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그렇게 갑작스레 찾아왔다

[어느 40대의 배낭 여행기 ②] 출발

등록 2007.11.20 10:59수정 2007.11.2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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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내키면 훌쩍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많은 책에서 자유인들이 그렇게 길을 떠났다. 일상의 잡다한 끈을 눈 질끈 감고 잘라버린 후 훠이훠이 떠나는 모습은 얼마나 멋져 보였던가.


 누구나처럼 나 역시 그런 갑작스런 떠남을 꿈꿔봤지만 그럴 기회가 오지 않았다. 어쩌면 기회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기회를 만나지 못한 게 아니라 용기를 가지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었다. 따라서 어디 낯선 이국의 땅으로 훌쩍 떠나는 것은 나에겐 여전히 그런 길을 갈 수 있는 사람들의 글을 통해서 대리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어느 날 나에게 갑작스럽게 기회가 왔다. 아무런 대가 없이 일정 금액을 지원해 줄테니 어디든지 가도 좋다는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마다할 길 없는 고마움이었다. 어찌 보면 부담스럽기도해 거절할까 하는 생각해보았지만 내 마음 어디에선가 그런 바보같은 짓은 꿈도 꾸지 말라는 신호가 송전탑의 전등처럼 깜박였다. 그래, 그 부담을 상쇄할만한 멋진 여행으로 보답하자. 나는 지도를 펼쳤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겼다. 반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이 시기를 즈음하여 일거리가 생긴 것이다.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가뭄 끝에 홍수난다더니. 결국 경비보단 시간에 맞추어 일정을 짜야 했다. 그 시간이란 길어야 열흘 이내. 여행일정을 일주일로 잡았다. 상황에 따라 하루 이틀 정도의 여유를 갖기로 하고. 시간이나 경비를 고려하여 여행목적지를 동남아지역으로 정했다. 지원되는 경비는 백만 원. 항공료를 뺀 순수 현지 비용은 사십에서 오십만 원 내외.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다. 누구는 이 돈이면 동남아에서 두 달을 버틴다고도 하고, 누구는 이 돈이면 사흘도 못 간다고 한다. 사실 처음엔 남들 다가는 곳이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갈려고 했다. 그래야만 특별한 여행이 될 것 같고 특이한 경험을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Chiangda 동굴 사원 입구  Chiangda 동굴 사원 입구
Chiangda 동굴 사원 입구 Chiangda 동굴 사원 입구황인규
▲ Chiangda 동굴 사원 입구 Chiangda 동굴 사원 입구
ⓒ 황인규

 

 

 그러나 곧 생각을 바꿨다. 여행은 새롭고 신기한 것만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낯선 곳에서의 아침만이 삶의 비의(秘意)를 깨우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갔던 곳이라고 해서 나에게도 익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터넷을 뒤적이며 세상의 모든 곳을 넘나들다 나는 깨우친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간 길을 누구나 똑같이 느끼는 것은 아니다. 여행이 지식이라면 앞 선 사람의 지식을 전수 받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그 길을 밟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여행이 느낌이라면 내 앞의 흔적은 나와 무관하다. 인생이 지식이 아니듯 여행 또한 지식이 아니기에, 나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흔한 길이라도 나에겐 첫사랑처럼 울렁거리며 갈 수 있을 것이다.


 세익스피어를 읽지 않고 연극을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 방콕을 빼놓고 배낭여행을 거론할 순 없다. 동남아의 중심 도시이자 관광의 거점으로서,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아시아의 배낭은 방콕으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핵심에 카오산이 있다. 배낭족들은 일단 방콕의 카오산에 집결했다가 거기서 캄보디아로, 라오스로, 미얀마로, 말레이지아로 떠난다. 따라서 나도 일단 방콕의 카오산을 거점으로 삼기로 했다.


 

ⓒ 2007 OhmyNews
#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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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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