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내장산이다. 사람들은 매일 가면 지루하지 않으냐고 묻는다. 천만의 말씀! 풍경은 매일 달라진다. 아니 볼 때마다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내가 많이 가 본 곳은 그만큼 유익한 정보가 많아, 안내하기도 편하다.
하지만 연거푸 일찍 일어나는 일은 고된 일. 전날 밤부터 긴장이 되어 잠이 안 온다. 특히 아침잠이 많은 나는 괴롭다. 일찍 일어나는 거야 문제없지만 눈을 뜨고도 머릿속은 비몽사몽 꿈속에서 헤맨다. 그 상태로 버스를 타고가다 지하철로 갈아탄다.
마지막 손님까지 다 태웠는데... 악, 사고났다
오늘 시청 출발은 순조로웠다. 역시 어제처럼 개별 자유여행, 37명. 시청에서 출발. 교대에서 손님을 더 태워야 하는데, 이 손님들이 말썽이었다. 전화까지 하면서 기다려 달라는데, 그냥 갈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나보다도 차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미안하다. 드디어 마지막 손님까지 도착, 출발이다.
일정표와 배지를 나눠주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난 태연하게 '손님은 다 태웠는데 이 시간(오전 7시 5분)에 무슨 전화야' 하면서 받았다. 그런데 잔뜩 격앙된 목소리다. 난 얼른 앞으로 가서 차부터 세우고 자세히 듣는다. 교대 앞에 왔는데 차가 없었고, 내게 전화를 해 오라는 장소로 왔지만 여전히 차가 없다는 거다.
순간 머릿속에 빨간 불이 켜진다. 뭔가 잘못 돼도 크게 잘못된 거다. 우리는 한 명만 빠졌고, 일행이 안 온다고 내리려던 손님을 극구 만류(혼자서 여행하는 게 더 좋다고 사탕발림으로), 36명 다 태웠는데. 이름을 묻고 차를 되돌려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 기사님이 택시를 타고 오시라 하라고 귀띔한다.
"예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가 있는 곳이 남부 터미널인데 택시를 타고 오셔야겠어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물론 택시비는 드릴 거구요."
공손하고 차분하게 말하니, 이 손님 수긍하고 오겠단다. 제일 앞 보조석으로 와서 사장님께 전화를 한다. 사건의 전모를 이야기하고 그분의 이름과 예약, 입금 상황까지 보고한 다음 택시비 얘기를 꺼낸다. 만원 봉투에 넣어 드려야겠다고. 기껏해야 5000원 안팎이겠지만, 이번엔 100% 우리 잘못이니 조금이라도 후해야 그 분들 마음을 풀 수 있다고.
난 보조석 신세, 그래도 손님만 편하면 만사 오우~케이
우선 차에 있는 손님들에게 자초지종을 고하고 사죄를 한다. 그 다음 할 일은 자리 확보다. 옆으로든 위아래로든 네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혼자 온 분도 있고, 다섯 분이 온 팀도 두 팀이나 된다. 자리가 남아 얼기설기 앉았던 그분들 원위치해야 하는데, 움직이기 싫을 건 뻔한 일. 제일 뒤에 빈 두 자리는 아무도 원하지 않을 테니, 무용지물이고 마음만 급하다.
무조건 머리 숙이고 양해를 구해 보지만 여의치 않다. 결국 혼자 온 한 분을 내 옆자리로, 그리고 또 다른 두 분을 한 자리로 몰아 앞뒤 네 자리를 만든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기다린다. 이럴 때 난 이 여행사의 대표가 되어야 한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상대가 납득할 수 있도록 숙이고 또 숙여야 한다. 사람이란 진정성 앞에서는 약해지게 마련. 그 진정성을 보여 주는 게 첫 번째 내 임무다.
드디어 택시가 도착, 헌데 택시가 정차하기 위해 차선을 바꾸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었다. 가뜩이나 화가 난 젊은 남자분. 뒤 택시와 붙을 기세로 다가간다. 아이 하나와 부부, 그리고 할머니인데. 우리 모두 합세, 억지로 말려서 차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한다. 다시 출발하면서 머리 숙이고 그 분들 마음 돌리기에 안간힘, 무사히 수습한다.
그렇다고 끝난 건 아니다. 오늘은 조짐이 안 좋아 조심, 또 조심이다. 일정표를 마저 나누고 그분에게 택시비를 건넨다. 안 받겠다지만 억지로 안기고, 자리가 바뀐 분들에게도 다시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 불편하면 앞자리로 오시라고 권한다. 자리가 바뀐 분, 괜찮다며 불편하면 돌아오는 길에 앞으로 오겠단다.
난 꼼짝없이 보조석 신세. 하는 수 없다. 내가 불편해도 손님이 편해야 하니까. 사실 행복하고 즐겁기 위해 떠나는 여행인데, 손님만 편하면 만사 오우~케이다.
마이크를 든다. 그리고 업무 착오로 생긴 문제를 깍듯이 사과하고 이제부터 이 불쾌했던 감정을 모두 잊고 여행에 대한 상상이나 즐거움으로 마음을 채우라고 주문한다. 그래야 오늘 여행이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될 거라고. 아침 일로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으면 내 말을 따라 주리라 믿으면서.
무슨 비빔밥이 7000원... 식당 주인도 고충이 있네
▲단풍 길단풍길을 멋지게 달려가는 자전거, 사람들….이현숙
▲ 단풍 길 단풍길을 멋지게 달려가는 자전거, 사람들….
ⓒ 이현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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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내장산 입구부터 차가 밀린다. 그런데 이상한 걸 발견했다. 저수지 저쪽 길에는 차가 없다. 자세히 보니, 모든 차들을 한쪽 길로 몰고 그쪽은 무료 셔틀버스만 다닌다.
정말 생각 잘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형 주차장을 지나왔고, 이미 식당에도 연락을 해놓은 상태. 어쩔 수 없다. 오늘은 그냥 가는 수밖에.
나는 또 앞장선다. 오늘은 식당 분위기가 한결 안정되어 있다. 이번에는 말이 좀 통할라나. 오늘 보니 비빔밥이 7000원이다. 무슨 비빔밥이 7000원씩이나. 이 관광단지는 다 같은 가격일 테니 가격을 깎을 수는 없고, 그 대신 성의껏 잘해 줄 것을 당부한다. 주인의 말을 들어보니 나름의 고충은 있다. 성수기가 짧고 손님은 점점 주는 추세란다.
점심을 먹고 천천히 매표소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완벽하게 안내, 마음도 편하다. 그런데 국립공원 안에 들어와 있는 자동차들이 자꾸 눈에 거슬린다. 나무 한 번 보고 자동차 보고, 자동차 한 번 보고 나무보고 하면서 걷는다. 다른 데보다 넓다고는 하지만, 사람만 편한 여행지가 돼서는 안 되는데.
내장산 단풍이 예전같이 않다
문득 일본에서였나, 당국의 관광지 개발소식에 주민들이 나서서 막는 바람에, 옛 풍경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관광객보다 지역보호가 먼저라는 배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그런 배짱이 없는 걸까?
주 5일 근무제가 되고는 전 국민이 여행길에 나섰다.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지자체들은 홍보에 열을 올리면서 편의시설을 확충해 관광객 불러들이기에 총력을 다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자연을 파먹기만 하고 살 건가. 난 가끔(특히 관광지에 와서 보고) 우리가 땅의 골을 파먹고 사는 게 아닐까, 하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든다.
국립공원 안에 주차장이 있어 차량이 수없이 주차되어 있고, 잡상인이 조립식 탁자까지 펴 놓고 막걸리를 판다. 그리고 단속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면서도 "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역시 손님이 많이 줄었다는 엄살이다.
그 말은 점심을 먹은 식당에서도 들었다. 그들은 이유를 알까? "내장산 단풍이 예전 같지 않아"라고 하는 관광객들의 불만을. 나는 그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는데.
관광단지에서는 매일 소음이 아닌 굉음을 꽝꽝 울려댄다. 음식값은 비싸고 정성도 없어 보인다. 어떻게든 매상 올릴 생각만 하자, 맛도 서비스도 실종돼 버린 것. 그리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자신들이 받아야 하는데, 그들은 아직도 당장 손님이 준 것만 아쉬워한다.
이제 사람들은 눈만 즐거운 여행지는 찾지 않는다. 눈만이 아니라 마음도 입도 즐거워야 좋은 여행지라고 생각하고 자주 찾는다. 요즘은 인터넷 때문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투명해졌다. 그만큼 손님들도 똑똑해졌고.
그런데도 적당히 돈이나 벌겠다는 마음이면 점점 여행지로서 가치를 잃을 것이고, 장사는커녕 버려진 여행지가 될 것이다. 상인이나 지역사회가 똘똘 뭉쳐서 정말 단풍낙원을 만들어보겠다는 각오 없이는 단풍산의 명성은 영영 되찾기 힘들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0월 28일 다녀왔습니다.
2007.11.02 16:23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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