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조중훈 비자금' 4억엔으로 다나카 총리 매수했나

[단독] 조 회장, DJ 납치 사건 직후 청와대 불려가... 한-일 정부 '공동정범'?

등록 2007.10.25 11:33수정 2007.10.2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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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억엔 '매수외교'의 두 장본인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금탑산언훈장을 받은 후에 격려를 받고 있다. ⓒ 조중훈 자서전 <내가 걸어온 길>



박정희 전 대통령은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김대중 납치사건을 은폐·무마하기 위해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을 통해 비자금 4억엔을 마련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英) 일본 총리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익명을 요구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국정원 진실위)의 한 위원은 “DJ 사건(김대중 납치사건)을 은폐하느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다나카 총리에게 거액의 돈을 제공했다는 언론 보도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그 사건 직후 조중훈 회장이 청와대에 불려가 박정희를 면담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재미 언론인 문명자씨의 보도와 다나카 전 총리의 비서 기무라 히로야스(木村博保)의 고백 등을 통해 박정희 정권이 일본 정계에 인맥이 두터운 조중훈 회장-이병희 무임소장관을 시켜 다나카 총리에게 3억~4억엔을 전달했다는 증언은 있었다. 그렇지만 그 돈의 출처와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이뤄진 사실이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책임진 국가기구(진실위)의 핵심 관계자를 통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김대중 납치사건은 70년대 한국의 독재정권과 일본의 금권정치(金權政治)가 결탁한 추악한 ‘매수외교’의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그런 점에서 한일 양국 정부는 김대중 납치공작 은폐범죄의 공동정범인 셈이다.

DJ 납치사건 처리는 한국 독재정권이 일본 금권정치와 결탁한 추악한 '매수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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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훈-다나카의 친분 다나카 전 일본 수상을 만나고 있는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 조 회장은 일본 정계에 인맥이 두터워 '매수외교'를 위한 줄대기의 적임자였다. ⓒ 조중훈 자서전 <내가 걸어온 길>


1973년 8월 일본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그해 10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다나카 일본 총리에게 전달한 일본돈 4억엔은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을 통해 조성한 비자금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 진실위의 핵심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DJ 사건’을 은폐하느라 당시 박정희가 다나카 총리에게 거액의 돈을 제공했다는 언론 보도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그 사건 직후 조중훈 회장이 청와대에 불려가 박정희를 면담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문명자씨의 폭로 기사를 보면 한진그룹 조중훈한테서 돈을 받아서 일본에 줬다고 했다. 그때 문명자씨는 소문을 듣고 그런 증언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대통령 의전일지’ 등을 조사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DJ 사건’ 발생 직후에 조중훈 회장이 아무런 전후맥락 없이 느닷없이 청와대에 불려가 박정희를 만난다. 그런 정황증거에 비추어 박정희가 다나카에게 돈을 준 것은 100%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국정원 진실위측은 ‘대통령 의전일지’ 외에 출입국 기록을 통해서도 조중훈 회장이 김대중 납치사건 직후인 8월 16일부터 9월 21일 사이 수 차례에 걸쳐 도쿄를 오간 것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국정원 진실위원은 “당시 이병희 무임소장관이 다나카에게 4억엔을 전달했다는 다나카 비서의 증언이 작년에 <문예춘추>에 나오지 않았냐”면서 “그것하고 연결지으면 박정희가 다나카에게 돈을 주고 사건을 은폐한 것이기 때문에 현상적으로 드러난 납치 이상으로 추악한 범죄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어떤 언론들도 그 부분의 심각성에 대해 보도한 적이 없다”면서 “일본 역시 박정희-다나카 사이에 검은돈을 주고 받으면서 밀거래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다시 논란이 일어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박정희-다나카 4억엔 '매수외교'는 'DJ 납치' 버금가는 한-일 정부 범죄행위

이 핵심 관계자는 특히 “다나카가 한국 정부의 돈을 받아먹고 이를 덮기로 박정희와 서로 밀약을 한 사건 자체도 ‘DJ 사건’의 범죄행위에 버금가는 범죄행위다”면서 “우리는 일본의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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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압력'에 시달린 김대중 납치사건 지난 2005년 2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가 서울 내곡동 국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선조사대상 7건(KAL858기 폭파, 민청학련·인혁당, 동백림유학생간첩단,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김대중 납치, 정수장학회, 중부지역당 사건)을 발표했다. 그러나 김대중 납치 사건은 그로부터 2년 8개월만에 맨마지막에 기자회견 없이 문서로만 발표되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국정원 진실위는 지난 3월에 진상조사를 마쳐 놓고도 한국 외교당국의 비공개 요청과 일본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력’ 때문에 발표 시기를 늦춰온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실제로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사건은 국정원 진실위의 ‘7대 의혹 사건’ 가운데 가장 늦게, 그리고 유일하게 기자회견을 통한 배경설명 없이 문서로만 조사결과가 공개되었다. 또 공개된 조사보고서 문서에도 일본 정부의 책임 부분은 소극적으로 기록돼 있을 뿐이다.

국정원 진실위가 24일 지난 3년간의 활동을 모두 정리하면서 발간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종합보고서의 ‘김대중 납치사건’ 편에는 “한국정부가 납치사건 진상을 은폐한 잘못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으나 일본정부 또한 한국의 공권력 개입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외교적 해결에 협조한 사실은 결국 잘못된 행위를 묵인한 데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일본 정부의 책임이 완곡하게 지적돼 있을 뿐이다.

또 종합 보고서에는 사건의 진상을 은폐-무마하려는 박정희 독재정권과 결탁해 검은돈 4억엔을 챙긴 일본정부의 책임을 규명한 조사결과가 다음과 같이 ‘각주’ 형태로만 담겨 있을 뿐이다.

“문명자(재미교포 출신 기자)는 ‘말’지(94. 2월호)를 통해 73.10 000 사장 조00이 뉴욕에 왔을 때 “박 대통령의 부탁으로 오00를 통해 다나카 수상을 만나 김대중 사건을 해결했다”고 과시한 사실이 있으며, 당시 미 국무성 한국과장 0000로부터 한국정부가 일본 측에 3억엔을 제공했다는 것을 확인 받았다면서 “73.8.15 조00이 청와대를 방문하여 박 대통령을 만난 후 8.16~9.21간 3억엔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는데 ‘대통령 의전일지’를 확인한 결과, 73.8.17 박 대통령이 조00을 접견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는 추론이 가능하며…”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 주요 의혹 사건편 상권 -, 544쪽 각주)

송민순 장관, 일본과의 외교문제 민감성 들어 "신중을 기했으면 좋겠다"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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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해결의 본질은 매수외교 외교통상부가 지난 2006년 3월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에서 공개한 김대중 납치사건과 동백림사건 관련 외교문서들. ⓒ 국정브리핑


국정원 진실위가 의욕적으로 진상조사를 해놓고도 이처럼 일본의 책임 부분에 대해서는 ‘소극적 기록’에 그친 것은 검은돈 4억엔을 수수한 ‘매수외교’의 원죄를 잘 알고 있어 진상공개에 부담을 느낀 한-일 양국 정부가 끝까지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정원 진실위의 핵심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송민순 외교통상부장관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있을 때, 저희들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한두 번 일본과의 외교문제의 민감성을 들어 신중을 기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해온 적이 있다”고 밝혀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또 이 핵심 관계자는 “(한-일 양국 정부가) 압력을 가해서 발표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것(일본의 비공개 요구)이 부당한 것이라면 외교부가 우리에게 전달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냐. 그것을 저희에게 전달한 것 자체는 외교부가 일본 정부와 뜻을 어느 정도 같이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같은 증언은 지난 73년 10월 ‘매수외교’를 통해 이 추악한 범죄행위를 은폐하기로 결탁한 한-일 양국 정부가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2007년 10월에도 여전히 진상의 공개를 덮는 데 ‘공조’하고 있음을 강력히 암시하는 것이다.

이런 끈끈한 ‘결탁’과 ‘공조’의 믿는 구석이 있는 까닭에서인지 김대중 납치사건 등에 대한 조사결과가 발표된 24일, 일본 정부는 납치공작 은폐의 공범으로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사과는커녕 오히려 한국 정부에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사과’를 요구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진실위 #조중훈 #송민순 #김대중 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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