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습을 천지 사이의 조약돌같이 생각하여라 - 장자
영혼돌
부산의 진산, 금정산에는 너덜겅(암야)이 있습니다. 걷다보면 '사람은 죽으면 바위로 돌아간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금정산은 천년의 산, 우리 선조의 혼이 깃든 '민중의 산'이기도 합니다. 금정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쌓은 '동래 산성'이 있습니다.
그 옛날 선조들이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힘을 모아 쌓은 '동래 산성'의 무너진 돌멩이 하나 하나는 역사의 유물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숨결이 깃든 금정 산성에 생각보다 유흥 음식점이 많이 자리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누구라도 여기와서는 돌멩이 하나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숲길을 가다보면 기원을 비는 돌탑이 많습니다. 곳곳에 무너진 성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천년의 비바람에 무너져 흩어진 바윗돌과 돌멩이들은, 그냥 예사로운 돌멩이가 아니라, 선조들의 영혼이 깃든 '영혼돌' 입니다.
금샘
<동국여지승람>에는 "금정산은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데 산정에 돌이 있어 높이가 3장 가량이다. 그 위에 샘이 있는데 둘레가 10여척이고, 깊이가 7촌 가량으로 물이 늘 차 있어 가물어도 마르지 않으며, 색이 황금과 같다. 세상에 전하기를 한 금빛 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으므로 산 이름을 '금정산 (金井山)이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정산은 '검얼뫼' 또는 '쇠얼뫼'라 불렸으며, '얼'은 샘이란 뜻이고, '뫼'는 산입니다. '새얼뫼'는 금(金)을 '쇠' 또는 '새'로 읽어 금샘의 산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금정산은 바위와 물이 흔한 산이며 물이 스폰지처럼 스며 바윗돌이 흙보다 부드러워 나무와 풀을 키웁니다.
이름이 일곱개나 되는 고당봉
금정산의 주봉인 고당봉의 한문 표기는 무려 7가지나 됩니다. 고담봉(高潭峰), 고당봉(高堂峰), 고당봉(故堂峰), 고당봉(故黨峰), 고단봉(高壇峰), 고단봉(故壇峰), 고당봉(高幢峰) 등입니다. 국립 지도원의 금정산 지형도와 부산시사, 그리고 지역신문과 금정구지에는 고담봉(高潭峰) 혹은 고당봉(故堂峰)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고당봉은 의상대사가 왕과 함께 칠일칠야를 일심으로 독경한 곳으로, 고당(高幢)이란 불가에서 부처님의 화엄일승인 최고의 법문을 높은 깃대에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금정산 제일 높은 봉우리 범어사 배치에 기치를 꽂아 세웠다는 뜻으로 의상대사가 법의 당을 높이 세워 운집한 사부 대중을 위해 일승 법문을 강설한다는, 의상대사의 뜻에 붙은 명칭 '고당봉(高幢峰)'입니다. 그러나 '고당봉'은 혼란스러운 한문 표기를 배제하고 한글로 적어 부르는 것이 바람직한 일 같습니다.
원효봉에서 만나는 '으뜸의 새벽'
금정산은 고당봉 외 원효봉, 의상봉, 미륵봉, 계명봉, 파리봉 등이 있습니다. 범어사의 3기와 금정산 8경이 있습니다. 이 중의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설파한 곳이 있는데, 이곳을 화엄벌이라고 이릅니다.
여기서 금정산성을 지키는 승병 양성을 위한 연병장의 구실을 한 곳입니다. 원효 대사는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으면서도, 금정산에서 높은 교화력과 감화력이 있는 신술로 5만의 왜구를 호로병으로 물리친 호국의 영웅이기도 합니다.
고당봉의 망루는 5개가 있습니다. 제 1 망루는 사방이 확 트여 남쪽을 지키며, 동쪽의 제 4망루는 봉수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은 군사적 관측소로 '고당'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원효의 일체유심조 사상의 상징처럼 솟은 원효봉은 금정산 동쪽에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 여기서는 동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어서, 옛부터 현금까지 '으뜸의 새벽' 명소로 오래 사랑 받고 있습니다. 동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의 장관은 필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장군봉의 삼국통일의 초석을 찾아서
금정산성 북문에서 제4망루 가는 길, 동남쪽에 해송이 바위 틈서리에 박혀 있습니다. 천년도 넘는 긴 세월 동안 푸르름을 자랑해 오고 있는 소나무를 '김유신 솔바위'라고 부릅니다.
이 바위에는 김유신 장군이 통일을 직접 기도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습니다. 화랑단의 낭도들을 이끌고 낙동강을 굽어보면서 호연지기와 무예를 연마하고 삼국 통일의 초석을 다졌다고 합니다. 이에 김유신 장군의 얼이 깃들었다 해서 '장군봉'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올라오면 누구라도 발 아래 세상을 두고 있어, 시 한 구절이 절로 흘러나올 듯 합니다.
지구엔 돋아난 산이 아름답다
산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답다.
산에는 아무 죄 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더 아름답다.
언제나 나도 산이 되어 보나하고
기린같이 목을 길게 늘이고 서서
멀리 바라보는 산, 산, 산.
- 신석정 '산 산 산'
계명봉과 승병들의 연병장
금정산은 봉우리가 많은 깊고 넓은 산입니다. 신의 정원 같은 산 말입니다. 이 산 봉우리들은 대개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바위 모양은 불두 모양입니다.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바위 속에 숨은 다른 함의를 읽을 수 있습니다. '큰 바위얼굴'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구국의 승병들이 많이 은거했던 금정산은 아무래도 불교의 그림자가 짙고 봉우리들의 이름도 불교적입니다.
원효봉을 비롯한 미륵봉과 계명봉 등도 불명입니다. 밤 기도를 위해 밤을 세워가며 정진을 하던 납자들이 2시 30분이면 일어나 예불을 드리던 때, 밤 하늘에 별이 총총했고 이 별을 보고 시간을 가늠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지만 흐린 날은 하늘에서 닭울음 소리를 들려주었다고 해서 '계명봉'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상계봉 역시 금정산성 제1망루에서 보면 바위의 모양이 마치 닭의 머리 벼슬처럼 닮아 보입니다.
크고 작은 많은 봉우리들이 있는 계곡에는 꽃과 솔숲과 그리고 갖가지 야생화며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숲의 오솔길이 금정산 구석구석 강줄기처럼 뻗어 있습니다.
▲금정산 범어사 뜨락에 현존하는 소나무뻗어나간 가지가 강줄기처럼 하늘 연못에 닿는 답니다.송유미
▲ 금정산 범어사 뜨락에 현존하는 소나무 뻗어나간 가지가 강줄기처럼 하늘 연못에 닿는 답니다.
ⓒ 송유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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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빛바랜 채
낙엽으로 매달려 있는데
솔잎들만
독야청청한 겨울 산
밤새 얼어붙은
얼음장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
알 수 없는 소리로 두런거린다.
그대가 보내신
늦가을 비 때문에
한 겨울에도
물소리 사라지지 않는
이 계곡에서
오늘 아침
까치 소리와 이름 모르는 겨울 새소리
함께 듣는다.
- 양왕용 '금정산 12월'
돌멩이 하나도 함부로 하기 어려운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 된 '너덜겅'
금정산의 너덜겅이 얼마전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되기도 했습니다. 이 너덜겅은 금강암에서 금정산성 북문에 이르는 구간에 펼쳐져 있습니다. 면적이 무려 20만 2000여㎡에 이른 암야입니다. 암석의 풍화와 침식과정 전체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고 원형 보존상태가 우수해 자연유산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금곡, 호포로 내려가는 야문이 2개나 있습니다. 암야를 이룬 제2금샘을 지나면 문리재가 나옵니다. 이곳에서 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장골봉을 만납니다.
곳곳에 암야입니다. 바위틈에는 낙엽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낙엽들은 다음 봄까지 섞어서 바위의 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봄이면 파릇파릇 풀숲을 만들고 이름 모를 많은 야생화를 피울 것입니다.
돌멩이 하나 낙엽 하나, 모두 모두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또 이 모두 현존하는 우리의 것이자, 천년동안 내려 온 역사의 흔적과 함께 내일로 이어질 자연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밤보다 깊은 어둠을 안으로 닫아 걸고
그 속에 아직 이름 없는
무수한 형상들이 잠자코 있다.
여기 언제부터인가
오직 한번 있기만 있고
목숨도 죽음도 없는
차디찬 너 돌이여 !
- 김상옥 '돌'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
2007.11.02 17:22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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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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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진산, 금정산에서는 돌멩이도 발로 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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