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메례, 남자현...초기 교회를 일군 여성 선구자들

이덕주의 <한국교회 처음 여성들>를 읽고서

등록 2007.10.27 19:25수정 2007.10.2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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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겉그림 이덕주의 〈한국교회 처음 여성들〉

책 겉그림 이덕주의 〈한국교회 처음 여성들〉 ⓒ 홍성사

예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여성 신도는 남성 신도보다 훨씬 많다. 70-80%가 여성들이다. 그런데도 여성 크리스천들의 신앙관이 건전하다는 소리는 극히 약하다. 더구나 나라와 민족을 생각한다는 크리스천 여성들이 많지 않다는 비난을 듣는다. 이는 남성들의 활동에 묻힌 까닭도 없지 않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을까 싶다.

이덕주가 쓴 <한국교회 처음 여성들>(홍성사·2007)는 우리나라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던 한말,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 후 6·25전쟁까지의 암울한 시대 속에서 한국교회 여성들이 어떻게 제 역할을 다 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어두웠던 시절, 질곡의 삶 속에서도 복음의 빛으로 이 땅을 밝히며 살았던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와 누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이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오늘의 상황에서 그런 조상들의 이야기 속편을 살아가려는 모든 여성들에게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여는 글)

이 책에 수록된 여성들의 특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는데, 첫째는 19세기 말 남성위주의 봉건주의가 유세를 떨치던 시기에 용기 있게 복음을 받아들인 '처음 여성들', 둘째는 일제 시대 교회와 사회 발전에 몸을 바친 '여성 운동의 선구자들', 그리고 셋째는 복음을 통해 자유와 해방의 가치를 체득하여 민족 독립운동에 헌신한 '민족과 나라를 사랑한 여성들'이다.

초기 교회 여성들은 대부분 '섭섭이', '종네', '끝년이', '아무개'면 모두 통했다. 그 까닭에 자신들의 이름값을 되찾아 주던 교회를 택했다. 더욱이 빈궁한 시집 살림으로부터 마음이나마 배부를 수 있는 곳을, 남편의 외도로부터 심정적으로나마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곳을 택했다. 그만큼의 천대, 가난, 그리고 시련 등을 극복하고자 신앙생활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들이 지켜야 할 도리와 의무까지 망각한 채 신앙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타를 당할지언정 믿음으로 아내의 자리를 지켰고, 찬 물에 손을 얹고 빨래할지언정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데 결코 소홀함이 없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시간 이외에는 가정사에 그만큼 충실했다.

물론 그 여성들이 개인적인 위안을 찾는 내세중심적인 신앙 단계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일제시대와 독립운동 시절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아 부은 여성들도 많았다. 이른바 그녀들의 신앙관이 개인구원이나 가족구원 차원에서 사회구원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거기에는 금주, 금연, 공창폐지와 같은 절제운동의 선구자 '손메례'도 있고, 의병으로 활동하다 숨진 남편의 뒤를 이어 만주 일대는 물론이요 압록강 건너까지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남자현'도 있고, 10대 때 생과부가 되어 20대에 방황과 고난을 겪다 30대에 그리스도를 만나 40대에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50대 후반부에는 전쟁고아들의 할머니로 생을 살다 마감한 '어윤희'도 있다.

"신사참배와 중일전쟁 등으로 점차 시국이 어려워져 가던 1937년, 어윤희는 개성 유지인 한철호와 오기환의 도움을 얻어 고려정에 유린보육원이라는 고아원을 설립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57세, 일점혈육도 없던 어윤희는 이우 남은 생애를 버려진 고아들의 어머니, 할머니로 살기로 결심했다."(263쪽)


현대 한국교회도 여성들 비율이 남성들에 비해 훨씬 높다. 이런 때에 초기 한국교회 여성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면 과연 무엇을 뒤쫓으며 살아야 할까? 그것은 내세중심적인 신앙관을 갖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데 있다. 초기 한국교회 여성들은 온갖 박해 속에서도 자신이 지켜야 할 가정의 자리를 결코 잃지 않았다.

그리고 더 한 가지 더 찾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사회구원일 것이다. 초기 한국교회 여성들이 개인구원에만 머물지 않고 나라와 민족을 되살리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렇다면 오늘날한국교회 여성들도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데도 소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너도나도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설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틀 속에서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자식들을 바르게 키우면 족할 것이다. 이른바 외제품이나 고가품보다 우리제품과 저렴한 물품을 구입하는 것이 오늘날의 절제운동일 것이다.

더하여 조기유학과 같이 제 자식들의 자립심을 가로 막는 크리스천 여성들도 얼마나 많이 있던가? 그런 가르침으로 어떻게 애국애족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일로부터 하루 빨리 돌아서서 자녀들의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살리는 데 힘을 보태는 일일 것이다. 그런 것이야말로 크리스천 여성으로서 나라를 살리는 초석을 다지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

이덕주 지음,
홍성사, 2007


#한국교회처음여성들 #이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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