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당서>권 104,고선지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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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년 12월, 고선지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 당나라 현종의 위기인 안록산의 난 진압이 명장 고선지가 마지막으로 치른 전투였다. 사사건건 장애물이었던 변영성이 당나라 황제의 '참형'이란 명을 가지고 왔다. 고선지와 생사를 함께 했던 당나라 무명의 군사들은 울부짖고 있다. "고선지는 죄가 없다!"고.
하지만, 양귀비와의 사랑 놀음으로 당나라 현종은 이성을 잃은 지 이미 오래. 현종이 조금만이라도 멀쩡한 정신이었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을, 세계사를 크게 좌지우지한 실크로드를 제패했던 고구려 출신 장수 고선지는 이렇게 생을 마감한다. 이는 <영웅 고선지> 마지막 부분이다.
백제와 고구려가 서기 660년과 668년에 나당 연합군에게 각각 멸망하면서 두 나라의 왕족을 비롯한 수십만의 유민들이 당나라에 끌려가 개나 돼지 취급을 받으며 살아간다. 모든 유민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유민들은 신라인들이나 당나라인들에게 "고구려 놈"이란 손가락질을 받으며 개나 돼지 취급을 받고 살아간다.
감금된 채 부역으로 피폐해져 근근이 목숨을 연명하거나, <영웅 고선지>의 등장인물인 부용이나 여노 등처럼 사라센 등지로 헐값에 팔리기도 부지기수였다. 때문에 서역을 비롯한 사라센 등에는 우리 민족의 한스런 옛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접한, 실크로드의 여졍따라 묻혀있을 고구려, 백제 유민들의 비참하고 한스런 삶에 얼마나 우울했는지 모르겠다.
당나라는 고구려나 백제인들이 뭉쳐 다시 일어서는 것을 막고자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을 귀양 보낸다. 그리고 유민들을 드넓은 당나라 곳곳으로 흩어버리고 만다. 고선지의 아버지 고사계는 고구려 패망 시 당나라에 끌려간 고구려 왕족으로 당나라의 이런 정책으로 고구려와는 정반대인 서쪽, 안서도호부로 가게 된 것이었다.
고구려 부활이라는 오직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온갖 고초를 이겨내며 결국 안서군의 장군이 된 고사계는 자신의 아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부활할 고구려의 든든한 재목으로 가치 있게 쓰여지길 바라며 강건하게 키우는 한편 전장에 나갈 때마다 어린 고선지를 데리고 다니며 무술과 경륜을 쌓게 한다.
이런 노력으로 고선지는 15살에 장군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체력, 통찰력, 무술 등 어지간한 어른 장수들을 능가하는 면모를 갖추어 지장이요, 명장이자, 덕장으로 불리고 결국 안서도호부 총사령관이 되어 실크로드를 장악, 72개국을 재패하게 된다.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의 한과 온갖 고초 속에 서기 698년에 발해가 건국된다. 발해는 수많은 유민들을 흡수한다. 하지만 발해가 흡수한 숫자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유민들이 드넓은 당나라 여기저기에 흩어져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고, 문화가 전혀 다른 서양권 국가의 노예로 팔려 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렇다보니 고선지의 명망은 고구려나 백제 유민들에게 삶의 힘이자 희망이었다. 실크로드의 제왕으로 고선지가 주로 활동하는 8세기 그 시대적 배경은 대략 이렇다.
거의 가려져 있다가 최근에야 실크로드의 여정 따라 많이 알려지고 있는 고선지다. 외국인들이 명장 한니발과 나폴레옹을 능가하는 장수로 손꼽는 고선지는 대략 이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영웅 고선지>를 통하여 다시 만나는 고선지의 여정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소설을 통하여 만나는 고선지의 고단한 여정 속엔 세기적인 영웅 고선지의 이야기만이 아닌 나라를 빼앗긴, 패망한 백성들의 한과 비참한 생활과 정복을 감행하는, 그 이면에 고통 받고 핍박받는 힘없는 사람들의 비참함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이는 당시 고구려나 백제의 패망과 통일신라라는 다소 좁은 의미의 고구려 패망이 아닌, 당나라라는 이민족에게 패망한 우리 민족의 깊고 쓰라린 상처를 훨씬 깊고 넓게 바라보게 한다고 할까? 이제까지 역사의 한 부분으로 평면적으로만 바라보던 고구려나 백제의 패망이 일제 강점기의 쓰라린 치욕과 함께 다시 바라보아진다고 할까? 그것도 아주 아프게!
나폴레옹을 능가하는 뛰어난 장수 고선지"고선지야말로 나폴레옹과 한니발을 능가하는 뛰어난 장수이다!" - 오렐 스타인(Aurel Stein)
이는 영국의 저명한 고고학자인 오렐 스타인의 고선지에 대한 평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