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티시스트’와 ‘충신’ 사이에 선 김처선

[TV야 뭐하니?] <왕과 나>의 멜로 라인에 대한 우려

등록 2007.11.21 20:05수정 2007.11.2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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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SBS 대하사극 <왕과 나>의 김처선(오만석 분)과 윤소화(구혜선 분). ⓒ SBS


SBS 대하사극 <왕과 나>엔 웬만한 드라마의 요소가 다 들어 있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 권력을 둘러싼 공방, 인간적인 의리와 갈등, 게다가 출생의 비밀까지. <왕과 나>가 휴먼드라마와 멜로드라마, 정치드라마를 모두 표방하고 있는 이유다.

여러 요소는 ‘내시’라는 특수한 집단을 통해 극대화되는데, 그 중심엔 김처선(오만석 분)이라는 기구한 운명의 내시가 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고자 스스로 거세를 한 ‘로맨티시스트’이자, 권력 싸움으로 부모를 잃은 ‘피해자’이며, 임금에게 의리를 지키는 ‘충신’으로 그려진다.

반면, 김처선과 함께 극 전반을 이끌어가는 내시부의 수장 조치겸(전광렬 분)은 김처선의 사랑을 이용해 내시로 만든 장본인이자, 부모를 잃게 한 ‘가해자’이며, 권력을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치 내시’. 이처럼 김처선과 조치겸은 운명적으로 물과 기름 같은 존재지만 부자의 연을 맺은 사이기도 하다.

이 중 지금까지 <왕과 나>의 인기 비결은 단연 김처선의 애절한 ‘사랑’과 조치겸의 ‘권력’ 공방에 있다. 실제 두 이야기는 마치 이륜차의 바퀴처럼 서로 균형을 유지하며 때론 정치드라마로, 때론 멜로드라마로 재미를 줬다.

50부작으로 기획된 <왕과 나>. 그런데 중반으로 접어들며 이런 ‘쌍끌이’가 위태로워 보인다. 한쪽을 받치던 주인공 김처선의 멜로 라인이 약해진 탓이다. 이는 줄곧 지켜온 월·화극의 왕좌를 MBC 특별기획드라마 <이산>에 내주고만 이유와도 무관치 않은 듯싶다.

김처선은 윤소화를 ‘짝사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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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SBS 대하사극 <왕과 나>의 김처선(주민수 분)과 윤소화(박보영 분) 어린시절 ⓒ SBS

본디 <왕과 나>의 뼈대를 이룬 멜로 라인은 김처선과 윤소화(구혜선 분), 성종(고주원 분)의 삼각관계. 그러나 윤소화와 성종의 합궁을 정점으로 김처선과 윤소화의 사랑은 이내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책임은 먼저 윤소화에게 돌아간다. 자신을 챙겨주는 김처선에게 ‘알듯 모를 듯’ 이성의 감정을 느낀 그녀. 궐에 들어오기 전, 윤소화는 김처선을 일컬어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의 감정은 궐에 들어온 뒤 사경을 헤매며 꾸는 꿈에서까지만 해도 절절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임금님을 만나 뵙게 되었는데 어찌 이리 마음이 답답하고 겁이 나는지 모르겠구나. 네가 옆에 있다면 크게 의지가 되었을 것을.” 후궁으로 간택 받은 윤소화는 그토록 연모했던 성종이건만 뜻밖에도 처음엔 합궁을 거부했다. 으레 김처선에 대한 마음 때문이리라 예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인이 있는 것 아니냐’는 성종의 의심을 사면서 한층 공고해졌던 예상은, ‘임금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윤소화의 똑 부러진 해명으로 금세 무색해지고 말았다.
 
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윤소화의 마음은 내관이 된 김처선과 재회한 자리에서도 도드라졌다. 상상해보자. 사랑하는, 아니 조금은 호감을 느끼는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내시’가 돼 나타났다면. 아무리 그들이 “플라토닉러브”라 하더라도 그녀처럼 무덤덤할 순 없으리라. 그녀는 그저 “네가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물론 이후 윤소화는 죽을 고비를 맞은 김처선을 찾아 눈물로 회생을 바라며 애틋한 감정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회. 그동안은 그런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이따금 위기에 처한 김처선을 ‘마땅히’ 왕에게 구명할 뿐. 안 그래도 모호했던 그녀의 감정이 더욱 분간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전반적으로 김처선에 대한 윤소화의 마음은 기획 당시보다 ‘절제’된 듯하다. <왕과 나> 홈페이지에 실린 ‘등장인물’ 소개가 드라마의 내용과 미미하게나마 차이를 보이는 게 이를 방증한다. 이를테면, 그녀가 합궁을 거부한 이유를 김처선에 대한 ‘알 수 없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나와 있는 것이다.

시청자가 느끼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설명이다. 이 역시 '왕의 여자'라는 그녀의 본분과 '충신'이라는 김처선의 본분을 고려하면 그녀의 사랑까지 뚜렷이 표현하는 데 제약이 뒤따랐기 때문일 터.

‘충신 김처선’과 ‘로맨티시스트 김처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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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SBS 대하사극 <왕과 나> 홈페이지의 등장인물 소개 중 윤소화(구혜선 분). ⓒ SBS


그러니 적어도 윤소화가 후궁이 된 뒤론 멜로 라인은 온전히 김처선의 몫이 됐다. 짝사랑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진 그의 어깨가 더 무거워진 셈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김처선의 사랑 역시 엿보기가 쉽지 않았다. 극은 그가 정식 내관이 되면서부터 또 다른 모습인 ‘충신 김처선’을 위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에는 성종의 진의를 이해하고 분열에 빠진 내시부를 구하고자 앞장서는 충신의 모습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김처선은 의도한 대로 먼발치서 윤소화를 바라보며 지켜주고 있다. 다만, 이때 간혹 이런 ‘로맨티시스트 김처선’과 ‘충신 김처선’의 정체성이 혼동되는 때도 있다.

‘늘 그랬듯’ 김처선은 위기에 처한 윤소화를 구하고자 양아버지인 조치겸에게 도움을 청하곤 한다. 내관이 되기 전과 달리 “내시의 본분”을 운운하면서 말이다. ‘로맨티시스트 김처선’다운 행동과 ‘충신 김처선’다운 말이 겹쳐 보이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중전 책봉이 그랬다. 조치겸은 성종이 친정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가문의 윤씨를 추천했지만, 김처선은 임금의 뜻을 받드는 게 “내시의 본분”이라며 윤소화를 책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충신 김처선’의 철학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윤소화를 위한 ‘로맨티시스트 김처선’의 마음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앞으론 ‘로맨티시스트 김처선’과 ‘충신 김처선’ 사이의 충돌이 전면에 등장할 것이다. 결국 그는 성종으로부터 사약을 받는 윤소화(폐비윤씨)를 지켜봐야만 하는 운명. 아마도 윤소화가 폐비를 당하는 과정에서부터 그녀의 아들로 자신이 충성으로 모신 연산군에게 죽임을 당할 때까지, 사랑과 충성 사이 갈등하는 김처선의 모습이 세밀하게 그릴 것으로 보인다.

플라토닉러브는 역시 어려운 것인가. 비극적 사랑의 종착역을 앞뒀기에 김처선과 윤소화의 멜로 라인은 어쩐지 더 아쉽다. 그래도 '어릴 적 동무'와는 구분돼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덕원 기자는 '티뷰기자단'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덕원 기자는 '티뷰기자단'입니다.
#왕과 나 #멜로 라인 #김처선 #로맨티시스트 #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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