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순이 VS 가수 인순이

등록 2007.11.18 10:29수정 2007.11.1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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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인순이가 사회적 자화상이 되었다. 혼혈인 문제가 불거지면서 차별을 딛고 선 인물로 화제의 중심에 서는가하면, 학력 위조 사태에서도 중학교 졸업 학력에도 성공한 가수로 꼽혔다. 지난 금요일 16일 생방송 KBS 2TV <뮤직뱅크>에서 인순이의 ‘거위의 꿈’ 리메이크 곡이 원더걸스의 ‘텔 미’(Tell Me)를 누르고 정상을 차지했다. 시청자 선호도 1위의 힘이 컸다. 최근 수목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가 한참 방영 중이다. 가수 인순이와 연관관계가 있다.

왜 제목이 <인순이는 예쁘다>일까. 제작진에 따르면 "´인순이는 예쁘다´라는 제목은 ´그 사람이 정말 예쁜데 주위에서는 왜 모를까´"라는 의미라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으니 박인순이 "인순이는 도대체 왜 아직까지 활동을 하나"라며 투덜거리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액면 그대로 보자면 극중 인순이는 가수 인순이와 구분하려 하지만, 제작진은 같은 코드에 놓고 있다. 그 코드는 사회적 편견에 고생하는 사람이다.

요컨대 가수 인순이가 혼혈인이라는 이유로 갖은 고생을 다한다면 박인순은 살인자라는 멍에 때문에 고생한다. 가수 인순이는 실력 있고, 박인순은 착한데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는다는 점을 든다면 공통 코드이다. ‘인순이는 예쁘다’에서 박인순(김현주)은 고등학교 때 친구 싸움을 말리던 중 실수로 친구를 죽게 만든다. 정의를 위해서 자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살인자가 된 것이다. 출소 이후에는 살인자라는 전과에 그녀를 기피하는 사회의 편견에 부딪쳐 고뇌한다. 살인자가 되고 싶어 된 것이 아니고 혼혈인도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기에 둘은 공통이다. ‘인순이는 예쁘다’의 모티브는 가수 인순이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제작진은 드라마의 시놉시스를 가수 인순이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정작 왜 박인순은 혼혈인이 아니라 살인자였을까. 이것이 한국 아니 방송드라마의 한계다. 예컨대 쏘냐(KBS1 <미우나 고우나>에 등장하는 러시아 여성)를 주인공으로 혼혈인이 등장했다면, 어떠했을까. 인순이를 모티브로 했다면 말이다. 더구나 하인즈 워드 열풍 이후에 혼혈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어오지 않았던가.

드라마에서 인순이는 혼혈인(적절한 단어는 아니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시청률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신 드라마는 살인자-전과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끄집어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드라마였다면 의미가 있었다.

긴 드라마를 짧게 요약하기는 힘들지만 대체로 어쩔 수 없이 살인자가 된 착한 주인공이 겪는 사회적 편견과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그 컨셉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객관적으로 보면 좋은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인순이는 예쁘다>는 마음으로 우러러 나오기보다는 머릿속으로 계산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산된 드라마를 몇 가지 요소로 보면 훌륭하지만, 진정성을 가지기보다는 식상함을 줄 수 있다.

이럴 때 드라마는 작위적이고 관념적이 된다. 관념은 직업군에서도 등장한다. 인순이가 살인자로 억척같이 살았을 직종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직업소개소의 편견만 클로즈업 된다. 수많은 직종 중에 도드라지는 것은 연극배우(어머니, 나영희 분)와 방송국 기자(유상우, 김민준 분)다. 이것은 창작자의 인식구조와 경험을 방증한다. 작품은 살인자가 된 소녀의 물리적 경험에 토대해 쓰여 진 것이 아니며, 살인자라는 딱지는 하나의 도구적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차라리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설정되었다면, 애써 예쁜 모습을 강조하고 심지어 주입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인순이는 예쁘다’는 말은 현실의 ‘인순이는 예쁘지 않다’는 말이다. 애써 다시금 각인 주입시킨다. 대중은 더 이상 인순이를 ‘예쁘지 않고, 예쁘다’로 판단하지 않는다. 더구나 드라마의 제목은 차라리 드라마의 내용상 ‘인순이는 착하다’라고 했어야 타당했다. 살인자는 악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예뻐도 살인자는 될 수 있다. 드라마 내용보다 실제의 인순이라는 기호만을 염두하니, 이런 부조화가 일어났다. 그것이 관념적인 특성의 출발이다.

드라마는 좋은 일을 하다가 살인자가 된 그녀와 그녀를 배려해주는 선생님 빼고 모든 사회구성원들은 편견에 찬 인물들로 그린다. 실존적 비극과 고통을 강조하기 가족도 거세했다. 오랜만에 만난 감동도 잠시, 어머니는 당연히 매몰찬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렇게 해야 인순이의 고통은 부각되고, 절절한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인순이 보다 박인순은 절망적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살인자의 딱지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작품에서 누명이나 오해가 아니라 확실한 살인범은 어떤 형태로든 대중의 감정이입을 받을 수 없다. 수많은 이들을 편견덩어리도 만들고 인순이의 눈물을 전면에서 내세워 감정이입을 인위적으로 이끌어내려 하기 때문에 작위적이다.

가수 인순이는 ‘혼혈인에 대한 차별 철폐’라는 사회적 인식을 부각하는 역할을 하는데 드라마 속 인순이는 ‘살인자에 대한 편견을 거두어라’는 말을 한다. 맞는 말이지만, 같은 동급이 될 수는 없다. 애초에 혼혈인이 잘잘못의 대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작 현실의 인순이와는 달리 박인순은 ‘꿈’이 없다. 심지어 ‘거위의 꿈’이라는 발상도 없는 듯싶다. 그 꿈이 없는 이유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가수 인순이는 그녀의 꿈이 자신의 열정을 뿜어낸다고 했다.

그녀는 지난 1978년 희자매로 데뷔했고, 1980년 솔로 앨범 ´인연´을 발표했으며, 83년 ‘밤이면 밤마다’로 인기 가수의 대열에 올라섰다. 한동안 소강상태에 있다가 <열린 음악회> 공연과 2004년 16집 ´친구여´를 조PD와 함께 부른 것이 크게 히트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고, 가수로써 꿈을 이루었다. 그녀가 사회 탓, 가족 탓만을 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착하다, 예쁘다라는 말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인순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살인자라는 딱지가 그 꿈을 가로막은 것이 아니다.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인순이가 나중에 고군분투한 덕에 얻게 되는 것은 이것일 것이다.

“그녀(인순이)는 예쁘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인순이는 예쁘다 #인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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