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바라보는 친구 함 들어가던 날, 그 치열한 공방전

용호상박, 그날 우리는 임자 만났다

등록 2007.11.20 14:19수정 2007.11.2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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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직까지 손 잡아본 것이 전부"라고 말하며 신부 금화씨의 손을 꼭잡고 있는 신랑 병원씨

"아직까지 손 잡아본 것이 전부"라고 말하며 신부 금화씨의 손을 꼭잡고 있는 신랑 병원씨 ⓒ 이화영


친구들과 모임이 있을 때마다 놀리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름: 최병원
나이: 38
직업: 공무원
신체:178cm(키) 77kg(몸무게)
몸매: 운동으로 다져짐.
외모: 깔끔한 호남형
성격: 뭐든 잘 챙기는 스타일이며 선배들과 친구를 위할 줄 아는 자(여기서 자는 놈자입니다)

남들이 볼 때 무엇 하나 빠질 것이 없어 보이는 녀석이지만 친구들은 술자리에 안주삼아 이 친구를 보면 씹어댔습니다. 장가를 못 간 건지 안 간 건지 좌우지간 엄마가 속옷을 챙겨주는 노총각이었던 겁니다.

"야, 너 고자냐? 아니면 일라그라를 밥 먹듯이 먹어야 되냐? 혹시 이 자식 남자를 사랑하는 거 아냐? 그럼 당당하게 커밍아웃 해."

이런 심한 말을 던져도 그저 가벼운 웃음으로 받아 넘기곤 했습니다.

진지하게 충고를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우리 큰애가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야. 너 지금 장가 가서 내년에 애 낳아도 우리 애 군대 갈 때 간신히 초등학교 학부형 된다. 언제 낳아서 언제 키울래? 은퇴하기 전에 학교라도 마쳐줘야 할 거 아냐."

친구가 이런 얘길 하면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여름까지만 해도 아무런 기미가 없어 보이다가 가을 들어 모임에도 소홀하고 부쩍 얼굴에 화색이 돈다 싶더니 결혼식 날 잡았다고 함을 팔아야 한다며 날짜를 일러주는 거였습니다. 찰떡 인연이었는지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던 겁니다.

a  함을 팔기전 친구들의 모습입니다. 어릴적 개구장이 표정이 그대로 살아나네요.

함을 팔기전 친구들의 모습입니다. 어릴적 개구장이 표정이 그대로 살아나네요. ⓒ 이화영



a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잘 들리냐" 목청 큰 친구 연호가 마이크 성능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잘 들리냐" 목청 큰 친구 연호가 마이크 성능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 이화영


[탐색전] 용호상박, 임자를 만나다

지난 17일 함을 지고 도착한 곳은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친구의 처가로부터 30여m 떨어진 곳에서 오후 7시부터 함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친구들이 먹은 나이만큼 함을 파는 것도 수준급이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친구들을 장가보내며 비법이 쌓인 거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친구의 처가 쪽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습니다. 1남 3녀 집안에서 딸 둘을 시집보내며 함을 사는 데 도통했던 겁니다. 이런 상대들이 충돌했으니 쉽게 끝날 상황이 아니었던 거죠.

친구들과 "함 사세요"를 외치며 우리가 왔음을 알렸지만 콧방귀도 안 뀌더군요.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우리가 제풀에 지쳐 있을 때 은근히 다가와 술과 몇 푼의 노자로 유혹하거나 신부 친구들의 미인계를 써서 함을 집안으로 들인다. 대충 이런 계산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린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비장의 무기, 성능이 완전 뛰어난 '이동식 스피커'를 꺼내든 겁니다. "함이 왔어요! 함이 만날 오는 함이 아니야! 말만 잘하면 공짜로 줍니다. 누구든 오세요"이랬더니 효과가 금방 나타나더군요. 굉장히 시끄러웠던 겁니다.

신부의 어린 조카 두 명이 뛰어오더니 "금방 술상 내온다고 조금만 조용히 하시래요" 이러는 거였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때는 이때다!'하고는 우린 소리를 더욱 높였습니다.

"함 사세요!"

얼마나 급하게 차려왔는지 남자 두 분이 상다리도 없는 쟁반에 몇 가지 안주와 술을 내왔습니다.

a  신부측에서 나온 친지들이 함진아비를 오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다리도 없는 쟁반에 음식을 먹으라고 들고 온 건 함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신부측에서 나온 친지들이 함진아비를 오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다리도 없는 쟁반에 음식을 먹으라고 들고 온 건 함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 이화영


"어허! 이러시면 귀한 함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다리도 없는 쟁반에 그것도 시커먼 남자들이 술대접을 한다? 이건 동방예의지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상을 물리세요."

우린 거드름을 있는 대로 피웠습니다. 그런 다음은 뻔하죠. 우리에겐 성능 좋은 스피커가 있었습니다.

"함 사세요."

또다시 아이들이 뛰어오더니 스피커가 놓인 옆집을 가리키며 "이곳에 어제 수술받은 중환자가 있대요. 아저씨들 조용히 하시라는데요" 이러는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친구가 답합니다.

"그럼 가서 전해라. 어제 수술받은 중환자는 병원 중환자실에 있어야지. 무슨 쌍꺼풀 수술했냐? 쌍꺼풀 수술 환자는 중환자가 아니라고 전해라. 그리고 밤길이 어두우니 우리가 갈 수 있도록 하얀 다리(돈 봉투)가 필요하고 속도 출출하다고 일러라."

연락병이 몇 차례 오가고 드디어 제대로 된 술상이 도착하더군요.

"막내딸 시집보낼 때 사위 친구들 먹이려고 특별히 6년근 삼으로 담근 인삼줍니다. 많이들 드세요."

속도 출출한데다 농익은 인삼주는 오감을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a  친구들이 잠시 한눈을 판사이 함진아비 중희씨가 끌려가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잠시 한눈을 판사이 함진아비 중희씨가 끌려가고 있습니다. ⓒ 이화영



[흥정] 중과부적, 질질질 끌려가다

몇 순배의 술잔이 돌자 추위도 가시고 마음이 훨씬 여유로워졌습니다. 흥겨운 풍악에 몸을 맡기고 마을 어르신들과 어울려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도 함께 불렀습니다. 준비해 온 폭죽을 쏘아대며 흥을 돋우기도 했습니다.

신나게 춤을 춘 할머니께서 "내가 공연 보여줬으니까 다섯 발자국만 가" 이러시더군요. "당연히 가야죠. 얘들아 가자" 이렇게 호기도 부렸습니다. 어느덧 시계바늘은 오후 9시를 넘기고 있었지만 우리가 이동한 거리는 10여m가 전부였습니다. 2시간 동안 10m 이동한 거죠.

그동안 우린 어느 정도 노자도 받고 아이들 노래 공연도 보았습니다. 또 집에서 고이 간직했을 법한 인삼주며 불로초로 담근 불로장생주를 갈취해 먹기도 했습니다.

신부 친구들은 멀찍이서 미모를 베일에 쌓아두고 어서 들어 올 것을 종용했습니다. 신부 친구들이 등장하자 몇몇 친구들이 동요하기 시작하네요. 함진 아비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도 잊고 신부 친구에게로 다가가 농을 던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 사이 갑자기 나타난 신랑의 처남과 동서들 그리고 동네사람들이 함진아비를 질질질 끌고가기 시작했습니다. 2시간만에 10m를 왔지만 불과 10여 초만에 10m를 끌려간 겁니다. 막으려 했지만 중과부적이었죠.

상황이 이렇게 되자 망연자실한 친구들 사이에서 책임공방이 벌어졌습니다.

"함진아비 지키라고 했더니 뭐한 거야? 너 혹시 첩자 아냐?"
"그게 아니라 신부친구들하고 친해 놓으면 좋잖아."

a  친구들의 진상에 몸이 달았는지 신랑 병원씨가 담넘어로 친구들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웃을짓고 있네요. "친구야! 부린대로 거둔다는 말 실감하겠지"

친구들의 진상에 몸이 달았는지 신랑 병원씨가 담넘어로 친구들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웃을짓고 있네요. "친구야! 부린대로 거둔다는 말 실감하겠지" ⓒ 이화영


이제 10여m를 남겨두고 신부 측 대표와 함진아비 측 대표가 막후협상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신부 측에 된통 당한 터라 흥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협상이 쉽지 않자 또다시 스피커가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여기가 염전이냐? 왕소금냄새 진동한다."
"정부는 함값의 최저 가이드라인을 정해 보장하라."
"이런 곳에 못 보낸다. 신랑을 자유의 품으로 돌려 달라."

신랑이 몸이 달았는지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운데 빨리 들어와 술 한잔하자. 아버님이 노자 다 준비하고 있으니 어서 들어와." 이러는 겁니다. "너나 많이 까 잡숫고 따뜻하데 배 깔고 계시지 왜 자꾸 전화하고 지랄이세요?" 친구들은 이렇게 응수하며 분을 삭이지 못했습니다.

그러길 2시간여 신랑이 결혼날짜를 잡은 것처럼 타결도 쉽게 되더군요. 우리 예상했던 것엔 모자랐지만 신부 친구의 노래공연을 관람하는 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집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함을 팔기 시작한 지 4시간만의 일이었죠.

함진아비가 박을 깨는 순간 저에게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박을 깨는 순간 플라스틱 박 파편이 사진을 촬영하려고 쭈그리고 앉았던 저의 이마로 날아들어 상처를 내고 피까지 흐르게 했던 겁니다. 이날 애를 먹인 것에 대한 신부 측의 응징과도 같은 느낌이어서 못내 씁쓸했습니다.

a  신부 친구들이 노래 공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신부 친구들이 노래 공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 이화영


[영접] 예의범절, "지금까지 손밖에 못 잡아 봤어"

문 안으로 들어서자 그동안 밀고 당기면서 쌓였던 감정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얼굴을 붉혔었던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통성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집안 어르신들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차려놓고 반갑게 우리 일행을 영접했죠.

신부 측 부모님께 공손히 절을 올리고 시장기를 채워갔습니다. 함이 들어오길 오랫동안 기다리던 착한 신부도 고생했다며 친구들에게 술잔을 돌렸습니다. 결혼을 보름 앞둔 예비 신랑신부에게 짓궂은 질문은 필수 코스였어요.

"제수씨. 진도가 어디까지 진행됐나요. 설마 2세를 불효자로 만드는 건 아니겠죠? 신혼여행 때 함께 가야 효도도 잘하고 집안과 나라를 일으키는 인재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건 아니죠?"

민망해 하는 신부를 대신해 신랑이 "우린 진짜 손밖에 안 잡아 봤다니까"라며 정색을 합니다. 그러자 친구들은 "손만 잡아도 애는 생기더라. 그런데 너의 예의범절이 신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거냐? 푸하하하." 나이만큼 대화 농도는 짙어갔고 밤도 깊어갔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친구의 행복을 비는 덕담과 행복하게 잘 사는 것으로 보답하겠다는 말을 듣고 이날을 마무리 했습니다.

"내 친구 병원아! 결혼 11년차 선배로서 충고 한마디 한다. 결혼생활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긴 여행을 하는 거야. 가다보면 비바람도 불고 눈보라도 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비치잖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그치. 또 한 가지. 힘들어 지쳐 쓰러지고 싶을 때 <오마이뉴스>에 오른 이 기사 보면서 추억을 떠올리는 거야. 생각만 해도 힘나지? 신부 소중하게 아껴주고 행복하게 사랑하며 잘 살아라."

a  친구 용택이에게 포섭된 동네 할머니께서 "함사세요"를 외치고 있습니다.

친구 용택이에게 포섭된 동네 할머니께서 "함사세요"를 외치고 있습니다. ⓒ 이화영



a  신부 아버지께서 함에 손을 넣고 뭔가를 꺼냈는데 치마저고리였습니다.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가 애써 웃음짓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신부 아버지께서 함에 손을 넣고 뭔가를 꺼냈는데 치마저고리였습니다.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가 애써 웃음짓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 이화영



a  50여년간 해로하고 계신 신랑 병원씨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입니다. "지들끼리 잘살면 그만이지. 행복하게 잘 살아라" 시집가는 막내딸에 대한 시원섭섭한 감정을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50여년간 해로하고 계신 신랑 병원씨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입니다. "지들끼리 잘살면 그만이지. 행복하게 잘 살아라" 시집가는 막내딸에 대한 시원섭섭한 감정을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 이화영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씩씩하고 성실한 신랑 최병원씨와 착하고 예의바른 신부 이금화씨에게 바칩니다.

이기사는 충청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씩씩하고 성실한 신랑 최병원씨와 착하고 예의바른 신부 이금화씨에게 바칩니다.

이기사는 충청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함 #친구 #최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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