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삼수, 문제는 개혁세력

범개혁세력의 연대 결성과 개혁세력 후보 단일화

등록 2007.11.08 12:01수정 2007.11.0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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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분데스리가의 팬들은 축구선수들이 경기 직후 자기 팀의 경기내용을 평가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승리한 팀의 선수들은 "오늘 우리는 act 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고 자주 말하였던 반면, 패배한 팀의 선수들은 자기 팀이 "오늘 단지 're'act 했을 뿐”이라는 데에서 패배의 원인을 자주 찾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들은 승리와 패배의 원인이 각각 "act"와 "react"에 있다고 믿는 듯하다. 잘 아시다시피, act는 적극적이며 주도적인 반면, react는 소극적이며 대응적이다. 행위자(actor)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반면, 반응자(reactor)는 행위자가 선점한 반대편에 서도록 강요받는다.

act 하지 않았던 개혁세력

이회창 전 총재의 삼수 출마로 시끄럽다. 그의 '구국의 결단'이 민주주의 원칙을 위배했다는 '도덕적' 비난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두겠다.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득세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법적ㆍ제도적ㆍ도덕적 제어장치가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하여, '구국의 결단'이 성공했던 기억이 우리 뇌리에 아직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한, 비중 있는 정치인이 '구국의 결단'으로 출마하는 것을 -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 외에는 - 제어할 수 없다. 그 밖에도 이회창 출마의 경우는 민주주의의 요체라 불리는 '여론'의 탄탄한 토대가 있지 않은가?

혹자는 이회창의 출마로 이번 대선이 보수 세력의 양강 구도로 벌어지게 될 것을 우려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소위 '범여권'의 당선가능성이 0%에서 약간 높아졌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이 우려와 전망은 모두 현실화될 수도 있고 전망에 그칠 수도 있다.

이회창이 출마하든 하지 않든, 문제는 (개혁세력의) 반응(react)이냐 주도(act)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동안 개혁세력들은 시대정신을 정치현실에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였다. 대체적으로 act가 없었으며, 언론 정치세력 조선·중앙·동아가 선점한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채 react에만 몰두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10여 석 가까운 전국구 의석의 '지갑'을 주운 민노당은 자신의 정치세력을 당장 확장할 욕심으로 여당 비판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의 민노당의 정치활동은 '이빨이 잇몸을 공격한' 격이었으며 민노당이 최근 염려하는 암울한 미래의 원인이 되었다. 민노당은 국가의 전체적 현실에 터하는 정치활동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act가 아니라 react만 하였던 것이다.

눈 뜨고 보아 주지 못할 정도로 딱한 처지에 있는 것은 대통합민주신당이다. '대통합'의 결과 10% 초반의 지지율을 보듬고 있는 것은, 결과론이라 항변할 수도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그러나 주권자로서 대통합민주신당의 지도부와 다수의 국회의원들에 대해 용서하기 힘든 것은 이들이 자신들의 총선을 위해 대선기획을 했다는 점이다.

지금 대통합민주신당에 대선을 위해 적극적이며 헌신적으로 활동(act)하고 있는 의원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정동영 후보의 최근의 활동 역시 미안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act가 아니다. 인구비율 4%의 고향에서 전체 투표수의 25%를 확보하여 승리했던 경선을 마친 후, '친구' 이해찬의 공약과 도움을 받으면 이길 수 있다며 겸연쩍게 웃는 사람을 누가 대통령으로 신뢰하겠는가? 정동영 후보는 국민들을 대표하는 actor로서 신뢰를 주고 있지 못하다.

그래도 가장 열심히 act 하였던 사람으로 나는 문국현을 꼽을 수밖에 없다. <오마이뉴스>의 도움을 받았든 말든, 어쨌든 10%대를 넘겼던 파워를 보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가 지지율이 오를 것이라 호언했던 창당 직후 지지율이 오히려 5%대 이하로 주저앉아 버린 지금 그의 action이 골로 연결될 가능성은 약해 보인다.

2007년 대한민국의 진보세력은 40%와 25%에 맞설 진정한 actor 없이 '난장이'들만 있는가? 각계의 진보세력은 지금까지는 단기적이며 좁은 시야에 매몰되어 분열되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발전의 방향을 결정하는 이 중차대한 시기에 대승적인 단결을 이루어낼 능력이 없는 것일까?

범개혁세력 연대 결성과 새로운 대통령 후보

나는 대통합민주신당, 민노당, 창조한국당 외에도 강운태, 김혁규, 김원웅 등의 모든 개혁세력이 일종의 '범개혁세력 연대'를 선언할 것을 촉구한다. 거명된 모든 단체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협의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 세력들은 다음의 두 가지에 - 동시에 - 투신하고 힘을 합해야 한다.

첫째는, 국민들을 위한 담론을 만들어 투표의지를 잃어버린 수많은 개혁적 시민들에게 오는 대선의 역사적 의미를 깨우쳐서 이들의 표를 결집해내야 한다. 마침 이회창 전 총재가 출마하였으니 네가티브는 이명박과 이회창에게 맡겨두고, 혁신적 정치개혁안을 포함한 사회개혁안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개헌, 중대선거구제 공약, 건설비리 및 하도급 비리 척결 등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중요한 현안들이 개혁대상으로 남아 있다.

중요한 것은 담론을 주도(act)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담론은 못 다 이룬 개혁과제에서 출발하여 국민에게 신뢰와 희망을 주는 미래담론이어야 할 것이다. '범개혁세력 연대'에 참여한 모든 세력들은 주인 된 국민의 종의 자세로 돌아가서, 가진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주인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의 종 된 여당 국회의원들은 적어도 차기 총선에서 자기 지역구 불출마 선언 정도는 하고서 덤벼야 할 것이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러한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 자기들만의 셈법과는 달리 -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의 저버림을 받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둘째로, 이와 동시에 빠른 시기에 기득권을 버리고 '계급장 뗀' - 토론이든, 여론조사든 -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간에, 범개혁세력 대표 후보를 다시 선출하여야 한다. 이 일의 첫 단추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가 꿰어야 한다. 그는 스스로도 대통합의 마증물이 되겠다고 공언하였던바, 140명의 국회의원의 지원 하에 12%의 지지율에 머무른다면 다시 한 번 마증물 역할을 자처하여야 마땅하다.

정동영 후보는 지금까지 진정한 의미의 act를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했으며, 그 결과 현재의 비루한 지경에 처해 있다. 나는 정동영 후보가 지난 총선 직전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사퇴했던 것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왜 또 다시 그가 기득권을 내려놓기를 권고하느냐고?

나는 그가 이번에 다시 한 번 양보를 통해 범개혁세력을 집결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후세의 사가들로부터 위인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정동영 후보는 스스로도 이번에는 가능성이 대단히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53년생인 정동영 후보는 비교적 젊은 편으로, 이번 대선의 후보직은 다음 대선을 위한 사석으로 활용하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합리적이며 지혜롭다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하나로 연대한 범개혁세력이 남은 기간 동안 34%의 지지율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동안 잃어버린 10년을 외쳐왔던 분들의 상실감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커서, (이들은)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현재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이명박-이회창의 막판 단일화까지 이루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범개혁세력은 적극적으로 51%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 51%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주요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의 주권의식을 이끌어 낸다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스스로 희생한 정치인들을 반드시 기억해서 더 좋은 자리를 맡겨주는 맘씨 좋은 사람들이다.

[덧글]

대선이 어떻게 끝나든, 우리 사회는 대한민국과 국민 전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프라인 일간지를 필요로 한다. 이 오프라인 일간지는 첫째, 전국 규모를 빠른 시일 내에 도달하여 조선ㆍ중앙ㆍ동아의 대척점에 서서 여론의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아주 구체적으로, 이 신문은 조선ㆍ중앙ㆍ동아의 왜곡보도를 (다음날이나 이틀 후) 추적ㆍ정정하는 데에 한 면을 통째로 할애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이 신문은 광고수입이 아니라 지대수입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창사ㆍ창간 비용부터 시민들의 모금으로 구성된 사회자본으로 충당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자본은 TAZ(Tageszeitung)의 모델을 따라, 손익분기점이 지난 후에는 원금이 유지되어야 하며 투자조합원들에게 매년 이익배당금을 돌려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이 시스템에 힘입어 10여 년 전 3000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했던 TAZ는 현재 9000여 명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다).

(TAZ는 질서를 좋아하는 독일인들의 취향에 따라 복잡한 정관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악한 본성의 발현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임기가 3년인 주주대표의 1/3을 해마다 새로 선출하는 방식을 통해, 기득권이 형성될 기회 자체를 봉쇄하고 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데일리서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데일리서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17대 대선 #이회창 출마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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