을 때 조영래로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지만 학생운동 하는 사람이 사법시험을 보면 되느냐는 말들이 있을 정도였다. 사법시험을 보는 모든 사람이 다 그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운동권의 경우 사법시험을 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당연한 터에 전태일더러 변호사가 되지 않아 안타깝다는 투로 말하는 것은 운동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데서 나온 말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전태일의 경우 사법시험을 볼 여건이 되었더라도 변호사가 되기 위해 사법시험을 보지는 않았을 것이니, 전태일이 변호사가 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다.

정 변호사나 김 변호사가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적 활동을 많이 해 온 데 대해 경의를 표해 마지않지만 ‘특권적 지위’의 변호사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 같아 대단히 아쉽다. 정 변호사의 경우 말로는 “‘전태일’이 ‘조영래’가 될 수 있는 로스쿨”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글의 내용을 보면 ‘전태일’이 ‘조영래’가 될 수 있는 로스쿨을 사실상 반대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 변호사는 이 글에서 지금 쟁점이 되고 있는 로스쿨의 정원 문제를 비켜가면서 로스쿨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폄하하고 있는 바, 이것은 결국 변호사로서의 기득권 유지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정 변호사는 변호사를 아무나 만나기 힘든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것부터가 특권의식의 발로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정 변호사는 이 글에서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을 선택하기 이전에 변호사 ‘조영래’와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전태일이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대학생’ 조영래였을 수는 있지만 ‘변호사’ 조영래는 아니었음을 알아야 한다.

조영래는 본래 ‘돈과 명예, 권력이 동시에 보장되는’ 변호사가 될 생각을 추호도 한 일이 없었지만 그러나 그 당시 조영래가 만약 변호사였다면 전태일사건에 관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태일이 분신할 당시 조영래는 변호사가 아니었고, 그러니 조영래 또한 전태일사건에 관여할 때 변호사가 아니었다. 전태일이 변호사를 만나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변호사 또한 전태일을 도울 수가 없었다.

요컨대 전태일과 조영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지만 ‘노동자’ 전태일이 ‘변호사’ 조영래가 되는 것으로 결합될 일은 전혀 아니다. 이것은 세계관의 문제이자 가치관의 문제로서 이런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의식을 갖는 것이 사회를 올바르게 하는 데 더 없이 중요함을 알아야 하겠다.

전태일 동지가 분신 항거한 11월 13일과 전태일의 뜻을 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조영래 동지의 17주기 기일인 12월 12일이 가까워 온다. 그동안 이들의 치열한 삶과 고귀한 희생 덕분에 많은 일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오늘 우리사회가 너무 큰 어려움에 처해 있으니 이들에게도 면목이 없다. 세상을 바르게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대단히 많겠지만 전태일과 조영래가 이루고자 한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바르게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함을 절감한다. 전태일과 조영래야말로 인간이 도달해야 할 최고의 이상사회를 너무도 잘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위의 두 글은 이런 생각을 더욱더 간절하게 하게 해서 몇 마디 언급해 둔다.

덧붙이는 글 | 장기표 기자는 신문명새정치연대 대표이며 17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입니다. 이 글은 장기표시사논평(www.weldom.or.kr)에 올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장기표 기자는 신문명새정치연대 대표이며 17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입니다. 이 글은 장기표시사논평(www.weldom.or.kr)에 올린 글입니다
#전태일 #조영래 #로스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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