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이정도쯤이야"

하반신 마비된 딸 휠체어리프트 직접 제작한 김동환씨

등록 2007.11.09 15:58수정 2007.11.10 12:10
0
원고료로 응원
확대 ( 1 / 12 )
ⓒ 최용호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딸이 1층과 2층을 오가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자신이 가진 전기설비 기술을 활용, 집안에 휠체어리프트를 제작 설치한 이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경남 양산시 동면 금산리 ‘형제한우촌’ 대표 김동환씨가 그 주인공.

김 사장의 딸, 김지혜씨는 진주 경상대학교 생화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년 전 길을 걷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배꼽 밑이 완전히 마비되는 불행을 겪었다. 상처가 깊은 타박상을 입거나 과다한 출혈이 있었거나 골절상을 입었던 것도 아닌데 깨어나니 하반신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단다.

“당시엔 너무도 가혹하고 충격적인 일이었을 텐데 어찌된 일인지 제 딸은 전혀 실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사고 직후엔 걱정하고 슬퍼하는 부모를 되레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실제로 김지혜씨는 흔히들 장애인을 눈물의 대상으로 삼기 마련이지만 일반인들보다 더욱 밝고 건강한 모습을 지녔다. 중증 장애를 가진 그녀에게서 도무지 슬프거나 우울해 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활짝 웃으며 좌중을 기쁘게 만드는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다.

젊은 시절 익힌 전기 기술로 휠체어 리프트 설치

a

김동환씨가 직접 제작해 자택에 설치해 놓은 휠체어리프트. ⓒ 최용호


김동환 사장은 경남 산청 출신으로 발상이 기발한데다 입담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다. 그와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밌는 말솜씨를 자랑한다.

또한 김씨는 다채로운 경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고향에서 소를 직접 먹이는 축산농가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양산에서 소를 파는 사람이 됐다. 수년전 고성에선 횟집도 경영했으며 그 이전 젊은 시절에는 탁월한 전기 기술자였다.


그러던 그가 사랑하는 외동딸 지혜씨가 불행한 사고를 당하자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양산으로 내려와 지금의 ‘형제한우촌’을 개업했다.

“고향 산청처럼 아직 시골냄새가 묻어나는 양산의 첫인상이 좋았습니다. 금산교 옆에 쇠고기집을 할 만한 단독건물이 나와 바로 이곳이다 생각하고는 개업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식당은 1층이고 집은 2층이라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딸이 이동하기엔 곤란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일이 업거나 부축해서 오르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리 활발하고 밝은 딸이라 할지라도 자칫 집안에 고립되는 경우 침체될 우려도 있어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을 터.

이때 김 사장의 묻어둔 특기가 빛을 발하게 된다. 20대 시절 생업으로 삼던 전기 기술을 딸을 위해 끄집어낸 것이다.

“직접 전기재료를 사오고 회로를 짜고 설계해서 휠체어리프트를 만들었습니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안전시설만 보강하면 유용한 장애인용 리프트가 될 것 같아요.”

김 사장은 신기해하는 기자에게 리모컨으로 직접 시연해주고 리프트 제작기술 전반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도 했다. 김지혜씨는 휠체어를 탄 채로 리프트를 타고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버지의 놀라운 기술을 자랑하며 뿌듯해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에스컬레이터 복합형 휠체어리프트입니다. 처음엔 엘리베이터형을 생각했지만 사고의 우려가 많아 보다 안전한 에스컬레이터형으로 고안해 제작했습니다.”

이 획기적인 가정용 휠체어리프트를 제작하는데 순수 재료비만 300만 원 가량 들었단다. “다른 장애인 가정을 위해서도 제작해줄 생각이 있느냐” 물으니 “본업이 아니라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다.

“사업을 목적으로 시도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혀 생각해 본 일이 없지만 현재의 생업이 안정되고 나면 봉사하는 차원에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지금의 딸을 향한 지극한 사랑이 지금의 기발한 발상을 있게 했다는 얘기다.

밝은 모습 잃지 않은 외동딸 다시 복학

김지혜씨는 지난해 사고 때문에 휴학했던 경상대학교 생화학과에 복학, 모든 과정을 마치고 지난 7월에는 코스모스 졸업을 했다. 지금은 장애인 테니스 동아리에도 나가 운동도 하고 평일에는 식당에 내려와 적극적으로 일손을 돕고 있다.

식당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부인 박경숙씨도 두 부녀와 마찬가지로 그늘이 없고 밝은 사람이다. 세 식구가 힘든 식당일을 하면서도 피곤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신명나게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새삼 힘이 솟는다.

이들을 내내 지켜보며 "장애인을 측은지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오히려 편견으로 보이는 가정"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장애인 #휠체어리프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현상들... 서울도 예외 아니다
  2. 2 세계 정상 모인 평화회의, 그 시각 윤 대통령은 귀국길
  3. 3 고장난 우산 버리는 방법 아시나요?
  4. 4 돈 때문에 대치동 학원 강사 된 그녀, 뜻밖의 선택
  5. 5 신장식 "신성한 검찰 가족... 검찰이 김 여사 인권 침해하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