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료는 받으셨어요?

<그게 정말 다 내 탓(?)18>

등록 2007.11.23 09:02수정 2007.11.2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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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인 일자리를 찾아서 갈 필요가 있지, 공무원이 되겠다는 소극적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기사를 보니 이명박 후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왜 다들 그런 소극적 생각에 매달릴까?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취업난은 해가 가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도전적인 일자리를 찾아가지 않는 젊은이 탓이라는 어른들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더 나은 기회를 찾고자 해외로 나온 한 젊은이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취업난이라고 하지만 어떻게든 삶에 도전하려는 젊은이의 모습을 통해 사회가 반성하고 도와주어야 할 부분은 없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그래서 1부 <그래 다 내 탓이다, 하지만>에 이어 2부 <정말 다 내 탓?>를 연재하고자 한다. 부디 나무를 통해 숲을 그릴 수 있는 작업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기자 주>

 

감자 여자 영어 선생이 도망치듯 학원을 떠나자 남아 있는 선생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집단에 있든 사람이 불만이라는 게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전부터 선생들이 갖고 있던 바로 그 불만들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비자, 항공권, 수업 시간 등 각 선생마다 갖고 있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쉽게 학원을 향해 불만 사항을 얘기하지는 못했다. 바로 돈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 있던 선생들 중 무려 3명이 학원과 결국은 돈 문제로 좋지 않은 결말을 맺은 것을 대부분 보았거나 알고 있기에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었다. 다들 잘못 트집 잡히면 억울하게 돈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만은 자꾸만 쌓이는데 대놓고 말할 수 없으니 결국은 선생들끼리 자주 모여서 속마음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면서 자주 선생이 바뀌면서 그리 친하지 않았던 선생들이 점점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학원 입장에서는 선생들이 그렇게 자주 모여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것이 곱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선생들은 학원에 본래부터 갖고 있던 불만이 있었고, 학원은 선생들이 자주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곱게 보지 못하다 보니 사이가 점점 냉랭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난데없이 예능 과목을 가르치던 수박 여자 선생이 학원을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수박 여자 선생은 학원에 온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대체 어찌된 일인지 무척 궁금했다.

 

“어, 수박 선생님 왜 갑자기 그만두세요?”
“학원에서 그만두라네요.”
“예? 갑자기 왜...”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생각한 만큼의 수익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폐강하는 것이 분명했다. 비록 수박 선생을 불러 온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경영을 하다 보면 수익성이 나빠 사업을 접을 수도 있는 것이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항공료는 받으셨어요?”

 

그러나 내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항공료에 관한 것이었다. 어쨌든 이번에는 학원이 먼저 계약 위반을 한 것이니 위약금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돌아갈 항공권은 제공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주신답니다.”
“예? 계약은 학원이 먼저 위반했잖아요! 선생들한테는 계약 어겼다고 위약금 내놓으라 그러고 자기들이 위반하면 아무것도 없고... 우와 진짜 웃기네.”

 

수박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더 화가 났다. 원장이나 실장이 하는 얘기를 듣지 못해 속단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수박 선생에게 그 이야기까지 들으면서 전부터 갖고 있던 학원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점차 분노의 감정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는 반드시 항공권은 받고 갈 것입니다. 만약에 주지 않으면 저도 나름대로의 폭탄을 던지고 갈 거예요.”
“폭탄이요?”

 

수박 선생은 학원이 자신에게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폭탄 선언을 하고 가겠다고 말했다.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왜요? 학원이 뭐 잘못한 일이라도 있었어요?”
“그 예전에 미술로 대학교 들어가려고 온 애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원장님이 그 애를 받으면서 저한테 했던 말이 ‘쟤는 어차피 대학교 못 들어갈 애니까 대충 가르쳐주고 돈만 받으면 된다’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폭탄선언이라고 해서 대단히 놀랄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나,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분명 학생을 가르치는 대상이 아닌 ‘돈’으로 바라본 행위는 잘못된 것이었으나, 부끄럽게도 이는 비단 내가 있던 학원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교육업체들 중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수박 선생이 그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그 이야기를 한다면 학원 입장에서도 꽤 곤란해질 것임은 분명했다.

 

“그래서 살짝 원장님한테 그 얘기를 해봤어요. 그랬더니 원장님이 ‘수박 선생이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왜 상관하는데요?’ 이러시면서 예민한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어쨌든 항공권을 주지 않으면 얘기하고 갈 생각이에요.”

 

당시에는 수박 선생에 대한 학원 태도가 너무 무성의하다고 생각하여 학원만을 욕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느 한 쪽만을 탓할 일은 분명 아니었다. 선생들이 미리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했다고 위약금을 운운했던 학원이 선생을 부른 지 세 달이 채 되기도 전에 쫓아 보낼 때는 도리어 항공권조차 지급하지 못했다고 한 것은 분명

좋게 봐주기는 힘든 행동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항공권을 주지 않으면 학생이나 학부형에게 학원이 ‘제대로 가르칠 것 없다’고 했다는 말을 전하겠다는 수박 선생의 태도는 과연 옳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선생들이 학원이 이렇게 선생들을 대우하는데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느냐며 가졌던 불만이 전혀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학원이나 선생들이나 그 중간에 서 있는 ‘학생’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나 배려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연이어 터진 사건으로 선생들이나 학원 모두 정말 신경 써야 할 ‘학생’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위에 나온 인명 및 지명은 모두 가명입니다.

2007.11.23 09:02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위에 나온 인명 및 지명은 모두 가명입니다.
#청년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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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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