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물렀거라, '별순검' 납신다!

미드의 성공적인 현지화,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등록 2007.11.23 11:27수정 2007.11.2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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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과학수사대 <별순검> 대원들. ⓒ MBC드라마넷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태왕사신기>에 대한 열기가 뜨겁고, 뉴스에서는 BBK 김경준의 이름이 도배되는가 하면, 영화에서는 <색, 계>의 무삭제판이 극장가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이런 때에 나는 케이블 방송의 <별순검>에 푹 빠져 있다. 처음에는 미국드라마 <CSI>를 모방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에서 만들었다고 해서 이 드라마를 무시했었는데, 차근차근 살펴보니 그게 다가 아니다. <별순검>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별순검>이 별다른 이유

경제용어 중에 '현지화(localization)'라는 용어가 있다. 아마 '세계화'를 배웠다는 사람은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말이다. 쉽게 말해 외국 것을 그대로 들여오는 게 아니라 우리 입맛에 맞게 고쳐서 들여오는 거다. 많이 쓰이는 컴퓨터와 휴대폰이 그 선두주자가 아니던가?

미국드라마(미드), 일본드라마(일드), 심지어 대만드라마까지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이 때, 언젠가는 미드나 일드를 모방하는 드라마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드라마에도 '현지화'라는 용어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리고 한국드라마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이러한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케이블이 자체 제작을 시작하면서 이런 기회는 가까워지는 듯 보였다.


사실 지상파에서 외국 드라마를 따라하는 모방작이 나올 확률은 희박했다.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을 심화시키는 지상파 드라마가 앞장서서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상파 드라마들은 시청률이라는 거대한 힘을 뿌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케이블 방송은 그동안 많은 드라마를 선보였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인해- 너무 선정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심오하거나, 자극적이거나, 재미없거나 등- 그동안 쓴 잔을 연거푸 마셔대야 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별순검>에 이르렀다.


현재 MBC드라마넷과 MBC에브리1에서 제작 방영하고 있는 <별순검>은 4%의 시청률을 보이며 대박 행진을 하고 있다. 시청률 4%가 지상파 방송에서는 애국가의 시청률이고 최고의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평가받는 <무한도전>에게는 최저 시청률이지만, 케이블 방송계에서는 지상파 드라마의 60%에 맞먹는 최고 시청률이다.

<별순검>의 이러한 성공이 단지 미드 CSI의 흥행공식을 따라했기 때문일까? 아니라고 본다.

물론 <별순검>은 상당부분 CSI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별순검>에 대해 시청자들이 애정을 보내는 것은 이 드라마가 외국 드라마의 모방을 넘어 한국화, 토착화시키는 일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과학수사대와 미드의 과학수사대는 어떤 면이 비슷하고 또 어떤 면이 다를까? <별순검>을 보다보면 가끔 겹쳐 보이는, CSI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CSI 라스베가스>와 비교하면서 조목조목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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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과학수사대 대원들. ⓒ CBS


[비교①] 포스가 품어져 나오는 리더, 강승조와 길 그리섬

<별순검>의 리더 총순역은 강승조(류승룡)다. 그는 누구보다도 박식하고 부지런하며 일벌레다. 또한, 매우 인간적이어서 사건보다도 사람의 관계를 푸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범인을 잡는 데 있어서도 절대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증거라는 것이 범인을 찾을 수도 있고 억울하게 범인을 만들 수도 있다"라는 결정적 한 마디만 남길 뿐이다. 미드 팬이라면 이쯤에서 '어?'하면서 한 사람이 떠오를 것이다.

<CSI 라스베가스>의 길 그리섬 반장(윌리엄 L 피터슨). CSI 드라마 역사상 그만큼 신뢰감이 팍팍 드는 인물이 있었던가. 그는 강승조처럼 일벌레이자 사건 해결에 있어서 증거를 우선시하는 사람이다. 극도로 말을 아끼고, 모든 것을 다 알아내는 만물박사이기도 하다.

이렇듯 미국과 조선의 두 리더는 닮아도 아주 닮았다. 심지어 그들 주변에서 품어져 나오는 포스까지도 닮았다. 이러한 리더 옆에 팀원들이 뭉치는 건 당연한 결과다.

[비교②] 현장파와 실험실파, 수사대도 철저한 분업이 필요하다

<별순검>은 현장파와 실험실파로 나뉘어 있다. 현장파가 증거를 찾아오면 실험실파가 결과를 도출해 내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별순검>에서는 능금(하재숙)과 오덕(김무열)이 실험실파의 임무를 맡고 있다. 시체를 검사하고 그 결과를 말해주는 검안(류치경)은 이일웅이라는 노배우가 맡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CSI 라스베가스>도 마찬가지다. 시체의 검안은 나이많은 로빈슨 박사(로버트 데이빗 홀)가 맡고 있고 실험실에서는 그렉 샌더스(에릭 스맨다)와 워릭 브라운(게리 도던)이 현장파를 지원한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문제는 다음이다.

[비교③] 루미놀 필요없어, 우리에겐 '고초물'이 있으니까

<CSI 라스베가스> 실험실파는 첨단 시설을 완비하고 현란한 카메라 워크를 동원해 매우 그럴듯한 장면을 방송에 내보낸다. 증거가 없어도 그 증거를 금방이라도 만들어낼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그렇다면 우리의 조선 과학수사대원들은 어떻게 수사를 할 것인가? 그 당시에는 컴퓨터마저 없었으니…. 그래서 <별순검>의 실험실파는 다양한 민간요법을 활용한다.

<별순검>은 혈흔을 알아내기 위해 고초반응(강한 식초를 이용해 혈흔을 찾는 방법)을 이용한다. <CSI>의 루미놀 반응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다. 식초로 이렇듯 간단히 검사할 수 있는데 루미놀이라는 거창한 실험약을 꼭 사용해야 하는지….

<별순검> 실험실파의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술과 식초를 섞은 주초반응을 이용해 거머리의 정체를 밝히는가 하면 먹물·소금물·감자즙 등을 이용해 갈색 물질의 정체가 진흙임을 밝혀내기도 한다.

이외에도 조선의 별순검들은 CSI 대원들이 가지고 다니는 검은 가방과 비슷한 갈색 상자를 가지고 다니는데, 여기에는 사건 현장에서 증거를 모을 수 있는 기구가 다 들어있다. 그까짓 적외선 탐지기, 노란색 고글, 지문채취테이프, 카메라가 없으면 어떤가. 붓·먹·종이·봉투·돋보기 등 간단한 도구만 있어도 범인의 흔적을 다 찾아낼 수 있다. 이쯤 되면 CSI 과학수사대의 첨단기술이 무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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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SI 라스베가스 >의 길 그리섬 반장(왼쪽)과 <별순검>의 총순 강승조. ⓒ CBS, MBC드라마넷


[비교④] 이야깃거리는 어떻게 구하지?

<CSI>는 현재 시즌 8까지 나온 상태다. 그만큼 다양한 소재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말이다. 범인과 증거라는 소재의 특성상 많은 내용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CSI>가 시즌제를 이어가면서도 끊이지 않는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만하다.

<별순검>도 <CSI>의 틀에 맞춰 여러 에피소드를 방영하고 있다. 만약 모두 잘 아는 조선시대 중반을 기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내용과 소재 면에서 제약이 많았을 것이다. 여진(박효주)과 같은 여자 별순검은 구경도 못했을 것이고, 남녀가 유별하니 남자와 여자가 연결되는 각각의 에피소드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별순검>은 조선시대 말 19세기를 배경으로 사건을 전개시킨다.

혼란한 시대이니 만큼 범죄가 많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고, 기존의 사극에서는 19세기를 잘 다루지 않았으니 새로운 내용을 시청자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다소 과격하거나 자극적인 내용이 나와도 시대상에 맞춰 새롭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비교⑤] 전문직 드라마, 그래도 한국에선 멜로가 빠질 수 없지!

<CSI>는 철저하게 전문직 드라마를 표방한다. <CSI>는 과학수사대원들의 사생활이 아닌 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별순검>은 여기서 다시 한번 한국화를 시도한다. 바로 멜로를 첨가시킨 것. 한국 드라마에서 멜로는 정말 중요하다.

드라마를 시청자는 대부분 여성이니 사랑 이야기에 대한 강박관념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태왕사신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기하와 담덕, 수지니, 관미성주까지 합세한 4각 관계가 여성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가장 큰 요인이다.

<별순검>에도 멜로가 등장한다. 그것도 삼각관계다. 총수 강승조과 순감 김강우, 다모 여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원래 강우와 여진은 과거에 사랑했던 사이였다. 그러나 그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했고 시간이 흘러 여진은 이미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있다. 그러나 여진이 품고 있는 사람 승조은 이미 부인이 있고 강우는 여전히 여진에게 마음이 있다.

승조의 행동도 아리송해서 여진에게 마음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 수 없다. 아니 여진에게 마음이 있다고 해석하는 편이 드라마 흐름상 맞을 듯싶다. 그러니 항상 강우가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지. 이러한 삼각관계는 <별순검>의 또다른 재미인 동시에 인물들 간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비교⑥] 감칠맛 나는 조연이 빠지면 무슨 재미로 보나

<별순검>의 또다른 한국화는 바로 코믹한 조연들의 연기다. <별순검>에서 코믹한 장면을 이끌어내는 것은 배복근(안내상)과 능금이다.

배복근은 사건을 수사할 때 지저분한 일을 맡아서 처리한다. 도박·술·여자 등의 문제를 처리할 때 발벗고 나선다. 그가 이렇게 발로 뛰어 알아내지 못하는 것은 없다. 또 배복근은 별순검 중에서 유일하게 촐랑대는 캐릭터고 사투리를 쓰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무능력한 인물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성격이 가벼운 인물일 뿐이다.

또다른 감칠맛 나는 조연은 능금. 그는 강우를 짝사랑한다. 그래서 강우 앞에서는 얌전한 처녀가 되어 얼굴을 붉히고 예뻐 보이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후배 오덕에게는 매사 장난을 걸며 틱틱거린다. 강우와 있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두 사람의 이러한 연기는 극을 더욱 재미있게 하고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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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없으면 과학수사가 불가능하다고? 아니다! <별순검>에서는 그런 것 없이도 과학수사 잘만 한다 ⓒ MBC 드라마넷


<별순검>의 반짝반짝하는 희망

<별순검>의 성공 요인은 미드의 장점과 한국 드라마의 장점을 적절하게 융합한 것에 있다. 즉 미드의 성공적인 현지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도 여러 모로 발전해왔다. 멜로 드라마에 있어서는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시청자의 관심도 많이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다른면에서 보면, 삼각관계나 출생의 비밀 등 고질적인 문제로 인해 정체를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젊은 시청자들은 한국 드라마를 외면하고 보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런 시청자들 중 상당수는 외국 드라마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별순검>의 성공은 매우 고무적이다. 외국드라마와 한국드라마가 만났을 때 이렇게 괜찮은 드라마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첫 번째 사례가 될 것이다. 처음에는 모방으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모방을 넘어 창조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드라마가 세계시장에서 미국드라마와 경쟁하는 시대도 오지 않을까? <별순검>을 보면서 그러한 희망을 본다. <별순검>이 더욱 재미있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 다음 블로거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 다음 블로거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별순검 #CSI 라스베가스 #미국 드라마 #한국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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