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 대한 책이나 이야기를 접하고 있으면 가슴 뭉클함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 우리 역사 가운데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을 주전공으로 했던 나는 특히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에 관한 좋은 책을 접하면 그런 감정을 더욱 진하게 느낀다. 그렇다고 우리 역사 전반에 대한 관심도 항상 놓지 않고 있다. 우리 역사에 관한 가장 중요한 여러 개설서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이 책 <역사>의 저자 이이화는 <한국사이야기> 전집의 저자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져 있는 분이다. 한학의 대가다운 해박한 한문 및 역사 지식과 더불어 저자의 삶을 대변이라도 하듯 펼쳐지는 구수한 입담으로 유명한 이 전집은 우리 역사가 이렇게 수준 높으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 대상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뿌듯함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러나 22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과 가끔씩, 다소 차원높은 지식 등은 분명 읽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저자도 이를 잘 알았는지 단 한 책의 분량에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의 우리 역사를 말끔히 정리해놓았다.
이 책 <역사>를 보면 아마 많이 놀랄 것이다. 요즘 우리 역사에 관한 책치고는 드물게 그림이나 사진 한 점 없다. 그것은 분명 저자만의 주관이고 자랑이다. 요즘 대중을 위한 역사책들은 흥미나 상업성을 위주로 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 물론 역사는 흥미있어야 한다. 대중과 호흡하지 못하는 역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심하게 잘못되거나 불필요한 내용, 돈벌이에 치중한 내용이 들어가서도 곤란하다.
이 책은 흥미도 있으면서 상업성에도 영합하지 않고 있다. 항상 저자는 몸을 낮게 하면서 민중, 대중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자신이 밑바닥으로부터의 험난한 삶을 헤쳐온 사람이기에 그 소리들이 소홀하게 들릴 수가 없었던지도 모른다.
이 책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잃어버린 역사, 발해에 관한 충실한 저술이다. 특히 발해의 문화사와 생활사에 관한 다수의 내용은 <한국사이야기>에도 실려 있지 않아 더욱 흥미롭다.
이제까지 우리 대부분이 지니고 있는 발해에 대한 지식은 대조영(大祚榮)이 세웠고,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는 이름 아래 넓은 영토를 차지한 꿈의 나라이며, 신라와는 제대로 친하지 못했고, 거란에 의해 멸망당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꿈꾼다는 나라치고는 우리의 발해에 대한 이해는 지나치게 빈약하다. 그 정도로 발해가 우리 역사라는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책에서 발해에 대한 서술에 적지 않은 비중이 두어진 것도 이런 면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생활사가 강조된 것은 이 책의 여전한 장점이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빙산’이지 ‘빙산의 일각’이 아니다. 역사는 어느 한 사람의 영웅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먹고, 입고,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문제는 평범하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 교과서에서는 이런 내용을 전혀 접할 수 없다.
물론 인물, 제도 등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만든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문제는 바로 그런 인물, 제도 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책들은 이 점을 소홀히 하고 있으며, 저자는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움도 많다. 이는 <한국사이야기>를 보면서도 느꼈던 점이다. 우선 민중만을 지나치게 생각한 것이다. 이것을 지배층을 옹호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은데, 그것은 아니다. 방금 이야기했지만 역사는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 민중들을 이끄는 이들에 대한 소개도, 평가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지배층은 지배를 당한 이들보다 훨씬 나은 삶을 누렸고, 그들이 민중에게 저지른 잘못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배층들 가운데 대다수는 그들의 소명의식, 사명감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 특히 조선 선비들의 삶에서 우리는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대다수 선비들의 삶은 고행 그 자체였다. 그 정점에 있었던 왕의 삶이 그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지배층의 문화는 민중들이 만든 문화에 그 뿌리를 두었고, 그것과 배치되지 않았다. 그리고 민중들은 그런 문화를 만드는 데 대한 사명감, 자부심도 잊지 않았다. 외세에 의한 단절이나 전통문화에 대한 무분별한 파괴가 없었다면 <대장금>이라는 극이 방영된 이후 갑자기 우리 궁중문화가 주목을 받는 것과 같은 우스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 양쪽에 대한 균형을 이루어 다루어야 함은 당연하다. 이 책은 민중들의 생활사 복원이라는 큰 장점의 다른 면에 이런 아쉬움이 담겨 있다.
우리 근대사에 대한 서술에서도 다소 불만을 가진다. 사실 김옥균이 나라를 위해서 일한 것은 맞다. 고종과 명성황후, 흥선대원군이 적지 않은 실책을 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속내를 안 뒤에 생각해야 될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런 시각에 일제가 교묘하게 꾸며놓은 것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소개하겠다. 서울에는 대중가요로 더욱 유명한 ‘장충단 공원’이 있다. 그러나 그곳은 공원이 아니다. 그곳에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 때 목숨을 다해 이를 막고자 했던 홍계훈 등을 기리기 위해 만든 장충단이 있었다. 그런데 일제가 강점한 이후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그 장충단을 헐어버리고 절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박문사이다. 해방 이후 박문사는 철거되었고, 그 곳에는 공원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장충단은 잊혀져갔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장충단이 그냥 공원 이름인줄만 안다. 이는 역사학자나 교육하는 이들이 가르치지 않은 탓이다. 이런 식으로 일제가 왜곡해놓은 것이 적지 않다.
김옥균이 일제 강점기 이후 일제에 의해 떠받들여졌다는 것도 알고 있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 아무튼 나라의 문이 열리고 너무나 어지러운 시기 고종과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세 사람은 그 자신들에게 주어진 과업을 최선을 다해 이행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이 점에 대한 평가가 이 책에서는 너무 인색하다. 특히 ‘민비’라는 표현이 심히 거슬린다. 명성황후라는 추존된 용어가 분명히 있음에도 이렇게 쓴다는 것은 좀 아쉽다. 일본 천황이나 황후의 이름은 꼬박꼬박 쓰면서 왜 우리는 그렇게 쓰지 않느냐는 비난 아닌 비난도 면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이런 아쉬움은 몇 가지 정도이다. 수천 년에서 수백 만 년에 이르는 우리 역사의 장구한 흐름을 날카로우면서도 구수한 입담으로, 그러면서도 수준 높게 풀어냈다는 것은 분명 대학자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 역사 전반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지혜를 얻는 데 이 책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다만 역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온 터전이다. 그러기에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이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다른 개설서들과 함께 이 책을 읽을 때 이 책이 지니는 가치가 더욱 빛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북카페 등에 실었던 저의 서평입니다.
2007.10.30 17:45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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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이화 지음,
열림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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