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출마선언 초읽기.. 이명박, '집토끼'도 잃을라

이재오 "오만 깊이 반성"에 박근혜측 "말로만 그러지말고 물러나야"

등록 2007.11.04 20:35수정 2007.11.0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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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홍익대앞 커피프린스에서 열린 '진짜가 온다! 커밍아웃 2035' 회원들과 감담회를 갖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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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을 괴롭히는 '땅'과 '창'에 관련된 질문 4일 오후 홍대앞에서 열린 '포스트386'과의 대화는 가야금 가락에 맞춰 '아리랑'을 들으며 부드럽게 시작했지만, '땅'과 '창'에 관한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 권우성



"이회창을 붙잡자니 '꼴통'이미지 고착이 걱정되고, 그렇다고 내치자니 보수층 표심이 흔들리고..."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 선언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후보는 서울 홍익대 인근의 카페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열린 '20~35' 세대 유권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전 총재와 만나) 점심식사를 할 때 (이 전 총재가)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한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며 "본인이 공천을 받아서 두 번이나 당원 전체의 힘을 모아서 (대선을) 했는데 신중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후보의 발언과는 달리 후보 주변에서는 "(이 전 총재가) 출마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타깝다"(이재오 최고위원)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 전 총재가 출마를 결행할 경우 그 동안의 선거 전략도 '현상유지'냐 '전면수정'이냐의 내부 논쟁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이회창이라는 '보수성향 제2후보'가 대선 정국에 등장하기 전까지 이 후보의 앞길은 말 그대로 탄탄대로였다.

"경제가 불안하다"는 대중심리의 확산은 '경제전문가 대통령'에 대한 기대로 이어져 50%를 넘나드는 고공 지지율을 낳았다. 이 후보 자신도 정치보다는 경제 얘기를 하는 데 주력하면서 한나라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을 넘어 비(非)한나라당 성향의 중도층까지 아우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BBK와 상암동 DMC 등 대통합민주신당이 국정감사 기간 동안에 전개한 네거티브 공세도 과거와 달리 대중들에게 '단순명쾌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 탓에 이 후보의 지지율에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이회창 후보'의 등장, 호재가 악재로?

하지만 이회창의 등장은 이 모든 호재들이 악재로 돌아설 수 있음을 말한다.

이 전 총재가 출마하면 그는 이번 주 중 발표될 '대국민 성명'에서 이 후보와 한나라당의 모호한 대북 정책과 안보관을 신랄하게 비판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재는 지난달 24일 보수단체 집회에서 "정치권에서는 대선에서의 표를 의식해 소위 '수구꼴통'으로 몰릴까봐 몸조심 하고 있다. 대한민국 수호세력이 모두 단결해 자유민주주의 정체성과 나라의 기반을 바로 잡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연설한 바 있다.

한나라당의 신대북정책이 북한 핵 폐기를 기화로 기존의 상호주의를 포기하고 현 정부의 포용정책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려고 한다는 게 이 전 총재의 인식이지만,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전 총재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해도 불출마의 전제 조건으로 신 대북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후보와 한나라당이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이 전 총재를 주저앉히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후보가 '친북좌파' 발언을 했을 때 우리가 잃은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이 후보가 8월 29일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이번 대선은 친북좌파 세력과 보수우파 세력과의 대결"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며 이 후보가 '색깔론' 논쟁에 휩싸인 것을 말한다.

이 측근은 "한 신문사 조사에서 8월20일부터 9월9일 사이에 7.3% 가량 지지율이 빠졌었다.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겠지만, 개혁·중도 성향의 유권자 상당수는 '친북좌파' 발언을 접하고 지지를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후보가 '이회창 향수'를 지닌 보수층을 의식해 과거 한나라당의 기조로 회귀하더라도 비한나라당 성향 유권자들이 이 후보에 대한 지지를 유지할 지는 미지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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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이 춤추는 이명박 후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홍익대앞 비보이 공연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뒤 공연단의 춤을 따라하고 있다. ⓒ 권우성


이 전 총재의 바람(?)대로 국가안보가 대선 이슈로 떠오르면 '유능한 경제전문가' 대 '무능한 여권 후보'라는 대결 구도 또한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범여권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이회창과 이명박, 보수성향의 양대 후보의 기세로 인해 당장은 3위권으로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일·안보 정책이 대선의 쟁점이 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정 후보 주변으로 모여들 공산이 크다. 김형준 교수(명지대 정치학과)는 "이 전 총재의 복귀는 곧 자신들이 맞서 싸운 구(舊)정치세력의 복귀를 의미하기 때문에 정동영 지지를 유보해온 친노 세력들에게 정 후보를 지지할 명분을 주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명박·이회창·정동영의 3파전 구도에서는 최악의 경우 "이명박·이회창 두 사람 모두 떨어지는 상황"(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이 올 수도 있다.

집안 단속? 실용주의 노선 수정? 딜레마 빠진 이명박 캠프

이 후보의 측근들은 '이회창 출마'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래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집안 단속'이다. 경선이 끝난 후 '찬밥' 대우를 했던 박근혜 의원에 대한 회유책들이 나오는 것도 "박근혜를 잡아놓으면 '이회창 출마'는 미풍에 그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나의 오만함을 깊이 반성한다. 내일(5일) 열릴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에서 이런 사과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서도 가능하면 내일이라도 직접 찾아뵙고 사과의 뜻을 전하겠다"며 한껏 몸을 낮췄다.

그러나 박 의원의 한 측근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에 사과해도 다음에 뒤통수치는 게 저쪽의 수법 아니냐? 말로만 사과하지 말고 최고위원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이 한나라당의 신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것도 이 후보 측의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이 전 총재에 이어 박 의원까지 '원칙 없는 대북정책'의 재검토를 요구할 경우 이 후보의 실용주의 대북정책에도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렇게 되면 이 후보의 '친북좌파'발언에 염증을 냈던 개혁·중도성향 유권자들이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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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 홍대앞 커피프린스에서 '포스트386과의 대화' 행사를 가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한 시민과 휴대폰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그렇다면 이 후보는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정치권 외곽에서 내놓는 처방은 제각각이다.

'강경 보수' 성향의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양(兩)이씨가 만나 주요한 정책과 이념의 차이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이 전 총재가 이 후보와 ▲ 6·15 선언과 10·4 선언의 무효화 ▲ 공직사회의 '친북좌익' 세력 정리 ▲ 헌법재판소에 대한 민주노동당 '해산' 제소 ▲ 불법폭력 시위를 막기 위한 시위관계 법률의 엄격한 개정 ▲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의 중단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눠본 뒤 출마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얘기다.

이 후보가 보수세력 후보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이 전 총재와 함께 '보수세력 분열'에 대한 책임을 나눠질 수밖에 없다는 위협성 발언으로 해석된다.

반면, 김형준 교수는 "이 후보가 행여라도 이회창 지지표를 잡으려고 기존의 선거 전략을 바꾸려는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이회창이 출마한다고 해도 '합리적·중도적 보수층'을 대변하는 이명박이 '수구적·기회주의적 보수층'을 대변하는 이회창을 몰아세워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다.

김 교수는 "이명박은 어차피 이회창과의 '보수'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 2002년 노무현은 권영길을 왼쪽에, 이회창을 오른쪽에 두었기 때문에 중도층 유권자들을 잡을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이회창의 등장으로 인해 수면 밑에 있던 '집토끼'(전통지지층) 대 '산토끼'(중도개혁층) 논쟁이 재연된 것은 분명하다.
#이명박 #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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