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지팡이

[S다이어리] 제9화

등록 2007.11.22 13:22수정 2007.11.22 13:2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S다이어리'는 시각장애인기관에서 일하는 S(김수현)의 이야기다. 시각장애인 동료와 함께 일하고 시각장애인을 취재하면서 겪게 되는 토막 이야기들을 통해 S가 시각장애인에 대해 이해해 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S다이어리가 시각장애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기자 주>

 

<S다이어리> 제9화 흰지팡이에 대하여


10월 15일은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WBU)가 제정한 흰지팡이의 날이다. 흰지팡이의 날을 맞아 시각장애인 복지대회를 개최한다는 보도자료를 보며 S는 입사 초기를 떠올렸다. S가 시각장애인들의 지팡이의 색깔이 흰색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시각장애인 도서관 입사 후 한참이 지나서였다.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는 노인들의 나무지팡이나 등산용 지팡이와 달리 흰색으로 규정돼 있다. 지팡이는 길을 갈 때 시각장애인이 장애물을 피해갈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인 동시에 시각장애인임을 표현하는 방편인 것이다.


시각장애인 동료 J의 말에 따르면, 흰지팡이를 이용한 보행교육은 중학교 때 시작된단다. 흰지팡이 규격은 소/중/대로 나뉘어 있는데, 아동용 지팡이는 따로 제작되지 않기 때문에 중학생 정도 돼야 지팡이를 사용할 만하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주 2시간 정도 보행교육을 하는데, 약시와 시각장애인이 한 조를 이뤄서 연습을 한다. 시각장애인이 흰지팡이로 길을 가면, 약시자가 뒤따라가면서 정말 위험할 때만 도와주는 것이다. 경로를 얘기해주고 어느 팀이 빨리 찾아오나 하는 경기를 하기도 하고, 좀 익숙해지면 등산을 가기도 한다.

 

J가 물었다.
“흰지팡이가 모든 장애물을 피해줄 수는 없다는 거 알아요?”
“지팡이로 감지할 수 없는 장애물이 뭐가 있죠?”


“보통 시각장애인들이 지팡이를 좌우로 흔들면서 앞부분의 장애물을 찾잖아요. 근데 그 박자가 잘 안 맞을 경우에는 지팡이는 차량진입방지말뚝에 닿지 않았는데, 다리는 거기에 부딪힐 수도 있어요. 그리고 특히 키 높은 덤프트럭이 서 있을 땐 분명 아래 부분엔 아무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얼굴이나 가슴이 트럭 몸체에 맞닥뜨려지기도 하고요.”
“아~! 위험하겠어요.”


“제가 아는 사람한테 들은 얘긴데요. 흰지팡이 보행을 하면서 지하도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닥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더래요. 바닥에 시계를 깔아놓고 팔던 노점이었는데, 바닥에 얇게 깔린 걸 시각장애인이 알 턱이 있나요. 장사하던 사람도 불법영업 중이었으니 안 보이는 사람한테 배상하라 할 수도 없고.”


그리고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도는 우스개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시각장애인 두 명이 이야기를 나누며 나란히 길을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한 명이 사라진 거예요. 남은 한 명이 야, 너 어디 갔어? 하고 친구를 찾았죠. 그랬더니 저 아래에서 나, 여기 있어. 라고 대답했대요. 열려 있던 맨홀에 빠진 거예요. 하하하.”
“아…!”


흰지팡이가 계단이나 벽 같은 장애물을 인지하는 데는 요긴하지만, 움푹 파인 웅덩이 같은 경우엔 감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J의 설명이다. 길에 불쑥 솟아있는 차량방지말뚝, 인도를 침범하여 서 있는 차들, 열려있는 맨홀 등 시각장애인들의 독립보행을 방해하는 것들이 주변에 참 많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보너스로 한 가지 더! 시각장애인들끼리 길에서 만날 때는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어떻게 하는데요?”
“저 편에서 지팡이 소리가 들리잖아요. 그럼 먼저 도착한 사람이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탁탁 하고 쳐요. 그럼 상대편에서 그 소리를 듣고 찾아오는 거죠.”
“흰지팡이의 용도가 하나 더 있었네요. 하하.”

덧붙이는 글 | 한국점자도서관 소식지 월간 <빛이 머문 자리>에도 연재 중인 글입니다. 
김수현 기자는 한국점자도서관 기획홍보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07.11.22 13:22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한국점자도서관 소식지 월간 <빛이 머문 자리>에도 연재 중인 글입니다. 
김수현 기자는 한국점자도서관 기획홍보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 #흰지팡이 #보행 #장애물 #한국점자도서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게 뭔 일이래유"... 온 동네 주민들 깜짝 놀란 이유
  2. 2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3. 3 팔봉산 안전데크에 텐트 친 관광객... "제발 이러지 말자"
  4. 4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5. 5 윤석열 정부 따라가려는 민주당... 왜 이러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