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베지강에서 즐기는 짜릿한 래프팅

[내가 만난 아프리카57]이국적 정취에 계곡 깊고, 물도 많고...

등록 2007.10.25 09:19수정 2007.10.2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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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베지강 래프팅 출발장소인 빅토리아 폭포 바로 아래 보일링 포트 ⓒ 김성호



빅토리아 폭포에서 쏟아지는 쓰나미 같은 물과 이국적 정취


빅토리아 폭포에 머문 둘째 날 나는 하루 종일 잠베지강에서 래프팅을 즐겼다. 오랜만에 여유를 갖고 즐기는 레포츠다. 홀로 배낭여행을 한 지 벌써 50여일이 되어 가는데, 그동안 짧은 기간에 에티오피아에서부터 케냐와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탄자니아와 잔지바르, 말라위, 모잠비크, 짐바브웨, 잠비아 등 10여 나라를 거쳐 오느라 잠시 휴식이 필요하기도 했다. 이동하기에 바빠 몸과 마음의 평온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잠베지강에서의 래프팅은 정말 아찔할 정도의 짜릿한 즐거움과 잊을 수 없는 멋진 추억을 내게 남겼다. 빅토리아 폭포의 잠베지강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래프팅 장소로 꼽힌다. 빅토리아 폭포에서 쏟아지는 쓰나미 같은 물과 산더미 같은 파도, 가파른 경사에 의한 급물살, 마치 뱀처럼 꼬불꼬불한 계곡, 깎아지른 듯 한 높은 절벽, 기기묘묘한 바위와 아프리카인들의 바위그림(암벽화), 처음 보는 외국인들과 한 팀이 되어 즐기는 이국적 정취.

래프팅은 잠베지강 최고의 레포츠가 된다. 잠베지강의 래프팅은 짜릿함의 극치다.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저으며 계곡의 급류를 타고 내려가는 래프팅의 속도감과 짜릿한 스릴을 느끼려면, 깊은 산골짜기와 많은 양의 강물이 필요하다. 잠베지강은 바로 그런 장소다. 빅토리아 폭포는 폭포 구경 뿐 아니라 각종 레포츠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눈으로 하는 구경과 몸으로 체험하는 여행을 같이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운이 좋으면 래프팅을 하면서 강 주변의 야생동물도 구경하는 래프팅 사파리도 할 수 있다.

잠베지강의 계곡을 따라 보트를 타고 즐기는 래프팅은 세계적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서 내가 갔을 때도 스릴을 즐기려는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들었다. 잠베지강의 래프팅은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래프팅 회사의 트럭이 아침 7시 30분께 여행객 숙소로 와서 사람들을 태우고 폭포 근처에 있는 래프팅 회사 사무실로 데려간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제공한 뒤 래프팅 타는 요령과 구명조끼 착용 등 안전수칙을 교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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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폭포 입구의 나뭇가지에서 열매를 먹고 있는 베르베트원숭이 ⓒ 김성호


음식을 달라는 베르베트원숭이


우리가 래프팅 안전교육을 받으면서 아침식사로 샌드위치 등을 먹는데, 옆에 있는 나무 위에서 베르베트원숭이(Vervet Monkey)가 "끄윽, 끄욱"하면서 우리를 부른다. 음식을 달라는 소리다. 그러나 절대 원숭이에게 먹이를 줘서는 안 된다. 사람이 먹던 음식에 길들여지면 나중에 여행객의 음식과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골칫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베르베르원숭이는 결국 구걸을 포기하고 나뭇가지에 앉아 열매를 따서 먹는다.

긴팔과 다리를 가진 베르베트원숭이는 코가 납작하고, 얼굴만 검고 배는 희고 등은 하얀색에 가까운 회색이다. 개처럼 코가 튀어 나오고 꼬리를 쳐들고 다니는 개코원숭이(바분원숭이)가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의 털을 갖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베르베트원숭이는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 주로 살기 때문에 사바나원숭이(Savannah Monkey)라고도 부른다.

탄자니아의 마니아라 호수나 세렝게티 초원, 짐바브웨의 그레이트짐바브웨에서 보았던 개코원숭이가 사람이 오면 숲이나 나무 위로 달아나는 등 의심이 많고 사람을 경계하는 것과 달리, 베르베트원숭이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까이 와서 먹이를 달라고 조른다. 아프리카 여행하는 동안 사바나 지역에서도 개코원숭이는 자주 볼 수 있었지만, 베르베트원숭이는 오히려 보기가 힘들었다.

래프팅 회사 사무실 근처의 빅토리아 폭포 입구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전통 공예품을 파는 가게들이 문을 열고 여행객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래프팅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래프팅 함께 하는 사람은 모두 24명.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이 다 모였는데, 여자들 숫자도 남자들 못지않았다. 나이도 천차만별이어서 남녀노소 즐기는 레포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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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베지강 래프팅 출발지점인 보일링 포트에서 내가 탄 보트가 뒤집히는 장면<래프팅 장면을 담은 디브이디 캡처> ⓒ 김성호


첫 번째 시도에서 보트를 삼켜버리는 파도

본격적인 래프팅은 오전 10시에 시작했다. 빅토리아 폭포 아래 두 번째 계곡이 시작되는 장소가 출발지점인데, 전날 철길 다리에서 본 위쪽의 물살이 회오리를 일으키는 '물 끓는 웅덩이'(Boiling Pot)다. 땅에서 자신의 노를 갖고 래프팅 출발지점까지 내려가는 데만 20여 분이 걸렸다. 그만큼 래프팅을 하는 잠베지강의 골짜기가 깊기 때문이다. 거의 수직으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잠베지 래프팅 코스는 24km의 계곡을 따라 모두 4시간 정도 보트를 타는 것으로 돼있다. 빅토리아 폭포 아래에서 시작해 바토카 계곡(Batoka Gorge)을 흐르는 잠베지강을 따라 즐기는 래프팅 코스는 각 지형의 특징과 물살의 속도에 따라 25개의 여울(급류)마다 독특한 이름이 있다. 비가 적은 건기인 7, 8월에는 여울 1에서부터 21번까지 보트를 즐긴다. 첫 번째 출발하는 '물 끓는 웅덩이'는 여울 1번으로 '부자에서 가난뱅이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름 그대로 고생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우리는 한 배에 6명씩 4개의 보트에 각각 나눠 탔다. 우리 배에는 아일랜드에서 온 20대의 젊은 남자 4명과 네덜란드에서 온 50대 중반의 남자 1명 등 6명이 탔다. 출발지점에는 우리 쪽 보트 4개뿐만 아니라 다른 래프팅 회사의 보트 4개 등 모두 8개의 보트가 북적거린다.

보트가 출발하기 전 현지인 조교가 노 젓는 방법과 물살이 덮칠 때 바닥으로 앉으면서 밧줄을 잡는 방법  등 기본 래프팅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와 함께 보트를 타고 가는 안전요원인 조교는 40대의 '충고'(Choongo)라는 사람인데, 야무지게 생겼다. 조교는 한 사람 한 사람씩 직접 구명조끼를 검사했다. 거센 물살에도 벗겨지지 않도록 배가 아플 정도로 구명조끼를 꽉 매고, 헬멧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꽉 조인다. 워낙 물살이 세고 바위가 많은 잠베지 강이다 보니 안전에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다.

"앞으로!"

조교의 출발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열심히 노를 저었다. 첫 번째 통과해야 하는 계곡은 폭포에서 내려오는 물이 급물살을 타고 파도를 만들며 회오리를 일으키는 곳이다. 힘차게 나아가는 듯 하던 보트에 갑자기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어닥친다. 눈이 가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젖던 노에서 손이 떨어져 나가고, 배가 휘청거린다. 출발한 지 10초도 안되었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배가 뒤집어진 것이다. 험난한 출발이다.

나는 물을 조금 들이 마신 뒤 정신이 들어 빨리 헤엄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물속에서 고개를 들어 나오려 하니 내가 뒤집힌 보트 안에 갇혀 있었다. 뒤집힌 배가 머리를 눌러 물속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끔찍한 생각마저 스친다. 앞이 캄캄하다.

필사적으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밖으로 조금 헤엄쳐 나와 고개를 드니 보트는 뒤집힌 상태로 그대로 있었다. 뒤집힌 배의 옆을 잡고 있으니 건너편 쪽에도 아일랜드 젊은이 3명이 나와 같이 보트 옆의 끈을 잡고 있다. 잠시 뒤 조교가 어디서 왔는지, 뒤집힌 보트 위로 올라가 정상으로 되돌린다. 그 때서야 우리는 밧줄을 잡고 다시 보트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나와 아일랜드 젊은이 3명만 보이고, 다른 두 명은 보트 위에 오르지도 못했다. 네덜란드 50대 남자는 물가 쪽으로 떠내려가고, 아일랜드 젊은이 한 명은 처음 탔던 뭍으로 올라가 피신했다. 두 명은 모두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다.

첫 번째 여울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살이 급경사를 타고 내려오는데다, 계곡에서 회오리를 일으키며 바람처럼 돌아 다시 흘러가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코스다. 산더미 같은 파도와 회오리 물살에 걸려들면 악마의 입에 들어간 것처럼 쉽게 통과하기 어렵다. 우리의 실패는 파도가 덮치자 모두 놀라서 노를 젓지 않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닥에 앉아서 그냥 밧줄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를 젓지 않고 있으면 물의 회오리 때문에 보트가 빨려 들어가 그 자리에서 빙빙 돌다가 커다란 물살을 맞으면서 배가 중심을 잃고 뒤집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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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라는 이름의 15번 여울에서 보드를 타는 모습 ⓒ 김성호


잠베지강의 파도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첫 번째 시도에서부터 좋은 교훈을 얻는다. 파도와 회오리 물살에는 피하지 말고 맞서 싸워 앞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회오리는 노를 저어 벗어나야하는 것이지, 기다리면 배가 뒤집히는 일만 남는다. 래프팅은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여러 명이 함께 하는 공동의 레포츠여서 합심이 가장 중요하다. 한 두 사람만 노를 젓지 않아도 균형이 깨지면서 배가 뒤집어지기 때문이다. 위험도 같이 감수하고 스릴도 같이 느끼는 운동이다. 노을 저어야 할 때 한 사람이라도 젓지 않고 물살이 무서워 몸을 숨기면 배의 운명은 사람이 아니라 강물이 좌우한다.

모두 보트에 타자 첫 번째 계곡을 빠져나가는 도전이 다시 시작된다. 조교가 단단히 지시를 한다. 그렇게 하다가는 하루 종일 해도 첫 번째 계곡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아무리 파도가 몰아쳐도 몸을 낮추지 마라. 물살이 셀수록 더욱 노를 힘껏 저어라."

보트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3명씩 앞과 중간, 뒤에 골고루 나눠 앉게 한 뒤 조교는 맨 뒤의 뱃머리에 앉아 구령을 외친다. 다른 보트 3척은 모두 첫 번째 계곡을 무사히 통과해 건너편 계곡에서 숨을 고르며 두 번째 계곡을 향해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만 실패했다.

"앞으로!"

조교의 신호가 다시 떨어졌다. 커다란 파도 같은 물살이 우리를 다시 덮친다. 배가 휘청거린다. 그러나 몸을 수그리지 않고 그럴수록 힘껏 노를 저었다. 2~3초 동안 물을 흠뻑 뒤집어썼는데, 갑자기 보트가 조용해졌다. 물살이 뒤로 보이고, 보트는 계곡 건너편에 닿아 있었다. 무사히 통과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보트에서 "와"하는 환호의 소리도 들린다. 우리 보트의 6명도 손바닥을 마주치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좋아한다. 자신감에 충만한 표정들이다. 이번에는 파도 같은 물살에 겁내지 않고 그것에 맞서 노를 저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래프팅에서 보트의 운명은 순식간에 결정된다. 잠베지강의 파도는 겁을 먹고 피하는 사람은 사정없이 집어 삼켜 버리고, 맞서 싸우는 사람에게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린다. 조교의 얼굴도 흡족한 표정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난과 장애는 설령 넘다가 떨어지고 깨지더라도 결국 뛰어 넘어야할 극복의 대상이지, 피해갈 수는 없는 법이다.

아프리카 여행을 즐겼던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는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인생은 결코 좌절하지 않고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주인공인 노인어부 산티아고는 험한 파도에  맞서 싸워가는 강인한 인간을 상징한다. 84일 동안이나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고기잡이에 나서 마침내 85일째 거대한 물고기를 낚지만, 오는 도중 상어에게 모두 물어 뜯겨 앙상한 뼈만 남은 고기를 가져오게 된다.

노인은 결코 좌절하지 않고 소년에게 말한다. "그래, 그렇지만 우리에겐 신념이 있지, 그렇지 않니?", "그러나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죽을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거친 파도와 싸워가는 어부의 불굴의 의지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은 잠베지강의 래프팅에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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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베지강 래프팅 코스인 바토카 계곡 ⓒ 김성호


잠베지강 계곡에는 비단뱀의 바위그림이 하늘로 올라가고

출발지점 아래의 철길 다리에서는 벌써 번지점프를 하는 여행객들이 있다. 다리 중간에 발목을 묶은 줄을 메고 뛰어 내리다 강물에 닿기 전에 다시 튕겨 올라간다. 우리 보트가 지나는 잠베지 강을 향해 번지점프를 한다. 번지점프 하는 사람은 다리에서 떨어지면서 래프팅 하는 사람을 보는 즐거움이 있지만, 래프팅 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번지 점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기해한다.

다리 아래 세 번째 계곡의 건너편에도 여러 척의 보트가 모여 있다. 짐바브웨 쪽의 래프팅 출발 장소다. 우리는 짐바브웨에서 출발한 보트와 어울려 긴 행렬을 이루며 잠베지 강을 따라 내려갔다. 잠비아의 래프팅 보트와 짐바브웨의 래프팅 보트가 한데 어울리게 된다. 잠베지 강의 중간에서 두 나라 국경이 나뉘기 때문에 우리는 잠비아와 짐바브웨, 두 나라 강물을 넘나들면서 내려가는 셈이다. 국경을 초월하는 래프팅이다. 잠비아 쪽은 강 건너편에 모시 오아 투니아 국립공원이 있고, 짐바브웨 쪽은 빅토리아 폭포 국립공원이 있다.

잠베지 쪽에는 언덕 위에 작은 수력발전소도 보인다. 잠베지 강을 이용한 빅토리아 폭포 수력발전소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다시 잠베지 강으로 합쳐진다. 1938년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침묵의 웅덩이'라는 계곡에 있는 발전소인데, 잠비아의 리빙스턴과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폭포 지역에 전력을 공급한다. 잠베지강에는 빅토리아 폭포 수력발전소뿐만 아니라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의 카리바 댐과 모잠비크의 카보라 바싸 댐 등이 있어 주변 지역에 풍부한 전력을 제공하고 있다.

계곡의 바위에는 뱀이 몸을 흔들며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바위그림인 암벽화다. 조교는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꿈을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바위그림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아프리카인들이 신성시하는 비단뱀을 바위에 상징적으로 그린 것 같다.

영국의 종교학자인 지오프레이 파린더가 쓴 <아프리카 신화>에는 "뱀은 허물을 벗으면서도 계속해서 살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아프리카 예술이나 벽화, 옷감의 무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파린더는 "뱀은 신선하고 독이 없는 비단뱀이며 순환하는 생명과 영원불멸의 상징"이라며 "일부 전설에는 뱀이 남자와 여자에게 출산의 신비에 대해 가르치는 것으로 묘사된다"고 설명한다.

산족의 신화에서 인류는 비단뱀의 후손이고, 비단뱀이 물에 빠져 나갈 수 없게 되자 기린이 구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산족의 바위그림에는 비단뱀과 기린, 코끼리 등이 자주 등장한다. 코끼리의 긴 코는 종종 비단뱀을 은유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본 리빙스턴 박물관에도 박제된 비단뱀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영생과 다산의 상징이라고 한다. 바위그림은 애초 보츠와나와 나미비아에 살고 있는 부시맨이라 불리는 산(San)족들이 남긴 것인데,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오랜 선조 역시 산족과 호텐토트라 불리는 코이코이(Khoikhoi)족이었다. 산족과 코이코이족은 언어계통이 같기 때문에 합쳐서 코이산(Khoisan)족으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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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적 자살'이라는 이름의 9번 여울에서 보트에서 내려 걸어가는 모습 ⓒ 김성호


잠베지강으로 래프팅을 하러 몰려드는 이유는

래프팅을 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잠베지강으로 몰려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잠베지강에 흐르는 물의 양이 많을 뿐 아니라 108m 높이의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의 힘이 경사진 계곡을 따라 흐르면서 물살의 속도를 빠르게 한다. 높은 절벽에다 30~40m 폭의 좁은 계곡사이를 물이 흐르다보니 깊이도 래프팅하기에 적합하다. 물의 양과 빠르기, 깊이가 최적인데다 마치 병풍처럼 좌우로 펼쳐진 아름다운 절벽과 바위그림 등 풍경까지 곁들인다.

두 나라의 국경을 넘나든다는 느낌도 새롭다. 래프팅을 하는 잠베지 강을 따라 높고 낮은 바위들이 다양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검은 빛을 내는 둥근 바위들은 마치 쇼나 조각품을 보는 듯하다. 잠베지 강의 바위는 유난히 검고 숫돌같이 반짝반짝 윤기가 나는데, 물가의 둥근 바위는 부드러운 벼루 같고 산허리의 검은 바위 두개는 커다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나는 까마귀 같다. 절벽 위에 뾰족한 칼날 같이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날카로운 바위는 탄자니아 세렝게티 초원의 마사이족 전사인 젊은 모란이 창을 들고 서 있는 모습처럼 위압적이다.

잠베지 강의 래프팅은 너무 험해서 '상업적 자살행위'라는 9번째 여울에서 잠시 중단된다. 사람들은 모두 보트에서 내려 걸어서 가고, 보트만 물에 먼저 떠내려 보낸다. 너무 험해 '상업적 자살'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9번 여울은 큰 바위들이 튀어나오고 급물살로 악명을 떨치는 곳으로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 '상업적 자살'이라는 표현도 그냥 내려가면 사고로 래프팅 회사가 망할 정도로 위험한 장소여서 붙인 이름이다.

래프팅은 오전 10시부터 2시간 한 뒤 중간에 점심시간 겸 휴식으로 1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2시간 더 하는 프로그램으로 돼있다. 하루 래프팅 가격이 미국 돈 125달러인데, 오전만 하는 가격도 110달러여서 대부분 하루짜리를 끊는다.

10번째 여울을 지나 넓은 바위에서 래프팅 회사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 샌드위치와 햄버거, 과일 등으로 때우는 식사지만 힘든 레포츠 다음에 먹는 음식은 꿀맛이다. 짐바브웨 래프팅 보트를 탄 사람들은 바로 아래 건너편에서 점심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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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베지강 래프팅 코스인 바토카 계곡 ⓒ 잠비아 사파리 파르 엑셀런스회사


재미있는 잠베지강 계곡의 여울 이름

점심을 먹고 바위에 누우니 몸이 나른해지고 슬슬 졸음이 쏟아진다. 잠베지강 물살에 몸이 젖을 때는 오싹하게 추위가 느껴지더니, 바위에 올라와 누우니 아프리카의 햇살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따갑다. 조교들이 "다시 타라"고 소리친다. 오후 1시 래프팅은 다시 시작된다.

오후에는 18번째 여울 등에서 급경사의 스릴이 있으나 오전보다는 평탄했다. 조교는 보트에서 여울을 지날 때마다 각각의 이름과 특성을 설명해주는데, 12번째 여울은 세 번의 작은 소용돌이가 제멋대로 친다고 해서 '못 생긴 세 자매' 또는 '세 마리의 작은 돼지'라고 부른다. 다른 여울의 이름도 급류 모양을 재미있게 표현했지만, 세 번의 제멋대로 소용돌이를 '못 생긴 세 자매'라고 표현한 데는 배를 잡고 웃었다.

'망각'이라는 18번 여울에서 우리보다 앞서 가던 젊은 여자 여행객 6명이 탄 보트가 순식간에 급물살에 휩싸이더니 90도 각도로 기울며 다들 한꺼번에 물속으로 나가떨어진다. '심바'라고 부르는 조교가 탄 보트다. 마치 가을낙엽이 바람에 떨어지듯 보트에서 6명이 우수수 물속으로 내팽개쳐진다. 배가 뒤집혀 평평한 아래 면이 하늘을 쳐다보고 떠내려간다.

우리는 조교의 "엎드려"하는 지시에 따라 일제히 몸을 낮추고 보트의 밧줄을 꽉 잡고 무게중심을 아래로 두고 배의 균형을 잡는다. 물속의 터널을 통과하듯 18번 여울을 거뜬히 통과했다. 계곡이 좁아지면서 양쪽 벽에 부딪힌 물이 다시 파도가 되어 배를 덮칠 때는 노를 젓지 말고 밧줄을 꽉 잡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사나운 물살에는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는 쪽으로 순응해야 보트가 뒤집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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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라는 이름의 13번 여울에서 래프팅(왼쪽)과 카약을 즐기는 모습(오른쪽) ⓒ 김성호


'세탁기'라 불리는 15번 여울에서는 보드를 준비한 아일랜드 젊은이들이 보트에서 물속으로 뛰어내려 보드를 타고 내려간다. 보드를 잡고 급물살을 타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20번째 여울에서는 나도 강물에 텀벙 뛰어들어 헤엄을 치면서 물놀이를 즐겼다. 구명조끼를 입은 내 몸은 잠베지강의 흐름에 따라 강물 위의 낙엽처럼 떠내려갔다. 21번 여울에 도착하면서 전율을 느끼게 했던 잠베지강의 래프팅은 끝났다.

전체 코스 중에서 '걸리버 여행'이라는 7번째 여울과 '한밤중에 식사하는 사람'이라는 8번째 여울, '망각'이라는 18번 여울이 죽음의 코스다. 우리와 같이 출발했던 3대의 다른 보트도 결국 7번째와 8번째, 18번째에서 각각 한 번씩 배가 뒤집혀지고 말았다. 이들 코스는 모두 물살의 세기가 5급수(단계)로 전문가 수준의 험한 곳들이다. 처음 호된 경험을 한 뒤 팀원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협동심을 발휘했기에 우리가 탄 배는 21번 여울을 마치는 동안 한 번도 뒤집히지 않았다.

7번째 여울에서 배가 파도에 휩쓸려 크게 흔들리면서 네덜란드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배에서 떨어져 물에 빠졌을 뿐이다. 이 네덜란드인은 종일 코스를 끊었지만, 10번째 여울 마친 다음 점심을 먹은 뒤 결국 래프팅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오전만 래프팅 하기로 한 3명의 유럽 여성과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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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베지강 래프팅 10번 여울 아래 점심 먹는 장소 ⓒ 김성호


래프팅 조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팀워크가 필요한 래프팅에서는 급변하는 물살에 대응해 진두지휘하는 조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래프팅 조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자 한 명만 잘못해도 전체 화음이 깨지듯이, 래프팅에서도 한 명이라도 잘못하면 바로 보트가 균형을 잃고 물에 빠지기 때문이다.

우리 조교는 노련하고 카리스마도 있으면서 래프팅의 진수를 맛보게 해줬다. 계곡에서 아무리 물살이 급해도 피하기보다는 헤쳐 나가도록 하고, 물살이 덮쳐도 가능한 엎드리지 않고  노를 저어 뛰어 넘도록 하는 등 공격적인 래프팅을 즐기도록 했다.

잠베지 강에는 래프팅 뿐 아니라 혼자서 하는 카약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홀로 작은 보트를 저어 가면서 물살을 따라 내려오거나 거슬러 올라가는 카약은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아래쪽 몸에 꽉 낀 보트가 뒤집히면 카약에서 재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쉽지 않아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다.

방수 재킷을 입은 카약 조종자는 작은 보트의 가운데에 있는 동그란 구멍 속에 허리 아래를 파묻듯이 앉고 발을 앞으로 뻗은 자세로 노를 젓는다. 우리 보트 옆에서 카약을 즐기던 젊은 남자 유럽 여행객도 급물살에 몸의 균형을 잃고 보트가 뒤집어져 몸이 물속으로 들어가면서 빠졌다. 보트가 물 위에 거꾸로 떠 있는 상황에서 물속에 들어간 몸을 빼내 탈출하는데 애를 먹는 것을 보았다.

24km에 걸친 래프팅이 끝난 것은 오후 3시쯤. 4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래프팅에 심취했다. 물속에서 나오니 추위가 느껴진다. 래프팅 회사의 차량을 타고 돌아오는데, 맥주와 콜라 등 음료수를 공짜로 제공한다. "모시(Mosi)"라는 상표의 잠비아 맥주를 마시니 온 몸이 시원하다.

래프팅 회사 사무실로 돌아와 래프팅 하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은 장면을 모니터 화면을 통해 보여주는데, 생각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아찔한 광경들이 많다. 래프팅 장면을 담은 디브이디(DVD)는 꽤 비쌌지만, 미국 돈 40달러를 주고 기념으로 샀다. 잠베지강에서의 래프팅은 빅토리아 폭포를 방문하게 되면 정말 한 번 해볼 만한 체험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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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메고 빅토리아 폭포를 배경으로 찍은 글쓴이의 기념사진 ⓒ 김성호


짐바브웨 노점상에게 사진 전달하기

래프팅을 마친 다음날 아침 일찍 잠비아에서 보츠와나로 넘어가려던 애초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만난 한 여행객의 부탁으로 사진을 전달해주기 위해 현지인을 기다리다 오랜 시간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여행오기 전 아프리카 배낭여행 클럽에서 만난 한 여자 회원으로부터 자신이 6개월 전 빅토리아 폭포를 방문했을 때 현지인과 찍은 사진을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 회원은 잠비아 리빙스턴에 있는 숍라이트 슈퍼마켓 앞 길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짐바브웨 아주머니를 만나 며칠간 그의 집에 머물며 신세를 졌다고 한다. 짐바브웨 아주머니는 매일 국경을 넘어 잠비아 리빙스턴에서 장사를 하고 저녁 때면 짐바브웨로 다시 돌아가는 행상이다. 아주머니 집에서 같이 찍은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여행 중 주소를 적은 노트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보내 줄 수가 없었다며 나에게 직접 사진을 전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나는 아침 7시에 짐을 꾸리고 숙소에서 나와 근처 숍라이트로 찾아갔으나 노점상들이 아무도 없었다. 오전 9시나 되어야 물건을 팔기 위해 노점상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실제 9시가 되자 여기저기 노점상들이 몰려와 좌판을 깔고 과일과 잡화를 팔기 시작했으나 내가 찾는 짐바브웨 아주머니는 찾을 수가 없었다.

리빙스턴의 숍라이트 앞길에는 잠비아 노점상들과 짐바브웨 노점상들이 섞여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짐바브웨의 경제가 엉망이다 보니 짐바브웨 행상들이 매일 잠비아로 넘어와 장사를 하고 돌아간다. 내가 길가에 장사를 하고 있는 잠비아 상인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짐바브웨 아주머니를 찾는다고 하자 "모른다"고 고개를 흔든다. 내가 사진을 들고 사람을 찾는 것을 본 젊은 남자 3명이 다가오더니 "짐바브웨 여자들은 저 모서리에서 장사를 한다"며 숍라이트 맨 끝 쪽의 모서리를 가리킨다.

그들이 가리킨 쪽으로 가서 물어보자 "조금 있으면 올 것 같다"고 말해 1시간을 더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다시 물으니 "지금까지 오지 않았으면 오후에나 올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벌써 오전 10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보츠와나 국경을 거쳐 오카방고 델타(Delta.삼각주)를 보기 위해 마운(Maun)까지 가려면 서둘러도 급한 상황이었다.

마침 짐바브웨 젊은 여자 노점상이 내가 찾는 아주머니를 잘 안다고 해서 사진을 맡기고 떠나야 했다. 비록 직접 아주머니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내가 사진을 전달하려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현지인들은 "오, 코리아, 좋다"며 사진 속의 아주머니를 매우 부러워했다.

현지인들이 감격하는 것을 보니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았다. 마음속으로 사진을 가져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프리카 여행 중 배낭 속의 사진이 구겨지지 않을까 신경을 써야할 때는 솔직히 괜히 객기를 부린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 때도 있었다.
 
내가 여행에 상당한 차질을 감수하면서까지 서울에서부터 사진을 갖고 온 것은 아프리카인과의 작은 약속이라도 지키려는 젊은 여자 회원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고, 또한 '현지인이 멀리 한국으로부터 사진을 전달받으면 얼마나 감동할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구체적인 주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프리카 거리에서 사진만으로 노점상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짐바브웨 노점상에게 사진을 전달하려다 출발시간이 3시간 30분이나 늦어진 바람에 난 엄청 고생하게 된다. 히치하이킹의 실패와 여행 일정의 하루 지연, 예기치 않았던 아프리카 민박과 여자 도둑과의 동침, 그리고 지갑을 훔치려는 그녀와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나와의 밤샘 줄 달리기, 결국 고급 호텔 숙박비에 준하는 돈을 주고서야 도둑의 소굴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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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 쪽 빅토리아 폭포 입구에 있는 전통공예품 가게 ⓒ 김성호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잠비아 #잠베지강 #래프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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