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민박집에서 생긴 일

[내가 만난 아프리카58] 미모의 여도둑과의 밤샘 줄달리기

등록 2007.11.07 09:46수정 2007.11.0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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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중굴라 국경의 잠베지강에서 승객과 트럭을 실어날으는 폰툰 페리 ⓒ 김성호


세계에서 가장 짧은 국경선

짐바브웨 여자 노점상에게 사진을 전달하기 위해 3시간 30분이나 늦은 나는 부랴부랴 봉고 버스를 탔다. 잠비아와 보츠와나의 국경마을인 카중굴라(Kazungula)에 도착하니 오전 11시30분. 본토와 연결된 땅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국경선이다. 잠비아와 보츠와나가 카중굴라를 중심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거리는 고작 750m.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이탈리아 로마 시내에 있는, 교황청이라 불리는 바티칸시국이 이탈리아와 맞대고 있는 국경선이 4km인 것과 비교해도 카중굴라의 국경선이 얼마나 짧은지 알 수 있다. 그 사이로는 짐바브웨와 나미비아와 맞대고 있어 지도 상으로 보면 잠비아와 보츠와나 사이에는 접한 국경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카중굴라의 국경선은 지도 상으로 긴 줄이 아니라 하나의 점으로 표시된다.

카중굴라는 잠비아와 보츠와나뿐 아니라 짐바브웨, 나미비아의 국경이 합쳐지는 곳이다. 잠베지강을 사이에 두고 사실상 4개국의 공동 국경인 셈이다. 잠비아는 보츠와나의 짧은 국경을 포함해 모두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아프리카에서 9개국의 수단, 8개국의 콩고민주공화국, 니제르와 함께 가장 많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에 속한다.

카중굴라에 도착하자 잠베지강이 잠비아와 보츠와나의 국경을 가르고 있었다. 폰툰 페리(Pontoon Ferry)라는 거룻배를 타고 국경을 건너야 한다. 배를 타고 잠베지강을 건너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카중굴라의 잠베지강은 폭이 400m밖에 안 된다. 바닥이 평편한 대형 폰툰 거룻배는 승객과 승용차, 대형 트럭까지 실어 나른다. 트럭을 싣고 내릴 때는 거룻배의 앞뒤 쪽이 내려지면서 다리처럼 육지에 닿는데, 마치 수륙양용 장갑차의 앞문이 열리는 것과 같다.

폰툰 페리를 통해 보츠와나에서 바나나를 담은 상자를 싣고 와 잠비아 쪽에 내려놓고, 잠비아 쪽에서는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화물트럭이 보츠와나 쪽으로 건너간다. 아프리카 여행 중 다리가 아니라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국경은 처음이다.

잠베지강에 다리가 건설되면...


폭이 400m밖에 안 되어 다리를 놓으면 쉽게 이동할 수 있으련만, 폰툰 페리로 사람과 자동차를 실어 나르다보니 불편하기 마련이다. 잠비아 쪽의 출입국사무소 직원에게 “다리를 놓으면 될 텐데, 불편하게 배로 실어 나르느냐”고 묻자 “2008년부터 다리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잠비아와 보츠와나를 잇는 카중굴라 다리를 놓는데 필요한 비용 미국 돈 1억 달러(900억 원. 2006년도 기준)의 재원조달과 짐바브웨와의 갈등 등으로 다리 건설이 지연되어 왔다고 한다.

카중굴라 다리가 만들어질 장소는 잠비아와 보츠와나를 가르는 잠베지강과, 보츠와나와 나미비아를 가르는 초베강이 합류하는 지점 바로 아래이다. 현재 예정된 다리 길이만 720m에 달한다. 짐바브웨가 다리 건설공사에 참여하기로 함으로써 잠비아와 보츠와나, 짐바브웨 3국이 공동으로 다리 건설 작업을 위한 재원조달 방안 등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벌이고 있다.

카중굴라 다리가 완공되면 남아공에서부터 보츠와나를 거쳐 잠비아를 통해 중부 아프리카와 동부 아프리카지역으로의 물자수송과 교역증가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자유무역지대를 꿈꾸고 있는 남부 아프리카 개발공동체(SADC)의 지역통합에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부 아프리카 개발공동체에는 남아공과 레소토, 스와질란드, 나미비아, 보츠와나, 마다가스카르, 콩고민주공화국, 세이셸, 모리셔스, 짐바브웨, 잠비아, 말라위, 모잠비크, 앙골라, 탄자니아 등 15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물론, 잠베지강에 다리가 놓이면 사람과 자동차가 함께 배를 타고 잠비아에서 보츠와나로 건너가는 푼툰 페리의 낭만은 사라질 것이다. 언젠가 내가 다시 아프리카에 올 때는 폰툰 페리 대신에 이곳에 긴 다리가 놓여 있겠지. 잠베지강은 카중굴라를 지나면서 너비가 1380m로 가장 넓어져 거침없이 흘러 빅토리아 폭포 아래로 떨어진다.

잠비아에서 시작한 잠베지 강은 앙골라를 거쳐 잠비아와 나미비아, 보츠와나 국경을 가르면서 빅토리아 폭포의 장관을 보여 준 뒤 짐바브웨와 모잠비크를 거쳐 인도양으로 흘러간다. 나는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모잠비크의 테테 지역과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폭포, 잠비아와 보츠와나의 카중굴라 지역 등 모두 세 번에 걸쳐 아름다운 잠베지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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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짧은 잠비아와 보츠와나사이의 카중굴라 잠베지강 국경(건너편이 보츠와나) ⓒ 김성호


보츠와나 국경사무실에 도착하다

잠베지 강을 건너 보츠와나의 카중굴라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했다. 잔뜩 긴장했다. 비자 발급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여행정보 때문이다. 소에게 주로 걸리는 치명적 전염병인 구제역 방역을 위한 검사가 철저해 여행객은 신발도 깨끗해야 하고 옷차림도 깔끔해야 한다.

출입국사무소는 컨테이너 박스 건물로 아담하고 소박하다. 비자요금이 보츠와나 돈으로 500풀라(Pula)나 된다. 미국 돈 1달러는 5.5풀라이기 때문에 거의 100달러인 셈이다. 아프리카 여행 중 비자요금이 가장 비쌌다. 말라위만 70달러였고, 대부분은 30~50달러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비자요금으로 달러는 안 받고 오로지 자기 나라의 풀라만 받는다. 내가 비자요금으로 미국 돈 100달러를 내자 남자 직원이 “달러는 받지 않으니 풀라로 바꾸어 내라”로 한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는 미국 달러를 더 좋아하는데, 보츠와나는 참 특이하다.

살만한 나라라서 그런가. 실제로 보츠와나는 남아공, 나미비아와 함께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이고, 외환보유고가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보츠와나는 크기에 비해 인구는 적고 다이아몬드와 구리, 니켈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보츠와나는 58만1730km²로 한반도 크기의 2.7배에 해당하지만, 인구는 177만 명(2005년 기준)으로 남북한인구의 50분의 1밖에 안 된다. 보츠와나는 인구밀도가 3.0명/km²로 나미비아(2.4명)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이기도 하다.

내 주머니에는 잠비아 국경에서 남은 콰차를 풀라로 바꾼 103풀라밖에 없다. 출입국사무소 직원에게 물었다.

“어디서 달러를 바꿀 수 있느냐?”
“폰툰 페리 선착장에 가면 환전상들이 있을 것이다.”

출입국 사무소에서 나와 선착장으로 걸어가는데 한 젊은이가 “환전하라”며 다가온다. 젊은이에게 미국 돈 150달러를 주고 700풀라로 바꿨다. 출입국 사무소에 돌아와 500풀라를 내니 비자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보츠와나 방문 이유와 구체적인 방문 장소뿐 아니라 소유 현금 액수와 다른 나라로 간다는 증명서 등을 적으라고 한다. 여행객으로서는 귀찮은 내용들이다. 다른 나라는 간단히 여권번호와 머무는 장소 등만 기록하면 되었다.

요구하는 대로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니 젊은 남자 직원이 반가운 듯 “코리아”하면서 나를 쳐다본 뒤 바로 비자를 내준다. 잠비아에서 육로를 통해 보츠와나로 입국하는 한국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반가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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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츠와나의 100풀라 지폐 ⓒ 위키피디아


보츠와나의 만세삼창은 ‘비, 비, 비’

보츠와나의 화폐단위인 '풀라(Pula)'는 보츠와나어로 '비(Rain)'라는 뜻이다. 보츠와나의 동전인 '테베(Thebe)'도 '빗방울(Raindrops)'이라는 의미이다. 1풀라는 100테베이다. 칼라하리 사막을 중심으로 전 국토의 3분의 2가량이 사막이나 건조지대다 보니 물이 귀할 수밖에 없다.

보츠와나가 국가적으로 얼마나 물을 소중히 여기는지는 여러 가지 국가 상징물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국기의 바탕색인 하늘색은 바로 비와 물을 상징하고, 나라의 상징표지인 국가문장에도 얼룩말과 함께 하늘색의 세 줄로 된 물결 모양의 비와 물을 나타내는 문양이 그려져 있고 밑 부분의 하늘색 띠에는 '풀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심지어 국가의 구호인 모토가 아예 '풀라'여서 공식행사를 치른 뒤 부르는 만세삼창이 '풀라, 풀라, 풀라'일 정도이다.

오카방고 델타를 구경한 뒤 하루를 묵었던 수도 가보로네 시내의 국회의사당 건물 앞 작은 교차로의 이름도 '풀라 환상교차로(Pula Circle)'였다. 국기와 국가문장, 화폐, 국가모토, 도로이름 등 모두 '풀라'이다. 보츠와나에서 비와 물은 생명과도 같기 때문이다.
   
보츠와나(Botswana)라는 나라 이름은 대표적인 부족인 츠와나(Tswana)부족 이름에서 따왔다. 츠와나부족은 전체 인구의 69%나 차지하고, 부시맨으로 알려진 산족은 칼라하리 사막에서 주로 산다. 츠와나부족이 쓰는 언어를 세츠와나(Setswana)라고 하는데, 풀라는 바로 세츠와나어이다.

오카방고 델타(삼각주)가 있는 마운(Maun)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다. 비자를 받자마자 나는 마운으로 가는 차량을 타기 위해 국경도시인 카사네(Kasane)로 서둘러 가야 했다. 카중굴라 국경에서는 차가 없어 30분을 걸어 나와 세세(Sese)라는 마을의 큰 도로에서 간신히 봉고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카중굴라에서 세세로 가는 길은 오른쪽으로는 보츠와나와 나미비아를 가르는 초베강이 흐르고, 왼쪽으로는 보츠와나와 짐바브웨를 가르는 레쇼모강이 흐른다. 카사네로 가는 버스요금이 2풀라이다. 짐바브웨에서 놀란 가슴이 잠비아를 거쳐 이제 정상요금으로 돌아왔다. 짐바브웨에서는 가까운 거리의 버스요금이 무려 15만 짐바브웨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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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국 국경이 인접해 있는 카중굴라 국경의 잠베지강(중앙 오른쪽이 잠비아, 왼쪽이 보츠와나, 아래쪽 가운데 섬부분은 짐바브웨, 위쪽 가운데 섬 부분은 나미비아) ⓒ 위키피디아


초베 국립공원의 길목인 관광도시 카사네

카사네로 가는 길은 초베강을 끼고 달리는데, 시내 역시 초베강 옆에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우리네 작은 읍내 도시와 같았다. 고급숙소인 롯지와 외국계 은행들이 있어 관광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카사네는 국경도시이자 초베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이다. 초베 국립공원은 12만 마리의 코끼리가 서식하는 세계 최대의 코끼리 집단 서식지로 유명하다.

버스정류장에 갔으나 카사네에서 직접 마운으로 가는 교통편은 없었다. 그때가 오후 2시. 일단 나타(Nata)라는 도시로 가서 다시 마운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그러나 나타로 가는 버스도 이미 끊어진 지 오래되었다. 카사네에서 마운 사이에는 초베 국립공원과 오카방고 델타의 습지대가 가로막고 있어 직접 가는 도로는 없고, 아래쪽의 나타라는 도시를 거쳐 다시 빙 돌아 마운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가야 한다. 카사네에서 마운까지는 이렇게 돌아서 가다 보니 540km를 넘게 가야 한다.

버스정류장에 있는 현지인들이 나타 가는 차량을 잡으려면 “세세(Sese)라는 마을까지 가서 지나가는 차량을 타고 가야 한다”고 일러준다. 카중굴라 국경에서 왔던 세세로 다시 봉고 버스를 타고 되돌아갔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처음으로 지나가는 차량을 얻어 타고 가는 히치하이크에 나섰다. 이미 20여명의 현지인들이 지나가는 차량을 얻어 타려고 길가에 늘어서 있었다.

나타로 가는 정규 버스는 아침 일찍 한 번 밖에 없어 첫차를 놓치면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승용차나 트럭 등을 얻어 타고 가야 한다. 이른바 히치하이킹이다. 히치하이크라고 해서 공짜는 아니고, 버스요금과 비슷한 돈을 줘야 한다. 현지인들은 대부분 나타를 거쳐 보츠와나 제2의 도시인 프란시스타운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나타를 거쳐 오카방고 델타가 있는 마운으로 가는 사람은 여행객인 나 혼자였다.

몇 대의 지나가던 트럭과 승용차가 섰지만 모두 나타를 거쳐 프란시스타운으로 가는 차량들이다. 마운으로 가는 차량은 하나도 없었다. 1시간 30분이나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히치하이킹은 아프리카 여행에서 처음이라 낯설기도 하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여행에서 히치하이킹은 가능한 피해야 한다. 전혀 모르는 운전사에게 자신의 안전과 운명을 맡기는 위험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에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만큼 안전한 것은 없다. 히치하이킹을 무슨 여행에서 색다른 경험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도 아프리카를 홀로 여행하면서 하루를 더 묵더라도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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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츠와나 세세 마을의 정류장 앞 도로를 한줄로 건너는 코끼리 떼 ⓒ 김성호


도로에서 맛보는 코끼리 사파리

아프리카의 강렬한 햇빛 아래 오랜 시간 히치하이킹을 하다 보니 피곤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했다. 그때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예상치 않았던 장면이 나타났다. 코끼리 떼가 바로 눈앞의 도로를 건너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차량 잡는 것을 제쳐놓고 코끼리 떼가 지나가는 도로 쪽으로 걸어갔다. 어른 코끼리 4마리와 중간 크기 2마리, 새끼 코끼리 2마리의 코끼리 대가족이다.

원숭이가 도로를 지나가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코끼리가 도로를 활보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나도 처음 보는 장면이다. 코끼리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재빨리 도로를 건너 숲 속으로 들어갔다. 주변은 바로 카사네 보호림 지역이다. 다시 5마리의 코끼리가 앞서 지났던 코끼리와 같은 길을 가로질러 숲 속으로 들어간다.

제일 먼저 수컷 코끼리 한 마리가 길을 건너자 중간 크기와 새끼 코끼리들이 그 뒤를 따르고 맨 뒤에 수컷 코끼리가 건넜다. 길을 건너면서도 다른 포식동물들로부터 새끼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무리의 가운데에 서게 하는 보호본능이 작용하고 있었다.

정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끼리 떼가 산다는 초베 국립공원의 길목답다. 초베 국립공원에 직접 가지 않고도 길거리에서 탄자니아 마니아라 호수나 응고롱고로 보호구, 세렝게티 초원 등에서 봤던 코끼리보다 한꺼번에 더 많은 무리의 코끼리 떼를 본 셈이다. 케냐 나이로비의 뉴케냐롯지에서 만난 젊은 의사는 “수백 마리의 코끼리 떼가 한꺼번에 움직이면 초베 공원의 땅이 꺼질 듯 쿵쾅거린다”며 적극 추천했다.

초베 국립공원의 수백 마리 코끼리가 ‘일자 진영’으로 무리를 지어 달려오는 사하라 사막의 독일 롬멜 장군의 대전차 군단 같은 웅장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공짜 코끼리 사파리치고는 너무나 멋진 장면이었다. 카사네는 길거리에서도 코끼리 떼를 볼 수 있는 코끼리 천국이다.

현지인들은 히치하이킹은 포기하고 코끼리 구경에 정신이 팔린 내가 신기할 따름이다. 그들에게 코끼리는 우리가 시골에서 소를 보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일 테니까. 코끼리가 지나가면 그들은 나한테 “코끼리다”라며 손으로 가리켜주었다. 길가에는 코끼리뿐 아니라 당나귀도 정류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걸어다닌다. 당나귀는 길거리 쓰레기통에 코를 대고 끙끙거리며 냄새를 맡은 뒤 사람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을 먹는다.

아프리카 여행의 별미는 바로 국립공원이 아니더라도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면서 야생동물을 보거나,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동물들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다. 코끼리가 도로를 어슬렁어슬렁 건너가고, 기린이 목을 길게 빼어 나뭇잎을 먹고, 커다란 영양의 일종인 쿠두가 도로의 철망을 뛰어넘어 달아가고, 개코원숭이가 아스팔트 도로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오후의 휴식을 취한다.

아프리카 아니고서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정말 아프리카에 야생동물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여행을 할까. 아프리카의 동물은 지구의 축복이자 다음 세대에 길이 넘겨줘야 할 인류의 자산이다.

코끼리 구경을 하는 데 잠시 정신을 판 뒤 나는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와 지나가는 차량에 손을 흔든다. 가끔 차량이 서는데, 내 차례가 오지 않는다. 마운으로 가는 차량도 거의 없는데다 배낭을 메고 뛰어야 하니 다른 현지인들이 나보다 먼저 차량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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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 마을의 정류장 앞 도로에서 수컷 코끼리가 맨 뒤에서 건너는 모습 ⓒ 김성호


맹랑한 보츠와나의 아가씨

너무 피곤해 도로 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땅에 덥석 주저앉았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땅에 앉아 쉬고 있는데 키가 큰 젊은 여자가 다가와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내가 “마운 간다”고 하자 그녀는 “직접 마운으로 가는 차량은 없으니 일단 나타로 가는 차량을 타고 가서, 거기서 다시 마운으로 가는 차량을 히치하이킹하라”고 한다. 키가 170cm가 넘고 세련된 복장에다 눈에 띄는 미모로 보아 시골 여자 같지는 않은 인상이다.

아주 맹랑한 아가씨이다. 처음 보는 나한테도 아주 붙임성이 있고,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이름이 “디데(Deede)이고 25살”이라고 한다. 제2의 도시인 프란시스타운에서 구둣가게를 하는데, 아버지가 살고 있는 고향인 카사네의 집에 왔다가 다시 프란시스타운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란다. 그녀는 40대 중반의 언니와 20살 정도의 여동생과 함께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당돌하기 짝이 없다. 내가 “2시간 넘게 차량을 기다렸으나 잡지 못했다”고 하자 “걱정하지 마라”며 자신이 책임지고 차량을 잡아주겠다고 큰소리친다. 자신의 긴 치마를 무릎 위로 걷어 올리고 다리를 드는 자세를 취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위아래로 까닥이는 시늉을 한다. 자신의 치마만 조금 걷어 올려도 지나가는 차량들이 선다는 뜻이다. 친절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푼수데기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미모와 젊음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의 발로라고 해야 하나.

지나가는 차량도 점점 줄어들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기다리던 사람 중 절반 정도는 차를 타고 갔으나 나머지 절반은 차를 잡지 못하자 하나 둘 집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보츠와나 아가씨의 치마 걷어 올리기도 결국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치마 걷어 올리기는 트럭을 세우는 데는 성공했으나 우리 모두가 타고 갈 좌석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가 신고 있던 하이힐 구두를 벗어들고 지나가는 차량에게 살짝 치마를 올리며 운전사들을 유혹하자 몇 대의 트럭이 섰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 3명과 나를 포함해 4명이 타기에는 좌석이 부족해 번번이 다른 승객들이 대신 타고 갔다. 트럭의 빈 자리는 한두 석밖에 없었다.

잠비아 리빙스턴에서 짐바브웨 여자 노점상에게 사진을 전달하기 위해 3시간 30분을 지체한 것이 결국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장거리 도시 사이의 이동에는 반드시 오전 10시 이전에 다음 목적지의 버스나 차량을 타야 한다. 오후에 다른 여행지로 이동하는 것은 교통수단의 부족과 시간상 이유 때문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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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히치하이킹을 하던 카사네의 세세 마을 정류장 ⓒ 김성호


날을 어둡고 갈 곳은 없는데...

오후 7시 30분이 되자 어둠이 엄습하고, 나와 그녀의 가족 3명, 그리고 길 잃은 대여섯 마리의 당나귀만이 남았다. 그녀는 카사네 시내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 집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아침 나타로 가는 첫 버스를 타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한다. 카사네에서 나타로 가는 버스의 출발시각은 아침 6시 30분.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와 같은 방을 쓰면 된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난감했다. 아프리카 여행 중 이렇게 난감하기는 처음이다.

아무리 어두운 밤에 도착해도 발품을 팔면 그동안 여행객 숙소를 잡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보츠와는 인구도 적고 배낭 여행객도 그리 많지 않다 보니 다른 아프리카 국가처럼 값싼 배낭여행객 숙소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 단체 투어 관광객을 위한 고급 호텔이나 롯지만 있다 보니, 보통 숙박비가 미국 돈 70달러나 100달러 이상 되는 곳밖에 없다. 카사네도 마찬가지이다. 보츠와나는 이처럼 비자요금도 비싸고 무엇보다 싼 숙소가 없다 보니 여행비용이 만만찮고, 대부분 사막이나 건조지대로 교통수단도 좋지 않아 나처럼 홀로 배낭여행하는 사람들은 꺼리는 곳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보츠와나의 길거리에서 밤을 꼬박 샐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세 자매와 함께 카사네 시내에 있는 그녀의 아버지 집으로 갔다. 그녀가 약간 미심쩍었지만, 그녀의 언니와 동생이 있으니 안심이 되었다. 언니와 동생은 말이 없이 조용하고 착한 성품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집에 들어서자 우리네 시골집의 대가족이 사는 ㄷ자형 시멘트 단층집이 나왔다. 가운데 안방이 있고, 안방을 중심으로 방이 6개나 되는 중산층이다.

언니의 방에는 아이들이 5명이나 있었고, 화목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뒤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집에 도착하자 그녀의 말이 달라졌다. 아버지가 아파서 자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녀와 여동생이 자는 방에서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방에는 침대가 두 개 있었는데, 오른쪽의 침대에는 그녀와 여동생이 자고, 나는 그녀가 쓰던 왼쪽의 침대를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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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깔리자 길을 잃고 서 있는 카사네의 세세 마을 정류장의 당나귀 ⓒ 김성호


자꾸 술을 권하는 그녀

나는 오랜 기간 도로에 서 있다 보니 피곤이 몰려와 잠이 쏟아졌다. 바로 자려고 했으나 그녀는 “배가 고프다”며 저녁을 사달라고 졸라댔다. 나도 배가 고픈데다 방값 대신 저녁을 사준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데려간 곳은 초베강이 흐르는 멋진 초베사파리롯지의 야외 뷔페. 그녀는 중간에 우연히 만난 자신의 여자 친구까지 데려가 나의 비용부담도 만만찮았다.

하루 숙박비가 미국 돈 100달러 이상인 고급호텔인 초베사파리롯지의 야외 뷔페장소는 초베 강이 바로 눈앞에서 흐르는 강 언덕에 있다. 초베강 건너편은 나미비아의 카프리비 스트립의 범람지역이다. ‘브라이(Braai)’라는 이름의 아프리카 바비큐 뷔페에는 쇠고기나 돼지고기뿐 아니라 임팔라와 쿠두, 영양 등 사파리 동물들의 다양한 고기들을 맛 볼 수 있어 좋았다. ‘브라이’는 남아공의 백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바비큐의 아프리칸스어이지만 보츠와나와 나미비아는 남아공의 영향으로 자주 사용하고 있었다.

보츠와나 맥주인 ‘세인트 루이스 스페셜 라이트 라거’를 곁들인 초베강변에서의 뷔페는 배낭여행객에게는 호화로운 저녁식사이지만,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 아래 초베강변의 개구리들이 “개굴개굴”하는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린 멋진 밤이었다.

초베강은 앙골라에서 시작한 물이 칼라하리 모래 밑을 흐르다 은고마에서 강줄기로 변해 초베 국립공원을 만들어 코끼리의 천국을 탄생시키고, 아래로 흘러 카중굴라 국경사무소에서 잠베지 강에 합류해 흘러간다. 그녀는 나에게 맥주를 더 마실 것을 자주 권했지만, 나는 딱 한 병만을 마시고 더 이상 마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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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베 국립공원의 해넘이 장면(우간다 여행 동료가 찍은 사진) ⓒ 로렌스 스미스


도둑으로 돌변한 미모의 보츠와나 아가씨

저녁을 먹고 밤 10시께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랜 히치하이킹에다 맥주 한 병의 취기가 더해져 바로 잠에 떨어졌다. 나는 왼쪽 침대에 혼자 잠이 들었고, 그녀는 여동생과 오른쪽 침대에 함께 잤다. “부스럭~부스럭~”하는 소리가 잠결에 흘러간다. 자꾸 뭔가가 들리는데 내 눈은 피곤해 떠지지 않는다. 다시 침대 옆에서 누군가 배낭의 지퍼를 열려고 “끙~끙~”하며 안간힘을 쓰는 소리가 들린다. 번뜩 이상한 예감이 들면서 눈을 떴는데, 놀랍게도 그녀가 나의 배낭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여행 중 항상 배낭을 자물쇠로 채우고 침대 옆에 놓고 잔다. 기숙사식 도미토리 여행객 숙소에는 여러 명이 함께 자기 때문에 늘 도난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렇잖아도 의심이 가던 참이었다. 자신의 아버지 방에서 재워주겠다고 데려와 놓고, 자신의 방에서 자게 하고, 무엇보다도 저녁 식사 때 싫다는 나에게 지나치게 맥주를 권했다. 나는 여행 중에는 맥주 한 병 이상은 가능한 마시지 않았다. 다음날 여행에도 지장을 주지만, 술에 취하면 아무래도 치안이나 도난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행동이 약간 의심스러웠지만, 그래도 여동생과 함께 자는데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겠는가 하며 내 스스로 위안을 삼았었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판단착오였다. 그녀가 자신의 방에 자게 하고 뷔페에서 술을 권한 것은 모두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호랑이 굴에 잘못 들어간 것이다. 그녀의 친절에는 음흉한 속셈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배낭의 지퍼 손잡이가 자물쇠로 채워져 있어 열지 못하자, 아예 지퍼 부분을 고장 내어 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난감했다. 그대로 있자니 배낭 속에 감춰둔 여행경비와 카드가 들어 있는 지갑을 빼앗기게 생겼고, 소리를 치자니 한밤중에 난리가 날 것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나는 눈을 뜨고서도 모르는 척 그녀의 손놀림을 한참 지켜보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하지….

그러나 나는 애송이 배낭여행객이 아니다. 이미 한 달 반 이상의 배낭여행을 통해 어느 정도 아프리카 상황에 익숙해 있었다. 배낭을 열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나의 손으로 세게 내리쳤다. “친절한 디데씨. 왜 이러시나”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놀라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오히려 그녀였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더니 방안의 전깃불을 켜면서 “무슨 일이냐”고 나에게 버럭 화를 낸다.

“왜 나를 때리느냐.”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느냐.”
“잠을 재워줬는데, 나한테 이래도 되느냐?”
“나를 바보로 아느냐. 내 배낭 속의 지갑을 훔쳐 가려 하지 않았느냐.”

가당찮은 일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이요,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드는 적반하장이다. 우리가 싸우는 것을 옆에 자고 있던 그녀의 여동생이 다 듣고 있었나 보다. 여동생이 몸을 뒤척이면서 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도 여동생 보기에 창피했는지 전깃불을 끄고 슬그머니 여동생 옆으로 가서 다시 침대에 눕는다. 나도 그녀의 체면을 세워줘야 하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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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베 국립공원의 하마 ⓒ 로렌스 스미스


사랑방 여행객과 도둑 아가씨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소름이 끼치는 싸늘한 기운에 다시 잠이 깨었다. 그녀가 다시 배낭을 열려고 끙끙거리고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이 도둑이 지갑을 보고 그냥 잘 수가 있었겠는가. 이번에도 내가 손을 세게 내리친다. 똑같은 싸움이 반복된다. 그 다음에는 눈싸움으로 간다. 기세 싸움이다.

그녀가 이제는 막가파로 나온다. 더 이상 배낭 속의 지갑을 훔쳐가는 것이 어렵다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돈도 안 내고 어떻게 공짜로 남의 집에서 자려고 하느냐”며 “지금 당장 나가라”고 한다. ‘친절한 디데씨’의 본색이 드러났다. 새벽 3시. 캄캄한 보츠와나의 국경마을에 배낭을 메고 지금 나가서 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녀는 배낭여행객의 약점을 알고 초강수를 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침대에서 바로 일어섰다. “그래, 나가겠다”고 말하고 배낭을 추슬러 일어섰다. 이번에도 당황하는 것은 정작 내가 아니라 그녀였다. 막상 내가 배낭을 메고 방을 나가려 하자 그녀는 “그냥 자고 아침에 나가라”며 마치 아량을 베푼다는 자세이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기세가 꺾여 있었다.

나는 침대에 다시 누워 자면서 이번에는 아예 배낭을 죽부인처럼 끌어안고 잤다. 내 몸을 떼어놓지 않고는 지갑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더 이상 내 침대로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새벽 5시가 다 되도록 배낭을 끌어안고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동이 트기만을 기다렸다.

보츠와나의 새벽닭이 울자 그녀는 다시 나에게 접근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법이 달랐다. 그녀는 나의 어깨를 흔들어 깨우더니 신세 한탄 겸 하소연했다. “프란시스타운에서 하는 구둣가게가 어려워 빚을 많이 졌다느니, 어머니가 몇 해 전 돌아가시고 아버지만 남아 자신이 생계를 도와줘야 해서 경제적으로 어렵다느니, 언니가 병이 있어 치료비가 필요하다느니, 같은 방에서 자고 있는 여동생이 돈이 없어 대학을 못 간다느니….”

어디서 그렇게 많은 이유를 갖다 대는지 그녀의 핑계 능력은 대단했다. ‘밤의 도둑 얼굴’에서 ‘새벽의 여인의 눈물’로 전략을 바꾸었다. 그녀의 속셈을 모를 리 없는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또 다른 접근이다. 애교작전인데 걸작이다. 자신의 생일이 오늘인데 선물을 해달란다. 물론 생일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핑계이다.

생일이라는 얘기는 유치원 아이한테나 통할 법한 유치한 수법이지만, 남자의 ‘마초’를 자극하려는 수법이다. “보츠와나에서는 여자의 생일날 남자 친구가 꼭 목걸이나 구두 등 선물을 해준다”면서. 언제부터 내가 자기의 남자친구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사랑방 여행객과 도둑 아가씨’로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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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베 국립공원의 코끼리 떼 ⓒ 로렌스 스미스


그녀, 결국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다

그녀의 결론은 하나이다. 돈을 달란다. 그녀의 최후통첩은 “800풀라”였다. 미국 돈 150달러에 해당하는 엄청나게 큰돈이다. 이제는 내가 지갑을 꺼내 보여주며 “돈이 있으면 다 가져가라”고 하자 진짜 지갑 속을 열어 본다. 지갑 속에는 비자카드 이외에 현금이라고는 국경에서 환전한 뒤 비자요금을 내고 남은 100풀라밖에 없었다.

나는 미국 달러는 지갑이 아니라 양말 속에 감춰두고 있었다. 아프리카 여행을 떠날 때 돈과 여권을 넣을 수 있는 여행용 지퍼 양말을 두 켤레 사서 돈을 보관하는 장소로 이용했다. 지저분한 양말 속에 돈을 숨겨 놓을 것으로 누가 상상하겠는가. 장기 배낭여행 때 나만의 현금보관 노하우이다. 그녀도 이제 더 이상 뭐라고 못 하겠지….

내가 또 그녀를 잘못 보았다. 그녀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대단한 여자였다. 장사꾼 기질이 있다고 해야 하나, 후안무치하다고 해야 하나, 돈 앞에서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집 앞에 있는 바클리은행에 자동현금지급기(ATM)가 있다”며 돈을 찾으러 나가자고 한다. 내 지갑 속의 비자카드를 본 것이다. 결국 그녀와의 싸움에서는 내가 졌다.

카드로 돈을 찾으면 된다고 내 손을 잡고 방에서 아예 끌어낸다. 나는 “가난한 배낭여행객이라 돈이 없다”며 버티다 결국 숙박요금 턱으로 300풀라(미국 돈 50달러)를 주기로 그녀와 최종 합의했다. 아프리카에서 민박한 셈치고 50달러를 주기로 한 것이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인 새벽 5시 30분 나는 바클리은행의 자동현금지급기 앞으로 내몰렸다. 카드로 300풀라를 뽑아 그녀에게 건네주자 그때서야 그녀의 얼굴색이 밝아졌다. 나도 비로소 호랑이 소굴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녀의 미모에는 도둑심보가, 그녀의 친절에는 가시가 숨어 있었다. 나는 보츠와나의 미모의 여도둑이 숨긴 가시에 제대로 찔렸다. 이처럼 배낭여행에서 히치하이킹과 잘 모르는 사람의 집에서 자는 민박은 스릴과 현지인의 생활을 직접 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 되기도 하지만,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보츠와나 #아프리카 여행 #카중굴라 #잠베지강 #카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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