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그룹 불매운동', 계란으로 바위 치기?

S그룹 제품에 포위된 우리 사회

등록 2007.11.24 08:53수정 2007.11.2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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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대학 친구를 만났습니다. 훤칠한 키에 공부도 썩 잘했고, 게다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등 의협심도 강해서 여학생들은 물론 남자 사이에서도 ‘인기 만점’의 친구였습니다. 최루가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안개처럼 뿌려졌던 지난한 대학 시절이었지만 그 친구는 시위 현장에서, 또 도서관에서 부러울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졸업 후 IMF다 뭐다 하여 어수선한 시절이었지만 ‘S그룹’에 보란 듯이 취직을 했고, 하나같이 ‘S그룹이 사람 보는 눈은 있다’며 모든 친구들이 부러워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아빠가 돼 단란한 가정도 꾸렸습니다. 가장이 되고 서로 바삐 살다 보니 1년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렵게 되었지만, 함께 울고 웃었던 대학 시절을 떠올리며 술 한 잔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였습니다.

정말 반가웠지만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의 그의 모습은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추억은 금방 얘깃거리가 바닥나고, 단연 직장과 봉급 같은 ‘먹고 사는’ 문제가 술안주가 돼 버렸습니다. 최근의 검찰은 물론 청와대에까지 돈을 뿌렸다는 ‘S그룹 이야기’도 그런 가운데 나왔습니다.

“양심선언을 넘어 뇌물을 건넨 사진이 나왔는데도, 무작정 모르쇠로 일관하는 S그룹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더라.”

“조만간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S그룹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 우리 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관행처럼 이어져 내려온 것 아니냐. 왜 자꾸만 ‘우리’만 타깃으로 삼는지 모르겠다.”

“그런 논리라면, 교통 법규를 위반한 사람이 ‘왜 나만 단속하느냐’고 대드는 것과 똑같지 않느냐. 검찰조차 미적거리는 상황에서 나부터라도 당장 S그룹 제품 불매 운동이라도 벌여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떻든 S그룹이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이니만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게 될 것이다. 국제 유가와 물가도 들썩이고 서민 경제도 어려운 상황에서 (수사가 길어지면) 아마 국민들도 불안해 할 거고. 그리고 불매 운동?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걸!”

친구는 이미 S그룹을 ‘우리’로 표현하며 변호를 하고 나섰습니다. 그토록 정의로웠던 그였기에 그런 그가 무척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대학 다닐 때 그가 싫어했던, 아니 극도로 혐오했던 것이 바로 ‘관행을 들먹이는 것’이었는데, 그랬던 그가 이제 와서는 관행을 들먹이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가 목청을 돋우며 내세우는 주장이래봐야 지금껏 언론을 통해 익히 들어왔던 뻔한 얘기일뿐더러, 올곧았던 그가 말로만 듣던 ‘투철한 S맨’이 돼 나타난 것이 당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소비자의 선택을 먹고 사는 기업의 입장에서 가장 두렵게 느껴야 할 불매 운동을, 불가능한 일로 여기고 심지어 비아냥거리는 모습에서는 그의 옛 자취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대화가 길어지자 그도 자신이 늘어놓는 ‘궁색한 변명’에 지쳤는지 풀이 죽은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껏 화가 나 다그쳤던 제가 외려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모르긴 해도 사실이겠지. 그러나 퇴직자라면 모를까, 그 회사에 현재 몸담고 있고 봉급 받아 살아가는 사원 입장에서 어떻든 회사를 두둔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

들릴 듯 말 듯한 고백이었지만 그의 솔직함이 배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의 얘기는 (거칠게 표현해서) 틀린 말 하나 없습니다. 매섭게 쏘아붙인 저였지만, 충분히 너그러워질 수 있었습니다.

진정 가슴 아팠던 것은 늘 자신감에 넘쳤고, 그 누구 앞에서도 당당했던 그가 평범하다 못해 나약하기 그지없는 ‘소시민’이 돼 있었다는 점입니다. 대학 시절 친구들끼리 ‘그는 졸업해 사회에 나가도 투사로 살아갈 것’이라며 농담 삼아 얘기 나눴던 기억 때문인지, 그의 처진 어깨는 유난히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어쨌든 끝내 그에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나무라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처진 어깨를 본 탓이기도 하지만, 일상 속에서의 제 모습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씁쓸한 웃음을 나눈 채 헤어졌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늘 그래왔듯 교무실 한 구석에 앉아 책에 밑줄 그으며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 지금, 그 역시 모니터 앞에 앉아 분주하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겁니다. 익숙해진 나머지 조금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생각 없는’ 삶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계속될 것입니다.

짬을 내서 신문을 펴보니 여전히 대통령 선거 관련 소식과 함께 (의외로) S그룹 뇌물 이야기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웬만한 다른 기업 같으면 열 번은 더 무너졌을 텐데도 변화의 조짐은커녕 도무지 미동조차 보이질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만 본다면 이번 S그룹 문제도 그리 오래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이 시들고 흐지부지될 겁니다. 그 즈음 ‘불법은 아니지만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투의 회사 차원의 반성문을 발표할 테고, 여론의 ‘생각 없는’ 용서를 받은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법의 단죄를 받는 것과는 별개로 사사로이는 정의로웠던 친구를 ‘앗아간’ 기업이지만, 지금껏 마음속으로만 거부감을 가졌을 뿐 실제 행동으로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었습니다. 그에게 ‘단호하게’ 말을 꺼낸 만큼, 오늘부터 S그룹에서 생산된 모든 제품을 사지도, 쓰지도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시작한 지 딱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도 실천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는 알람시계도, 이른 아침 날씨 예보를 보기 위해 잠깐 튼 TV도, 영어회화 프로그램을 녹음하기 위해 튼 MP3도 모두 S그룹 제품입니다.

출근길 자동차도, 교무실에 도착해 맨 처음 켜는 컴퓨터와 모니터도, 아침의 추운 날씨 탓에 켜는 교무실 천정의 히터조차 예외는 아닙니다. 호주머니에 담긴 휴대전화도 그렇고, 아이들에게 건넬 안내문을 출력하는 프린터 모두가 S그룹 제품입니다.

수업 중에 쓸 요량으로 교실에 들고 가는 휴대용 DVD플레이어도, 아이들이 마주할 교실 프로젝션 TV도 S그룹 브랜드가 선명합니다. 아이들이 입는 옷에서 축구화 같은 신발에 이르기까지 이런 ‘사소한’ 구석에조차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장 보는 것은 물론 양말 한 켤레라도 사자면 살만한 곳이 주변에 없으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형마트(홈플러스)엘 가게 되고, 아내와 오랜만에 영화라도 한 편 볼라치면 근처 CGV 아닌 다른 곳을 찾아가기가 퍽 번거롭습니다.

전화기만큼이나 가정에서 필수품이 돼버린 디지털 카메라는 웬만한 아이들 손에 다 들려있는데, 그 역시 S그룹 제품이 다수이고, 듣자니까 매년 학교의 정기적인 행사의 하나인 수학여행도 일정표에 경기도 용인에 있는 놀이공원은 빠지지 않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고, 눈을 감지 않는 이상 보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이 바로 S그룹이 만든 제품들입니다. 물건 파는 가게에서부터 자동차, 아파트, 카메라, 나아가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안 만드는 것 없이 다 만들어 파는 ‘세계적인’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쓰고 있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앞으로 필요가 생겨서 구입해야 할 것이 있다면 S그룹의 제품이 아닌 ‘대체재’를 찾을 것입니다. 자본을 이용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있는 S그룹이 사회적 역할을 다 하는 ‘정상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때까지,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면 설령 조금 비싸더라도 타사 제품으로 눈을 돌리겠습니다.

그 친구 말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지언정 생각을 넘어선 행동의 시작이라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실천해나가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와 우리 가족의 이런 실천 계획은 ‘이랜드 제품 불매 운동’에 이어 두 번째인 셈입니다. 비록 힘들겠지만 우직한 마음가짐으로 실천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지금껏 말한 S그룹이란 ‘삼성’이란 것, 다들 아시죠?

덧붙이는 글 | 말이 우리 가족 불매 운동이지, 나름대로의 힘을 지니려면 동참하려는 사람들과의 '연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역별로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습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말이 우리 가족 불매 운동이지, 나름대로의 힘을 지니려면 동참하려는 사람들과의 '연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역별로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습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삼성특검법 #삼성제품불매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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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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