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다가오는데, 갈 곳도 없어..."

수천만원 보증금, 월세 감당하기도 힘들어...쫓겨나는 부개지구 세입자

등록 2007.11.09 17:52수정 2007.11.0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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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인천 부평구 부평6동 643번지와 부개1동 445번지 일원 8만3788.5㎡(2만5346평)의 부개지구가 오는 12월 부분적인 철거작업을 시작으로 본격 개발에 들어갈 전망이다. 
이 곳은 인천에서도 거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로 알려진 곳이다.

인천 부평구 부평6동 643번지와 부개1동 445번지 일원 8만3788.5㎡(2만5346평)의 부개지구가 오는 12월 부분적인 철거작업을 시작으로 본격 개발에 들어갈 전망이다. 이 곳은 인천에서도 거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로 알려진 곳이다. ⓒ 한만송


마스크와 빨간 조끼를 착용한 10여명이 유리가 깨졌지만 멀쩡한 빌라 옥상에 올라가 떡대가 좋은 남자들을 향해 "꺼져라"며 소리를 지른다.


이내 옥상에 함께 있던 4살배기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아빠 바지를 잡는다. 하지만 함께 옥상에 있던 3, 4명의 아주머니들은 눈으로 흘겨 볼 뿐 무의식적인 손놀림을 계속한다.

이들은 하나에 15원 하는 부품 암수 결합 부업에 빠져 있다. 또 한쪽에는 60, 70세 돼 보이는 노인들이 빨간 조끼를 입고 자신이 살았던 동네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

가스통, 벽돌, 나무 상자, 부업 도구, 브루스타  등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빌라 옥상에서 바라본 가을 하늘은 유난히도 파랗다. 이렇게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에서는 단풍놀이가 제격인데 하는 생각이 무섭게 나를 유혹한다. 이런 가을 하늘 아래에서도 철거민들은 이렇게 하루를 이겨내고 있다.

a  언제 철거를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부업에 몰두하고 있는 부개지부 세입자들

언제 철거를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부업에 몰두하고 있는 부개지부 세입자들 ⓒ 한만송

이들은 부평구 부개주거환경개선지구 세입자 30여명이다. 대한주택공사 인천지역본부에 이주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지난 4일부터 부개동 S빌라에서 옥상 투쟁에 돌입한 세입자들이다.

인천 부평구 부평6동 643번지와 부개1동 445번지 일원 8만3788.5㎡(2만5346평)의 부개지구가 오는 12월 부분적인 철거작업을 시작으로 본격 개발에 들어갈 전망이다.


9일 주공 인천본부에 따르면, 현재 부개지구는 토지보상 95%, 건물보상 90%가 이루어진 만큼 늦어도 12월부터는 비어 있는 집부터 철거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부개지구는 지난 2002년 1월 2일 주거개선환경사업지구로 지정, 2003년 9월 주공이 사업시행자로 선정됐다.


주공 인천본부는 2003년 12월 사업승인을 얻어 2005년 10월 28일 보상계획 공람공고를 실시하고, 그 이듬해 9월까지 토지와 건물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10월부터 보상협의에 들어갔다. 주공 인천본부는 내년 4월 공사에 착수해 오는 2010년 말까지 공동주택 1062호를 건설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는 빠듯한 계획으로 준공시점은 더 늦춰질 수 있다.

이곳은 부평의 마지막 남은 주거환경개선 사업지구로, 40년 전부터 정착한 낡은 가옥들이 많은 곳이다. 그렇다보니 월세 보증금 100, 200만원에 자신의 지친 몸을 맡기는 맞벌이 부부들과 나이든 노인들이 많이 정착해 살고 있다.

옥상 투쟁에 나선 세입자들은 주공 보상 기준일인 2001년 10월1일 이후에 개선지구로 이주했다는 이유로 보상 대상자에서 제외됐거나 주공이 짓는 임대주택에 들어갈 형편이 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옥상 투쟁에 돌입한 한기남 부개지구 주민대책위원장은 2남 1녀의 아버지다. 건축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이마저도 4일 옥상투쟁이 시작되면서 포기해야만 되는 처지가 됐다.

당장 이들이 갈 곳은 없다. 주공에서 보증금 4~5천만 원 하는 임대 아파트를 제안하기는 했지만, 가진 돈이라고는 고작 몇 백 만원이 전부인 이들에게는 보증금 4, 5천만 원은 턱없는 돈이다. 또한 30, 40만원하는 월세와 보증금까지 감수하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거기다 자녀들의 전학과 생계 터전에서 멀어지는 임대 아파트는 그들에게는 그림의 떡으로 보였다.

a  부개지구 세입자들이 4층 빌라 옥상에 올라서 강제 철거에 항의하고 있다.

부개지구 세입자들이 4층 빌라 옥상에 올라서 강제 철거에 항의하고 있다. ⓒ 한만송

15년째 인천 부개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김 아무개(63·여)씨는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입주권은 받을 수 있지만 이사를 간다 해도 한 달에 몇 십만원 하는 월세와 관리비를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며 "우리는 이곳에서 그냥 살아도 되는데 왜 주공이 우리가 살 곳을 빼앗는 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부품이라며 이름 모를 부품의 암수를 끼우고 있는 문아무개(40세)씨는 긴장이 감도는 이런 상황에서도 기계처럼 부품의 암수를 맞추고 있다.

문씨는 6명의 아이를 둔 주부다. 남편은 직장에 나갔지만, 남편이 퇴근하면 자신과 교대를 할 것이라고 말하며 문씨는 연신 손을 쉬지 않고 있다. "자식을 많이 나은 것이 죄지"하며 한탄한다.

문씨의 돈도 문제지만, 학교 다니는 자녀들을 모두 전학시켜야 한다는 것과 자식 6명을 거느린 대 식구를 받아줄 전셋집을 찾을 수 없다는 것아 가장 큰 고민이라고 털어 놓는다. 엄마가 부업 등으로 바쁜 오후에는 문씨의 아이들은 인근 교회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씨는 "가이주 단지를 조성해 주든지, 현실적인 이주비용을 지원해 주지 않으면 당장 길바닥에 앉아 있어야 할 처지"라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당장 겨울인데, 만약 철거라도 들어오면 우리는 얼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세입자 대표들과 인천 주공은 8일 부평구청에서 면담을 가졌다. 이날 세입자들의 요구에 대해 주공측은 구역내 가이주 단지 조성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주공의 매입임대와 국민임대 주택 등을 알선하겠다는 입장을 세입자들에게 밝혔다.
#부개지구 #주공 인천본부 #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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