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 책시렁가운데 책시렁에는 좀더 사람들 손에 잘 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책을 마련해 놓으십니다. 여기에서 왼쪽은 시와 종교 책, 오른쪽은 수험서와 교육과 과학 책들을 마련해 놓습니다.
최종규
열매는 꼭 달아야 하지 않습니다. 열매는 꼭 커야 하지 않습니다. 열매는 꼭 맛나야 하지 않습니다. 열매는 꼭 눈에 뜨여야 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열매는 열매맛만 잘 간직하면 됩니다. 열매는 자기 깜냥과 주제에 알맞는 크기이면 넉넉합니다. 열매는 열매로 가꾼 사람한테 맛이 있으면 됩니다. 열매는 누구보다도 자기 스스로 알아보기 마련이며, 자기 아닌 사람은 언젠가 알아보기 마련입니다. 기다리면 되고, 가만히 자기를 가꾸고 있으면 된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들 한삶에서 한길을 걸어가라고 말하는 이웃이 있을까요. 이런 스승이, 부모가, 길동무가 있을까요. 돈을 벌라는 사람은 많아도, 제 뜻을 펼치며 꿈을 이루라는 사람은 드물거나 없습니다. 이름을 날리라고 북돋우는 사람은 많아도, 제 꿈을 가꾸며 제 삶을 보듬으라고 이끌어 주는 사람은 드물거나 없습니다. 무리를 지어서 힘을 키우라는 사람은 많아도, 남들이 무어라 해도 꿋꿋하게 제 목소리를 보듬으며 추스르라는 사람은 드물거나 없습니다.
어쩌면 ‘신유항’이라는 이름 석 자는 오래지 않아 잊힐 수 있습니다. ‘조복성’이라는 이름이 그러했듯이, ‘김수일’이라는 이름이 그러하고 있듯이. 그러나 제 책꽂이에는, 또 제 마음 한켠에는 조복성 님과 김수일 님, 또 신유항 님이 고마웁게 보금자리를 틀고 있습니다.
<3> 김용준<과학인의 역사의식>(김용준, 해동문화사, 1986)이라는 책도 보입니다. 과학자이면서 철학과 종교를 넘나드는 책들을 꾸준히 옮겨내신 김용준 님 책입니다. 예전에 이런 책을 다 내셨구나 놀라면서 집어듭니다.
.. 해방된 지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발전을 거듭해 온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서 선진조국이라는 기치 아래 첨단기술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선진국 쳐 놓고 자기 나라 영재들의 박사과정 교육을 외국에 의탁하고 있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한여름의 조용한 대학캠퍼스의 구석구석에는 자기들의 옹색한 용돈으로 라면을 끓여먹어 가면서, 세계의 인류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땀흘려 가며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영재도 아니고 외국유학도 못 간 대학원생들이 그득히 차 있다. 그러나 이들이 흘리는 땀, 이들이 쌓아올린, 그야말로 궁색한 장치에 의한 실험이 그래도 훗날 이 나라의 고유한 첨단기술을 창출하는 값진 거름이 되는 것이 아닐까. 소위 선진국에 유학 가서 금의환양한 젊은 외국 박사님들을, 부자집 울타리 안에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을 꺾어다 나의 초라한 초가집에 꽂아 놓은 꽃꽂이에 비유한다면 이는 너무 지나친 말이 될까? .. <115쪽>인터넷으로 찾아보기를 해 보니, <사람의 과학>(1994), <갈릴레오의 고민>(1995),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2005), <내가 본 함석헌>(2006) 같은 책을 펴냈고, 지난해에는 <인간을 묻는다>라는 책을 우리 말로 옮겨내셨군요. 꾸준하게 걸어온 한길입니다. 철학과 종교를 잊지 않으며 과학자 길을 걷는데, 문학(책)으로 자기 생각과 삶을 담아내어 펼쳐 오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