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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고구마가 이렇게 많지?”
날마다 먹는 찐 고구마와는 달리 상자에 들어 있는 고구마들이 새삼스럽게 낯설다. 오늘 아침 문간방 뒤 베란다에서였다. 화장실의 화장지가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화장지를 꺼내러갔는데 발길을 막은 종이상자 4개가 있었다. 그 상자들은 고구마로 가득했다.
요즘 우리집 아침 식탁에선 물렁하게 찐 호박고구마가 빠지지 않는다. 덕분에 아내의 아침상 차리기가 한 가지 늘어난 셈이다. 내가 하루 동안 먹을 고구마 몇 개씩을 밥 짓는 것과는 별도로 쪄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날마다 아침 식탁에 찐 고구마가 오를 수 있는 것은 내가 고구마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구마가 많기 때문이다. 모두가 시골에 사는 친지들이 보내준 것들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고구마며 채소를 보내주는 친지들이 있었지만 올해는 고구마가 유난히 많이 올라왔다.
충남 공주에 사는 친지들 두 사람이 각각 한 상자와 두 상자를 보내왔고, 전북 익산에 사는 친지가 한 상자, 경남 거제에서 또 한 상자, 이렇게 다섯 상자나 되는 고구마들이 베란다를 점령해 버린 것이다. 그동안 한 상자의 고구마는 간식 겸 건강식으로 소모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네 상자였다.
고구마 상자들을 살펴보면 보내준 사람들의 외모처럼 모양과 크기도 다르고, 빛깔도 모두 다르다. 종자는 모두 속이 노란 호박고구마들인데 생산된 토양과 재배 기술에 따른 차이인 것 같았다. 두 상자는 그 크기가 어른 주먹만큼씩이나 큰 것들이고 두 상자는 감자보다 약간 큰 정도의 작은 것들이다.
아내는 친지들이 고구마를 보내올 때마다 그것을 몇 개씩 식탁에 올리며 이건 어디서 누가 보내준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어떤 친지는 수확한 고구마를 택배로 올려 보내놓고 전화를 했다. 그런데 올해 고구마 농사를 잘못해서 작은 것들을 보내주게 되었노라고 미안해하기도 해서 오히려 우리 내외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다.
▲보내준 사람들의 모습처럼 모양도 다른 고구마들이승철
▲ 보내준 사람들의 모습처럼 모양도 다른 고구마들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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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친지는 고구마농사가 잘 되어 너무 커서 오히려 맛이 떨어진다고 걱정을 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몇 년 전부터 달콤한 호박고구마에 맛을 들인 내 입맛이지만, 보내준 고구마들도 크건 작건 모두 맛이 그만이었다.
“호박고구마라서 그런지 언제 먹어도 맛이 그만이야.”
내가 아침식탁에서 물렁물렁하고 따끈한 고구마를 한 입 물고 고구마 맛을 칭찬하면 아내는 “그게 어디 보통 고구마여야지. 고구마 맛에 보내준 사람들의 정까지 담겨 있으니 맛이 더 좋을 수밖에, 맛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요?”라고 말한다. 아내의 말이 맞는 말이다. 내 입맛에 꼭 맞는 그 맛이 어디 고구마의 본래 제 맛 뿐이겠는가.
그동안 살아오며 친지들과 주고받은 깊은 정이 고구마로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먹는 고구마 맛 속에는 그 깊은 정도 듬뿍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맛이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고구마를 먹을 때마다 보내준 친지들을 생각한다. 고구마만 먹는 것이 아니라 친지들의 따뜻한 정도 함께 음미하며 먹는 셈이다.
고구마를 보내준 사람들은 친구도 있고 친척도 있다. 그러나 친구나 친척이나 보내준 마음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따로 무슨 특별한 조건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값을 계산해서 돈을 받으려고 보내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내준 사람들에게는 곧바로 답례를 하지도 못한다.
만일 곧바로 답례를 하면 오히려 그쪽에서 부담스러워 하고, 자신들의 정을 곧바로 갚는 것 같아 진정한 정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다면 그것은 더욱 곤란하다. 정이란 쌍방통행이지 일방통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을 나누고 주고받는 것도 적절한 시기와 배려가 필요하다.
지난 주에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친지가 배추를 보내와 김장을 했다. 서울의 김장채소 값이 비싸다는 것을 알고 배추를 아예 절여서 보내왔다. 역시 택배로 보내놓고 양념 준비를 하라는 전화를 해오는 통에 부랴부랴 김장준비를 서둘렀지만 그 고마운 마음이 절절히 가슴에 와 닿았다.
적절한 시기에 나도 그들에게 내 정을 담은 선물을 보낼 예정이지만, 고마운 마음과 함께 그들의 정다운 마음이 이 시간도 내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도 한동안 아침과 간식으로 먹게 될 고구마와 올겨울을 나는 동안 날마다 식탁에서 만나게 될 김장김치에선 보내준 친지들의 정이 소록소록 스며 나와 추운계절을 춥지 않고 포근하게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1.26 21:32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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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친지들이 보내준 고구마 맛이 어디 제 맛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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